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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도, 처방도 오발탄”인 3·15 청년 일자리 대책:
기업주 편의만 봐주고 청년들의 현실은 못 본 체하다

3월 15일 문재인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별도의 대응 없이는 재난 수준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특단의 한시 대책 + 구조적 과제 대응 병행 필요”를 천명했다.

하지만 “특단의 대책”을 자처하기에는 자금 조달부터가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주요 언론들은 이번 정책을 위한 추경안을 ‘미니 추경’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은 그 내용도 문제투성이다. 민주노총이 논평한 바와 같이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일자리 정책과 판박이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이기에 적잖은 노동계급 청년들은 청년 실업 문제 해소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내놓은 대답은 부족하다 못해 많은 점에서 퇴보적이기까지 하다.(물론 우파들은 이조차도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유승민은 이토록 소박한 정부의 일자리 대책조차도 “반시장적이고 그 실패가 예정돼 있다”면서 “추경을 반드시 막아 내겠다”고 했다.)

ⓒ출처 청와대

높은 눈높이?

문재인 정부는 청년실업률 고공 행진의 원인부터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청년 고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에는 “과도한 정규직 고용 보호”가 있다. 그래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코드명이다.(원래 청년 일자리 대책 자료에는 ‘고용안정유연모델 구축’이라는 더 노골적인 표현이 들어 있었다. 박근혜표 노동 개악의 재판인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를 운운하지만, “근속년수와 이직률 통계를 볼 때 우리 나라 노동 현장은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도 고용 불안정 수준이 높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정규직의 임금은 경제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인상돼 왔다. 워낙 열악한 일자리가 많아서 그런 것이지,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보호도 미약한 수준이다.

한편, 정부는 대학에 진학해서 대기업·공공부문으로 취업하려고 노력하는 청년들도 탓하고 있다. 대기업·공공부문으로의 “선호 쏠림”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전문대·직업계고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나, (박근혜 정부도 강조했던) “선취업-후학습·일학습병행제” 등을 통해 ‘학력별 미스매치 해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보면, 대졸자의 3분의 1은 ‘하향 취업’을 하고 있다. 또 대졸 하향 취업자 중 64.3퍼센트는 (두세 차례의 이직을 통해 처우 개선을 꾀한다고 해도) 첫 하향 취업 상태에 고착된다. 요컨대 대졸 청년 3분의 1은 이미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고 있으며, 그중 3분의 2는 평생 그 멍에를 짊어지고 산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전문대졸 청년실업률이 4년대졸 청년실업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고졸 청년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낮기는 하지만 9퍼센트대로 여전히 전체 실업률(3.7퍼센트)를 훨씬 상회한다. 요컨대, 학력에 상관없이 청년실업률은 높은 것이다. 한국보다 대학 진학률이 훨씬 낮은 국가들에서도 청년실업률이 높은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면, 정부의 해결책은 완전히 피상적이다.

사실 정부에서 ‘높은 진학률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은 청년들이 눈이 너무 높아서 열악한 일자리에는 잘 취업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해서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키우지 말고, 일손이 모자라는 저질 일자리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 상당수가 열악한 상황에서는 취업 준비 기간이 아주 길어지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의 일자리에 취업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청년 대다수에게 ‘합리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청년 눈높이를 탓하는 것은 부당할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다.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가 앞장서서 더욱 많이 창출해야 일자리의 질 차이로 인한 ‘미스 매치’가 줄어들 것이다.

에코붐 세대 문제?

한편 문재인 정부는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으로 1968~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baby-boom) 세대의 자녀 세대. 현재 20대 중후반으로 20대 초반이나 30대 초반 세대보다 수가 더 많음)가 노동시장에 유입하는 것이 청년 실업률을 ‘재난 수준’으로 높이는 인구구조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아직 ‘에코 세대’의 취업 연령대 돌입이 노동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다(최경수 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 또한 이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이 노동시장 상황에 다수 부담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청년실업률 고공 행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되는 현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역시 부차적일 따름이다.

정부도 지적한 바대로 기술 혁신 등으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해 더 적은 인력으로도 생산을 유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기업들은 ‘인력 조정’을 추구했다. 더군다나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그 뒤를 이은 2011년의 경기 부진으로 자본 축적의 활기가 줄어들어 생산성 증가로 인한 인력 감축을 상쇄할 만한 노동 수요는 창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이 진보하면 필연적으로 ‘노는’ 청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는 없다.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사용된다면 기술 진보가 필시 인구의 잉여화로 이어지겠지만, 진정 인간을 위해 이용된다면 물질적 풍요를 증대시킬 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기업주 편의 봐주기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공공기관 취업을 직접적으로 늘리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들도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다. 2018년 공공기관 채용을 2만 3000명에서 2만 8000명가량으로 5000명 정도 확대한다는 내용, 청년을 신규 고용하는 기업들에 세금감면·보조금 지급 등의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전부다.

공공기관 일자리 창출은 양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너무도 명확하다.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급의 경우, 민주노총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노동자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기보다 기업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보완책도 없다.” 기존에 청년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들은 이번 대책을 보조금이나 챙겨 먹는 기회로 삼을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일자리 창출 명목 하에 규제 완화 등도 추진할 것임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청년 일자리 대책인지, 기업 지원 대책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 노동자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정책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조삼모사 정책이다. 일자리 질 개선 없이 저질 일자리에 취업한 청년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잘해 봐야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개악 등 저질 일자리 양산 정책에 ‘병 주고 약 주기’하는 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최근 청년 고용 문제가 더 심각해진 데에는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기존 주력산업 고용 창출력 둔화”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완전히 유체이탈 화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조선업 인력 구조조정을 부추기고 있으며, 한국GM이 추진하는 일자리 공격에 대해서는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에서 구조조정에 직면한 지역들의 일자리 대책은 기껏해야 신규 고용 기업에 대한 지원을 500만 원 추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약발이 먹히기나 하겠는가? 애초에 일자리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걱정하고, ‘고용 위기 지역’들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다면, 구조조정에 직면한 기업들을 국유화해서 일자리를 보호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미진

허황된 대책들

이처럼 노동계급과 청년들에게 실업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는 “오발탄”을 날리고, 청년 고용대책이라는 이름 하에 기업 지원책을 추진한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은 문제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비현실적이거나 허황된 대책들 또한 가득하다.

일자리 대책에서는 청년 창업을 고용 위기의 주요한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데, 참으로 비현실적인 구상이다. 최근 한국 경제 성장이 약간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안정하며 산업·부문별로 회복의 속도와 수준은 극히 불균등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생 독립 자본이 활발히 활동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공상적이다.(설사 창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한 수준이라고 한들, ‘재난 수준’의 고용난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면 창업 지원에 쏟을 재원을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등 더 직접적인 채용 확대 효과가 있을 정책에 활용하는 편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청년 일자리 대책의 주요한 항목으로서 해외 취업 장려책을 제시하는 것 역시도 허무맹랑하다. 이는 청년들에게 ‘중동 진출’을 주문한 박근혜의 정책을 되풀이한 것이다. 더군다나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데 청년층의 ‘해외 진출’로 청년 잉여인구 중 과연 얼마나 흡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역주도형 일자리 창출’도 마찬가지다. ‘지역주도형’ 일자리 정책은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재원·책임에서 중앙정부가 면죄부를 받도록 하는 효과를 낳게 할 요량이 크다.

노동자 운동의 대안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해악적인, 잘해봐야 대체로 공상적인 청년 일자리 대책보다 확실한 것은 공공부문 고용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 전환 심의 대상에서 제외됐고, 그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해고에 내몰리기도 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법 개악은 오히려 정부가 기업주들이 장시간 노동을 더욱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 주고 있다. 이는 문재인 자신이 내놓은 공약과도 충돌하는 것으로, 그의 개혁에 기대를 건 수많은 노동자들과 청년 구직자들에 대한 배신적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직된 노동계급의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맞서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투쟁하는지에 따라 청년 구직자들의 일자리 전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청년 세대들의 운동 또한 노동자 운동과 단결을 도모하며 이러한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부가 청년 창업 지원을 말할 때 유독 두드러지는 것이 ‘기술 창업’과 혁신 창업에 대한 지원이다. 이번 일자리 대책에는 청년 창업 외에도 AI·스마트시티·블록체인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육성책들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고(이른바 ‘미래 먹거리’를 찾고) 해당 분야의 성장을 고용의 창출로 연결시켜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정책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써는 그럴 가망이 없어 보인다.(애초에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 정책을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포장된 것부터가 아전인수 격이기도 하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가능성에 대해서 IT업계의 자본가들과 그 이데올로그들은 굉장히 과장된 전망을 가지고 있다. 해당 산업들의 성장 가능성과 그 파급 효과로서 발생할 사회적 변화들은 폭발적일 것이며 그와 같은 변혁의 물결은 임박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4차 산업혁명론’은 증명된 것을 이야기하는 이론이 아니라 좋게 봐야 “작업가설” 내지는 “미래 전망 담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생산성 향상과 산업 성장 측면에서나, 사회적 관계의 변혁이라는 측면에서나 진정으로 ‘혁명적’이었던 산업적 변화는 오직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탈바꿈시킨) “1차 산업혁명”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외치는 4차 산업혁명은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부 내의 정보통신 관련 부처에서 출범한 ‘지능정보 산업 발전계획’이 진화한 것’이며, 이런 논의의 핵심 주체는 “정보통신부 계열의 관료, 엔지니어, 기업인”이었다.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론’의 전도사 격 인물이 KT 회장 황창규라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요컨대,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를 육성한다고 해서 ‘미래 먹거리’가 생겨나고 노동계급 다수를 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혈세를 가지고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주들의 특수한 이익을 지원해 주는 조처들이 시행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기술 육성’이라는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적 접근법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정보기술을 발전시키기면 산업이 정보화되고 사회가 합리적으로 변하”리라고 순진하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관련해서 홍성욱 교수 등이 집필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유령》(2017, 휴머니스트)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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