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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동아시아 불안정을 부채질하지 말라

트럼프·문재인은 이 와중에 전쟁 연습을 강행하려 한다 지난해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출처 국방홍보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자 미국과 한국은 전략 폭격기와 미사일을 동원한 무력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트럼프는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괌 포위 사격을 검토하겠다고 응수했다.

현재의 한반도 긴장 상황이 즉시 전쟁 개전으로 나아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정세가 더욱 불안정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이 불안정의 근저에는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갈등 악화가 있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질 때, 공교롭게도 인도와 중국이 국경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치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 전쟁까지 치렀을 만큼 국경 문제는 양측에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인도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확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을 추진하고 파키스탄 과다르 항을 확보한 데 이어, 아프리카 지부티에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세우는 등 인도양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양 등지에서 ‘골목대장’ 구실을 하고 싶은 인도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중국의 지리적·군사적 확장에 대한 인도의 경계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접점을 이룬다. 최근 인도가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부쩍 발전시킨 배경이다. 미국과 인도는 남중국해에서 합동으로 해군 초계 활동을 하기로 6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했고, 트럼프 정부는 인도에 무인 정찰기 수출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이 무인 정찰기는 인도양에서 중국 해군 활동을 감시하는 데 쓰일 것이다.

같은 6월에 중국과 인도는 국경에서 대치하기 시작했고, 7월 미국·일본·인도는 인도양에서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대규모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여기에, 상시 분쟁 사안으로 고착된 남중국해 분쟁이 있다. 6월 베트남의 남중국해 자원 탐사를 중국이 군사 위협으로 막았다. 그 후 베트남은 8월 국방장관이 포함된 대규모 방미단을 보내어 미국과의 방위협력 강화에 나섰다. 그래서 내년 미국 항공모함이 1975년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영국 정부가 “항행의 자유”를 위해 신형 항공모함 2척을 남중국해에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남중국해 분쟁은 앞으로도 악화될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라고 지시하는 행정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통상법 301조(징벌관세 부과 등 무역보복)를 휘두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중국산 철강, 알루미늄 수입에 관한 조사를 별도로 진행하는 중이다.

이런 갈등들과의 관계 속에서 최근의 한반도 긴장을 봐야 한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아시아 국가들을 대중국 견제의 파트너로 끌어들이려고 애썼다. 특히 미·일 동맹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호주와,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남한과 각각 관계를 강화하고 동맹을 구축하고 공고히 하려고 했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 집권 후에도 변함 없었고,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다방면으로 강화해 오고 있었다. 올해 히말라야,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모두에서 긴장이 높아진 게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이다.


“화염과 분노”가 키운 한반도 긴장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천명해 왔다. 그러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중국이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취임 직후부터 그는 북한·이란의 미사일 위협을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4월에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등, 북핵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관철하는 데 관심이 컸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이후 봄 내내 북한은 잇달아 여러 미사일을 발사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되는 데 자극을 받아, 북한도 적극 대응했던 듯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 북·미 접촉도 진행됐다. ‘트랙2 대화’(비정부 인사들의 대화) 시도가 있었고, 정부 간 비공식 접촉도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와 북한이 서로 북핵 문제에 관한 의사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미 접촉의 성과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도 주재 북한 대사 계춘영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남한이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북한도 핵·미사일 실험을 멈추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협상도 가능함을 내비쳤다. 북한이 공식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문재인은 북한의 제안을 일축해 버렸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없다고 못 박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금융 거래를 이유로 중국 단둥은행에 제재를 가했다. 그리고 북한은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발사했다.

따라서 북한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공세와 특히 대북 압박이 불러온 반발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그간 동아시아에서 갈등이 누적된 결과이며, 북핵 문제의 ‘판돈’도 커졌음을 보여 준다. 대북 압박 강화에 북한이 계속 반발한 결과, 북한 핵무기 능력이 점차 강화돼 이제 장거리 핵타격을 공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자칫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를 두고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일본·남한 지배자들이 독자 핵무장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 지배자들로서는 달갑지 않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의 일차적 대응은 대북 압박의 강도를 다시 높이는 것이었다. 유엔에서 북한산 석탄, 철광석 등 지하자원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트럼프는 매우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단지 북한을 겨냥한 것만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역내 다른 국가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물론 이런 언사는 더한층 긴장을 높였고,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이런 언사가 한반도에서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물론 긴장 국면이 바뀔 여지는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의 중재로 대화가 가능한지를 조심스레 타진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일부 지배자들도 북한 핵무장 능력이 계속 강화되니 일단 ‘핵동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 미국과 북한이 공식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화 중에도 계속 군사 행동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또한 중국 등 다른 열강과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 미국은 언제든 판을 엎을 수 있다. 현 긴장 상황이 진정되고 잠시 평화의 막간극이 올 수는 있으나,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한반도 주변 열강의 갈등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후 유엔에서는 전보다 더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다. 중국과 러시아도 대북 제재 강화에 동의해 줬다. 중국과 러시아도 제국주의적 국가들이자 핵무기 강국들로서 핵무기 독점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북한 같은 중간 규모의 산업국이 이 위계질서를 거스르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인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골치가 아프고, 북한과 큰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심각한 불안정에 빠지거나 붕괴되는 상황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완충 지대인 북한이 붕괴한다면, 중국은 커다란 안보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긴장이 극대화하자,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 영토(괌)을 선제 공격한다면 중국은 북한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킬 테지만, 만약 미국과 남한이 군사 공격으로 북한 정권 전복을 시도하고 한반도 정치 판도를 바꾸려 한다면 중국은 이를 막을 것이다.”

동방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로서는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 올해 초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러시아는 북한 화성-14형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점은 러시아가 유엔 대북 제재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경계한 것과 관련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제국주의 국가들로서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면도 있으나, 미국이 북핵 문제를 이용해 동아시아에서 군사 행동과 동맹 강화에 나서는 것은 경계한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시험을 동시에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라고 요구한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서 중국 책임론을 계속 부각시키며 중국을 향해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인도와 국경 분쟁 중인 중국으로선 동쪽에서 미국이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이제는 무역과 군사에 집중하겠다”며 북핵 문제를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문제와도 연계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라는 트럼프의 지시와 북핵 문제가 교차하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 커질 공산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열강의 갈등은 제국주의 진영 대 반제 진영의 대립이 아니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 국가들 간의 갈등이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갈등과 경쟁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래에 한반도에서 정말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처럼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자본주의 열강에게 “외교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고 촉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 구하는 격이다. 그보다는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 건설이 중요한 전략적 방향으로 제기돼야 한다.


문재인의 ‘베를린 구상’, 시험대에 오르다

대통령 문재인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누구도 한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면서, 북한의 핵동결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북핵 문제를 위한 대화와는 별개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협력을 위한 남북 대화를 시작하자고 했다.

문재인의 이런 제안은 ‘베를린 구상’의 연장선 위에 있다. 7월 베를린에서 문재인은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의 포괄적 접근, 남북 경제협력 복원,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과 정치·군사적 상황의 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한반도 평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서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공세 강화와 대북 압박이 강화되는 가운데, 남한 정부가 남북 대화 재개의 단초를 찾기가 힘든 것이다.

핵동결

문재인은 대북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지난 6월 “올바른 여건 하에서”만 대화를 하기로 미국과 약속한 바 있다.

그는 북한이 핵동결을 하면 북핵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했지만, 8월 하순에 진행될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북 공격 위협이 포함된 대규모 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하면서, 북한에 핵동결부터 선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한 측에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은 여전히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강한 방위력의 토대 위에서 남북 관계를 풀어가겠다고 한다. 여기서 모순과 한계가 발생한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춰 주고, 강한 방위력을 위해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포함한 막대한 군비 증강을 준비하면서, 과연 “[북한이] 핵 없이도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베를린 구상’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실현을 위한 돌파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 운동은 자신의 독자적인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강령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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