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삭감법을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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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역시 최저임금 개악에서 민주당과 한통속이었다. 정부는 국회에서 통과된 ‘최저임금 삭감법’을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처리했다.
문재인은 이미 5월 말에 최저임금 삭감법이 “왜곡된 임금 구조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급기야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상황이 안 좋으면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삭감법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이 최소한 시간당 1만 7510원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에, 오히려 인상폭을 더 낮추겠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은 공문구가 되고 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최저임금 인상 폭을 낮추라”는 기업주와 우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다.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을 낮췄다고 비난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퍼센트”라는 문재인의 말과 달리, 상반기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대안은 저소득층의 소득 끌어올리기가 아니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합리화’(인상폭 낮추기)와 법인세 인하를 강조한다.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안중에도 없이 기업의 이윤을 지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이 되지 않은 이유는 최저임금이 올라서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충분치 못하고 그마저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더구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세금,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이자 비용 등 비소비 지출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월급 통장에서 ‘순삭’(순간삭제)되는 돈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 하위층의 부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이 연간 2500만 원 미만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 개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거듭 우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일 뿐이라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마트 등 서비스 노동자들, 공공기관 청소·경비 노동자들 등등. 말 그대로 ‘딱 최저임금 수준만 받는’ 이주노동자들도 이번 개악으로 사용자들의 횡포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대략 113만 명이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그만큼 임금이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커지는 분노
눈 뜨고 임금을 도둑 맞은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6월 5일 최저임금 삭감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날 청와대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정부를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법이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니까 노동조합 만들어 투쟁해서 상여금, 근속수당 받아냈는데, 왜 맘대로 그걸 깎습니까?”
“더불어민주당 찍겠다는 조합원들이 많았는데, 마음이 다 돌아섰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결국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뒤통수 치는구나, 완전 속았다고 분노가 매우 커요. 끝까지 투쟁해서 폐기시켜야 합니다.”
최저임금 문제는 문재인 정부 ‘노동 존중’ 정책의 시금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상반기에 구조조정, 근로기준법 개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실종 등에 이어 최저임금 삭감법마저 통과되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배신감은 더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가 4년인데 벌써 노동정책이 유턴하고 있다”, “박근혜의 노동개악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한국노총과 함께 최저임금위원회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6월 30일에는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대규모 항의를 이어 나가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을 삭감해 놓고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일하는 여성”의 차별 해소와 성평등 일터를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은] 노동존중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사회적 대화 불참과 함께 강력한 투쟁을 선언한 날이고, 대정부 투쟁으로 6월 30일 10만 노동자대회를 선포한 날이다.”
이렇게 반발이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를 달래는 시늉을 하며 ‘노동계와 대화 복원’을 다시금 시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는 ILO 총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최저임금 관련 보완 대책’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내에서는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것들을 통상임금화하는 법 개정을 하반기에 추진”하겠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부분적 보완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맞바꾸는 것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에 눈감으라는 얘기와 같다. 더구나 통상임금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부당한 판결 개입이 있었음이 양승태 게이트로 드러난 상황이다. 둘을 연계해서 어느 것 하나를 내주고 어느 것 하나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없다.
투쟁 건설에 매진해야
한편,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 시한이 다가올수록 최저임금위원회에 복귀하라는 압박도 커질 공산이 크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최악을 피하려면 들어가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배신을 본격화하지 않았던 지난해에도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계의 요구 수준을 낮추라는 압박을 가하는 무기로 활용됐고, 아쉽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에 타협하고 말았다. 한국 경제가 다시 악화하고 문재인 정부가 모두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말하는 상황에서는 더한층 투쟁에 족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등 노동 문제에서는 불만족스럽지만,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는 그를 지지하고 뒷받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적지 않다. 그래서 최저임금 개악 시도에 반대하는 집회 연단에서는 비난의 화살이 주로 국회, 여당을 향하곤 했다.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문재인을 비판할 때도 ‘평화 문제에서는 잘 하고 있다’거나 ‘대통령이 최저임금 삭감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며 기대를 내비치곤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협력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데도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데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령, 얼마 전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역대 정부들은 남북관계가 온탕일 때도 이를 계급투쟁을 억누르는 데 이용해 왔다. 상반기 상황을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도 남북 화해 분위기와 사회적 대화 지지 정서를 노동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데 이용해 왔다.
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한 만큼 이를 실질적으로 조직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6월 30일 집회에 10만 명이 결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를 위한 강력한 대정부 투쟁으로 이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