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위험한 개혁입법연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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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촛불개혁을 위한 연합정치”를 주장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것이 (사실상 자유당을 제외한) 민생개혁입법연대라고 설명했다. 또한 “탄핵연대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만큼 그 정신대로 개혁입법연대에서 출발해 촛불연정·촛불연합정치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이 밝혀 온 연립 정부 노선의 디딤돌 구상인 것이다.
이런 제안에는 정의당의 연립정부 전략과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파 재집권을 막고 진보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린 듯하다. 그동안 이정미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며 대체로 온화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몇몇 사건은 비판을 했지만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개혁의 성공이라는 식의 생각은 진보·좌파의 비판과 저항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책임론’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분석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그가 개혁 약속을 뒤집고 지지층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집권 내내 갈수록 우파와 타협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과 친제국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이렇다 할 개혁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진보·노동운동에게는 탄압을 선물했다. 즉, 지지층 이탈과 몰락은 노무현 자신의 선택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므로 오히려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노동당이 개혁입법 관철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를 중시했다가 동반 추락을 피하지 못했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강조점을 정부와 여당과의 협력에서 대중 운동으로 옮겨 놓으려 하는 것이 개혁의 성공과 정의당의 성공에 이로울 것이다.
이정미 대표가 촛불 연정의 원형으로 제시한 ‘탄핵연대’의 경험도 제대로 곱씹어 봐야 한다.
당시 새누리당 일부마저 이탈해 탄핵에 동참한 것은(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자유한국당의 품에 안겼다) 거리 시위와 대중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날로 확대된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는 지금 '극단적 중도파'를 자처하며 오른쪽에서 문재인 정부에 딴지를 걸며 입지를 확보하려 한다. 그 연장선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탄핵 공조는 이미 헌재 탄핵 이후 시효가 만료된 사건이다. 그것을 사후에 보여 준 상징적 사건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안 부결이었다.
게다가 현재 대중의 정치적 정서보다 오른쪽에 자리한 자유당과 바른당, 국민의당 모두 지지율 위기 속에서 정계 개편으로 활로를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탄핵연대를 개혁연대로 발전시키자는 이정미 대표의 주장은 완전히 뒷북이자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경험은 강력한 대중 투쟁이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동력이고, 탄핵 공조는그 부산물임을 보여 줬다. 정의당은 이 운동을 지지하고 적극 동참했기 때문에 의석수를 뛰어넘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뒤집힌 평가
정의당의 줄기찬 연립정부 전망과 이를 위한 개혁 입법 연대 구상의 바탕에는 의회와 국가기구를 통해서만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개혁주의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의회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좀더 유리한 발판을 만들려는 판단도 작용했을 법하다.
그러나 기성체제를 떠받치는 정당들과의 전략적 협력은 개혁을 성취하는 데에 효과적 수단이 못 된다.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두고서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문재인 정부는 지배자들의 이해관계를 거스를 생각이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적폐 청산 등 박근혜 퇴진 운동의 용어를 빌려 쓰면서도 전혀 개혁적이지 않거나 그나마 개혁을 입에 올릴 때도 더디거나 불충분하다. 벌써 개혁 약속을 저버린 것도 있다.
폭력을 동원해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공론화위로 책임을 미루고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 사례다.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내세우고는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거부하며 이를 노동자 간 갈등으로 몰아갔다. 전교조 인정 문제는 법원 판결로 미뤄뒀다.
이정미 대표가 공조의 사례로 든 세월호 특별법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차원의 조사위 설립 약속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물렸고, 세월호 은폐 책임자들 수사도 진척이 없다.
한반도 불안정 속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은 호전적 제국주의자 트럼프를 국빈으로 맞이하고 그에게 국회 연설 기회까지 제공했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는 꾀죄죄한 포장보다 더 꾀죄죄한 알맹이를 선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정미 대표가 말한 대선 공약이 연합의 기준이 되는 것도 부적절하다. 정의당은 대선에서 문재인 공약이 촛불 염원에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 공약에서도 슬금슬금 후퇴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정의당이 아래로부터의 투쟁보다 현 여권과의 의회 공조를 중시하는 제안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
정의당이 정부의 불충분한 개혁을 애써 포장하고, 보수 정당 일부까지 연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노동자 대중의 의식 성장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문재인보다 왼쪽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투표한 200만 명의 염원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의회적 동맹을 개혁의 동력으로 보게 되면 개혁 요구를 낮춰야 한다거나, 개혁 입법 때까지 기다리라는 압력이 생겨 투쟁의 수단과 요구에서 자기제한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시대에 지배자들은 웬만해서는 양보를 하지 않으려 한다. 대중 투쟁이 강력히 발전해 양보를 통해 달래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클 때만 양보를 내놓을 것이다.
설사 연립 정부에 정의당이 참여해도 이 사회의 중요한 결정 권한을 쥐고 있는 대기업과 선출되지 않은 국가 관료들(군부와 검찰, 경제부처들), 보수 언론 등이 얽혀 있는 네트워크가 가하는 압력을 몇몇 장관 자리 같은 걸로 이겨 내기는 어렵다. 이미 유럽의 여러 사민주의 정당들이 집권 후에 겪은 실패의 경험이 이런 경로를 따라 왔다.
따라서 노동자 대중 투쟁이 진정한 대안이고, 대중 투쟁의 힘이 강력해야 그나마 개혁 입법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퇴진 운동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정의당이 새겨야 할 촛불 1년의 교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