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회복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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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이 횡행하고 있다. 소비 심리가 회복돼 극심한 내수 부진을 탈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올려 잡는 연구소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계 부채가 더는 악화되지 않고, 신용카드 사용액이 소폭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수출증가율도 작년 말에 비해 올해 들어 약간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봄을 오게 하지 못하듯이, 경기 회복의 기미만으로 회복이 앞당겨질 것이라 전망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올해 들어 전개되는 국내외 경제 여건을 보면, 한국 경제가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좀더 크다.
첫째 이유는 세계 경제의 둔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의 세계경제 성장률을 2004년(5퍼센트)보다 낮은 4.3퍼센트로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주요 수출제품군을 이루는 IT 경기가 세계 규모로 둔화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IT 경기 둔화는 반도체나 액정디스플레이(LCD) 등 주요 제품의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을 반영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세계시장 의존도가 더 높아짐에 따라, 한국 경제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그나마 수출 증가율이 높아 비교적 빨리 IMF 위기를 벗어났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런데 수출 증가율이 작년 중반 40퍼센트를 넘어섰다가 작년 말과 올해 초 10퍼센트대로 하락해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둘째, 원화 평가절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화 평가절상은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킨다. 한국무역협회가 조사한 것을 보면, 손익분기점 환율이 1달러당 평균 1천66원으로 나타나 현재의 환율 수준조차 대부분의 수출 기업들에게 수익성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 무역수지 적자폭이 계속 늘어나는 미국은 자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약달러 기조를 계속 유지할 전망이다.
셋째, 유가 상승이라는 요인이다.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원유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의 에너지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유가가 10퍼센트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은 0.13∼0.14퍼센트 포인트 떨어진다. 한국의 주요 수입처인 두바이유의 평균 가격이 40달러 이상 지속되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5퍼센트 성장은 고사하고 4퍼센트조차 힘들 것이다.
내수 상황도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를 품기 힘들게 만든다. 극심한 내수 침체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생산적 소비의 감소다. 생산한 제품의 판매에 대한 불확실성과 수익성 저하 때문에 기업들이 올해 설비투자를 작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일 전망이다.
둘째, 소비 그 자체를 위한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여전히 낮다. 신용불량자가 4백50만 명이 넘고 가계부채가 5백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대중의 소비 능력은 증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한 결과 두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됐다. 첫째는 고용 없는 성장이다. 지난 5년간 50대 대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크게 늘었지만 정규직 노동자 수는 오히려 소폭 줄어들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생산자동화, 분사 및 사업 매각, 인원 감축, 비정규직 이용 등의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특징은 양극화 현상이다. 양극화 현상은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는 수출 증가가 국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파괴됐음을 뜻한다. 사회적 양극화는 빈부격차 증대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소득5분위 배율 지표는 빈부격차 심화를 나타내고 있다. 소득 상위 20퍼센트의 평균 대비 하위 20퍼센트 평균의 비율이 IMF 전 4.48배였는데, 2003년에는 5.33배로 늘어났고 2004년에는 7배를 넘어섰다.
노무현 정부가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경기부양책과 함께 추진하는 정책은 바로 노동자 공격이다. 비정규직이 8백만 명을 넘었는데도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려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3월 15일 발표한 국제통계연보를 보면, 한국의 노동자 1인당 연간근로시간은 2천3백90시간(2003년)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노동생산성도 3.8퍼센트 증가해 OECD 평균(1.8퍼센트)의 두 배를 넘었다. 착취율이 증대한 것이다.
경제의 집약된 표현이 정치이긴 하지만 경제 상황이 기계적이고 자동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론, 노동자 투쟁 때문에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위협, 국가경쟁력 강화 등과 같은 지배계급 이데올로기가 노동자 투쟁에 경제 불황 자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변혁론자들은 노무현과 기업주들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의 의식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확산, 임금 삭감, 구조조정 등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의식과 투쟁이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요구들의 묶음 속에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