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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갈등과 한반도 정세:
올해도 불안정이 커질 것이다.
평화 운동이 구축돼야 한다

“경쟁적 세계”에서 도전자들을 누르고 패권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출처 백악관

새해 벽두에 책 한 권이 깜짝 놀랄 기세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기자인지 개그맨인지 모호한 자”라고 평한 마이클 울프가 쓴 《화염과 분노》가 바로 그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폭로가 대부분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허둥지둥하는 백악관의 모습은 이 믿음을 키워 주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 정부 안팎의 난맥상과 이전투구가 심한 것이다. 겨우 집권 1년 만에 말이다. 미국 공식 정치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가장 큰 혼란에 빠진 듯하다.

이 책은 ‘러시아 게이트’ 조사로 트럼프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 권력층의 주류는 러시아에 접근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를 견제하고자 ‘러시아 게이트’를 물고 늘어져 왔다.

트럼프 측 고위 인사들이 대선 때 러시아와 접촉한 것이 “반역적”이라는 배넌의 인터뷰가 실린 《화염과 분노》는 트럼프의 처지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본지는 1년 전, 트럼프 집권이 국제 정세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낳으리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미국 권력층 내 갈등도 더욱 첨예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미국 공식 정치의 위기와 (특히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이 맞물리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갈등과 긴장이 다시 증폭될 수 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은 ― 각자의 근거는 다를지라도 ―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이 너무 유약해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트럼프의 백악관과 내각에 군장성 출신이 1945년 이래 가장 많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해야 한다.

오바마는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미국의 상대적 지위 하락을 막으려고 애썼다.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고 동맹을 확대하고, 다자 무역협정 등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는 정교하게 고안된 조처들을 실행해 왔다.

도전들

그러나 미국은 곳곳에서 거의 동시에 제기되는 도전들(우크라이나, 중동 상황의 악화 등)에 직면했고, 오바마는 중국 등이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예컨대 30년 전에는 미국 군비가 중국보다 30배 많았다. 그러나 이 격차는 점차 줄고 있다. 2000년에는 중국의 군비 지출이 미국의 10분의 1로 좁혀지고, 2016년 현재 이 격차는 3분의 1로 됐다.

많은 문제에서 변덕스런 행태를 보이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대외정책이 오바마의 대외 정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려 해 왔다.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 제고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핵 합의를 뒤집겠다고 공언했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착하며 ‘예루살렘 수도 인정’ 같은 공세적 조처를 내놓았다.

지난달에 나온 트럼프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경쟁자들을 누르겠다는 노골적인 말로 가득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지목됐다.

이 국가안보전략 문서를 읽다 보면, 미국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이제 더는 경제와 군사 모두에서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을 압도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위기 의식이 엿보인다.

많은 미국 권력자들이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해 온 자유시장 자본주의 국제질서를 존중하지 않는 트럼프를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트럼프가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훼손할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트럼프는 자신이 국익을 위한 확실한 선택임을 보이려 애쓸 것이다. 세계가 더 위험해지더라도 말이다.


“진짜 적은 중국”이라는 트럼프 정부

《화염과 분노》를 보면 트럼프의 수석 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이 사석에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러시아인들은 나쁜 녀석들이지. 그러나 세계는 나쁜 녀석들로 가득해.”

“중국이 제일 문제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다른 것도 다룰 수 없어.”

중국은 미국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한 틈을 파고들어 국위를 크게 높인 국가다. 그리고 ‘일대일로’ 구상을 펼치면서 유라시아 곳곳으로 자국 영향력의 지리적 경계를 크게 확장하려 한다.

트럼프 정부가 국가안보전략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명시하며 동맹을 결집시키겠다고 밝힌 데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일본이 뒷받침해 줄 것이다. 올해 일본에서는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듯한데, 이와 동시에 아베는 중국을 견제할 외교적·군사적 수단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트럼프 정부 안에서 피터 나바로, 윌버 로스 같은 인물들은 기존의 신자유주의 어젠다를 거슬러, 미국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중국을 상대로 무역 보복 조처를 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여전히 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국가안보전략에도 반영돼 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정책은 경쟁자들을 국제 기구와 무역으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협력하면 그들이 우호적이고 믿음직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런 가정은 틀렸음이 드러났다.”

중국은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기존 대외정책이 흔들리는 틈에 지정학적 판세를 자국에 유리하게 가져가려 해 왔다. 예컨대 최근 트럼프 정부가 파키스탄이 이슬람 테러범들을 지원한다며 원조 제공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바로 파키스탄에 손을 뻗어 파키스탄 남단에 중국 해·공군 기지를 짓기로 합의했다.

또,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자 중국은 반색하며 아시아에서 새로운 무역질서를 주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 자극받아 동아시아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려 왔다. 그런 국가들 중에는 대만·베트남·호주처럼 중국과 경제적 관계가 깊으면서도 중국의 확장을 경계하는 국가가 많다.

지난해 6월 호주 총리 턴불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압적인 중국은 자율권과 전략적 공간을 빼앗긴 이웃들의 분노 섞인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점을 활용해 아시아 국가들에 파고들어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 포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기존 합의(예컨대 ‘하나의 중국’ 원칙)를 정말로 파기할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 군함이 대만 항구에 정례적으로 기항할 것을 미국 의회가 권고하려 했다. 그러자 미국 주재 중국 공사는 그런 조처의 실행은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올해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은 점증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으로 남중국해, 대만 등지에서 예기치 않은 긴장 사태가 불거질 수도 있다. 동아시아는 트럼프가 선언한 “경쟁의 새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돼 버렸다.


한반도의 미래도 녹록치 않다

트럼프 집권 이후 지난해 가장 긴장이 치솟았던 곳은 바로 한반도였다. 울프의 책 제목이 괜히 《화염과 분노》인 게 아니다.

북한은 트럼프 집권 후에도 미국의 “악의적 무시”와 대북 압박 기조가 지속되자,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했다.

제국주의적 갈등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트럼프는 매우 험악한 말과 군사적 위협을 쏟아 내며 한반도 긴장을 한껏 높였다. 거기에 자원 수출, 금융 등을 옥죄는 대북 경제 제재 강화를 결합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을 위해 북한 핵을 빌미로 북한을 압박해 왔다. 그런 경쟁과 갈등이 악화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게 된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대북 군사 옵션을 검토해 오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밝혀 왔다. 얼마 전 브루킹스 연구소는 한 보고서에서 미사일 요격, 항구 봉쇄, 핵시설 타격, 김정은 제거 등 미국이 할 수 있는 대북 군사 옵션을 검토했다. 그러면서, 대북 군사 옵션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트럼프 정부 외에도 미국 정치권에 더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 옵션

물론 그 보고서는 군사 옵션이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동시에 지적했다. 그러나 이렇게 긴장과 갈등이 누적되면 예기치 않은 사태 전개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그러면 지배자들은 어느새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유화 국면이 간헐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갈등 상황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유화 국면은 지속가능한 합의나 평화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올해 한반도 불안정 상황을 주시하며, 한반도 평화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부터 대비해야 훗날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참담한 비극을 막기 위해 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