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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대북 전쟁 위협 중단하라

문재인 정부의 군사주의 강화는 한반도에 더 불안정한 상황을 낳을 것이다 ⓒ출처 국방부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끝내 감행하고 수소폭탄 실험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앞으로 “더 많은 선물”을 보내겠다고 했다. 이렇게 가면 미국과 한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북한이 넘는 것도 그리 먼 미래가 아닐 듯하다.

북한 핵실험 직후, 트럼프 정부는 온갖 호전적인 말을 쏟아냈다. 트럼프는 대북 군사 행동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두고 보자”고 했다. 국방장관 매티스도 “완전한 절멸” 운운하며 “효율적이고 압도적인 [군사] 대응”을 언급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한반도에서 계속 긴장이 쌓인 게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이것이 곧바로 전면전의 위기로 치닫을 것 같진 않지만, 현 긴장 상황이 당분간 더 악화할 것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의 정세에도 악영향을 줄 듯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미사일 규제를 풀어 주고 첨단 무기 및 기술 도입을 허용하는 등 한국의 군사주의에 힘을 실어 주는 게 불길하다.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에 따라 한반도 긴장도 악화하면, 미래에 이 땅에서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수소폭탄 실험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분명 나쁜 소식이다. 북한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핵·미사일 능력을 발전시켜 왔는데, 이런 행태가 결국 제국주의 국가들의 한반도 관여와 군사 행동의 명분만 제공하며 한반도 불안정성을 악화시켰다. 북한 핵무기는 결코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북한 핵무기가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고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주된 요인(‘게임 체인저’)이라고 보는 것은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비과학적 인식이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흔히들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보유를 ‘게임 체인저’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은 아직도 7천 개 가까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한국은 그 우산 아래에 있다.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재래식 전력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경제력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이다.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적 능력은 영원히 한미동맹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세계 최강의 군사적 능력을 가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북한을 압박하고 그 과정에 동맹국들을 동참시켜 왔다. 그리고 북한 지배 관료들은 그에 반발해 핵무기 개발로 치달았다.

일부 평화주의 좌파는 북한 핵무기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핵)군비 경쟁을 자극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분명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 양상은 우려스럽다. 그러나 이 경쟁의 가장 주요한 양상은 북한 핵·미사일이 아니라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미국, 중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에 돈을 쏟아붓고 트럼프가 집권 첫해에 국방비를 대대적으로 증액한 것은, 북한 핵무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경쟁 강대국들에 대해 계속 우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의 (핵)군비 증강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은 이 점을 숨기려는 미국의 구차한 변명이다.

따라서 최근의 북한 핵·미사일 실험은 제국주의 간 경쟁으로 동아시아 불안정이 점증하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오히려 최근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에 자극 받아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고 보는 게 옳은 관찰일 것이다.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동학(과 지정학적 맥락)에 관한 분석을 결여한 채, 북핵 문제를 ‘군사주의 대 군사주의’의 대결이라는 식으로 추상적으로만 인식해서는 지금의 한반도 긴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봉쇄

북한 핵실험 이후 트럼프 정부는 여러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모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불안정만 더 심화시킬 조처들이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전면적인 경제 봉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다. “미국은, 다른 옵션에 더해,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와도 모든 무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대북 원유 수출 금지,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 금지 등을 실시해 북한 경제를 제대로 봉쇄하려면 중국·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기를 싫어하지만 봉쇄 수준으로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데는 반대한다. 제재 강화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구상은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주로 중국·러시아 기업들을 겨냥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본격 시행할지 모른다. 그러면 중국 등이 크게 반발하며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다.

한·미·일은 군사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군 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해 줬다. 이제 한국은 전술핵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미사일 탄두를 마음껏 만들 것이다. 사드 발사대 4기도 곧 성주골프장에 배치된다.

그리고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더 많은 책임과 비용 부담을 지라고 한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상당히 정교한 군사 장비를 대량 구입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트럼프가 문재인과 통화하면서 “수십억 달러 상당의 미국 군사 무기와 장비를 한국이 구매하도록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도 내년 국방 예산을 크게 늘리며 군사력 증강을 공언했기에, 한국이 미국의 첨단 무기를 더 많이 수입할 것은 분명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나 패트리어트-3 개량형 등이 조기 도입될 듯하다. 심지어 아예 사드 포대를 한국이 구입할 가능성도 다시 나오고 있다.

문재인은 원유 금수 등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에 보조를 맞추며, 사태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 그가 직접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역대 최고 수준의 제재’가 필요하다며 대북 원유 공급 중단과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 금지 등을 유엔 안보리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취임 후 거의 처음으로 국가 안보 수호자와 군 통수권자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고 문재인을 칭찬할 정도다.

한국 우익은 지금이야말로 전술핵 재배치를 얘기할 때라며 성화다. 그런데 국방장관 송영무가 전술핵 배치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하는 등, 문재인 정부 내에도 이 정신 나간 주장에 동조하는 인사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12월에 ‘김정은 참수 부대’를 창설한다.

쌍중단

따라서 한국의 진보·좌파는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미국 제국주의와 문재인 정부의 외교·국방 정책 반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의 입장은 문제가 많다. 8월 29일 북한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넘어가자, 정의당은 대변인 논평으로 “우는 아이 달래니 더 크게 우는 꼴”이라며 북한만 맹렬히 비난하며 이후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했다. 그 논평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제재 강화나 군사 행동에 관한 비판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물론 핵실험 이후에는 태도를 조금 바꿔 이정미 대표가 남북 대화는 뒤로 미룬 채 북한에 대한 보복 수위를 높인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내용은 여전히 쌍중단 제안 수용 등 외교적 해법을 문재인 정부에 촉구하는 데 머물러 있다. 그나마도 중국이 애초에 제안한 쌍중단, 즉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연습 동시 중단”이 아니라 “북한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전략자산 배치 철회”로 슬쩍 후퇴해 버렸다.

최근 한반도 상황에 관한 평화주의 좌파의 대안도 중국이 제안해 온 쌍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에 머물러 있다. 최근 평화주의 단체들이 주도한 시국 서명 운동의 요구는 문재인 정부에 한·미 군사훈련 중단으로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이끌어 내 달라는 청원이었다.

평화주의 좌파는 ‘한반도 비핵화’ 같은 요구를 사드 반대 연대체 같은 공동전선이 채택하는 게 미국과 한국의 군비 증강에 반대하는 데서 대중적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방향은 문재인 정부한테 외교적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하려는 시도와 분리되기 어렵다. 현재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이런 공평무사 양비론적 요구를 채택하면 (좌파적 미사여구로 아무리 포장해도) 강대국들의 대북 압박과 이에 호응하는 문재인 정부의 호전적 대응을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을 돌아보면, 북핵 문제를 다룬 외교 무대에서 쌍중단·쌍궤병행 같은 제안이 나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이와 비슷한 협상 조건을 갖고 숱한 협상과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는 번번이 폐기됐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평화를 위한 안정적 합의를 한다는 것은 수소에게 젖을 기대하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은 외교적 해법 제시가 아니라 반제국주의 강령을 분명히 하고,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 건설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