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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경남 지역:
삼주트리콜은 대리운전 노동조건 개선하라

8월 28일 부산 삼주트리콜 본사 앞에서 대리운전 노동자 수백명이 모여 “삼주트리콜 규탄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삼주트리콜 소속 부산·울산·경남 지역 대리운전 노동자와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12개 지부 조합원들이 모였고 지역 건설노조, 마트노조, 학비노조, 민중당 등이 연대했다.

8월 28일 부산 삼주트리콜 본사 앞에서 열린 총궐기대회 ⓒ이창배
노동자들은 대리운전업체인 삼주트리콜에 ‘저가 요금’ 인상, 주납제 폐지, 보험료 정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납제는 대리운전기사가 업체에 납부하는 건당 수수료(3000원)를 주 단위(17만 5000원)로 미리 내고 무제한 콜을 받도록 한 제도다. 미리 납부한 수수료가 반환되거나 이월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하루 10콜 이상을 수행해야 선납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한 콜이라도 더 받으려고 목적지도 공개되지 않는 저가 콜에 응하고, 업무강도는 더 높아져 과로와 교통사고 등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삼주트리콜은 매년 매출 200억 원을 기록하며 부산·울산·경남지역의 대리운전업체 중 1위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업계 최악의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삼주트리콜의 노동조건은 다른 업체에서도 상한선이 돼 왔다.

그동안 삼주트리콜은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수익을 올려 리조트, 요트 사업, 건설 사업 등에 투자했고 수도권에도 진출했다가 실패하는 등 손실을 봤다. 그러자 이를 만회하려고 노동자들을 더 옥죄기 시작했다. 저가 콜 강요, 주납제, 기사들에 대한 차별로 경쟁 부추기기 등 노동조건을 공격하고 있다.

회사는 고객 유치를 위해 ‘저가 요금’을 제시하면서, 그 대가를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또, 자의적인 기준으로 기사들의 등급을 나눠 배차 제한, 좋은 콜 차단 등으로 차별하기도 한다.

삼주트리콜은 노동자들에게 야간에 도로에서 식별하기 어려운 검은 양복을 입으라고 강요한다. 이 때문에 지난 11월 울산에서 고객을 만나러 8차선 도로를 건너던 노동자가 택시에 치여 숨졌다. 명백한 업무 중 사고였음에도 산재를 적용받지 못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삼주트리콜 회장 백승용은 대리인을 통해 30만 원을 조의금으로 보낸 것 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생활고

이처럼 날로 악화되는 노동조건 속에서 지난 2월에는 부산 지역의 삼주트리콜 소속 대리운전 노동자(전국대리운전노조 부산지부 초대 지부장)가 애통하게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암 투병 중인 아내와 함께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은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노동기본권과 사회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한 정부와 이들을 앵벌이 취급해 온 업체들이 저지른 타살이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더는 죽이지 말라”며 삼주트리콜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고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는 등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사측은 이 행동에 앞장섰던 전국대리운전노조 부산지부 간부를 영구입사정지(해고)하며 탄압에 나섰지만,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지는 오히려 더 커졌다. 부산 지역 노동자들은 6월 11일을 “주납 거부의 날”로 정하고 5월 22일부터 삼주트리콜 소속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주납제로 일하는 노동자 100여 명이 이에 호응했다.

노동자들은 삼주트리콜의 다른 악행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깜깜이”(도착지를 공개하지 않는 콜)라 불리는 삼주트리콜의 대표적 악질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이어졌다. 노동자들의 기세가 높아지자 부담을 느낀 삼주트리콜은 “깜깜이”를 중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더는 죽이지 말라” 지난 2월 삼주트리콜 소속 대리운전 노동자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 ⓒ이창배
첫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은 타 업체보다 비싼 삼주트리콜의 보험료도 문제삼으며 “산정기준 공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을 가르고 통제하는 수단들인 기사등급제 폐지, 배차 정지 철회, 부당해고 철회도 함께 요구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투쟁하면서 조직도 성장해, 올해 초 30명 안팎이던 대리운전노조 부산지부 조합원 수는 어느새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노동자들은 8월 28일 결의대회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이 투쟁을 더 확대·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전국 2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장시간 운전과 장거리 도보 이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심야노동으로 인한 과로와 수면 부족, 주취 고객의 폭언·폭행 등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월평균 수입은 150만 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특수고용 노동자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상은 물론 노동조합 설립 신고 조차 번번이 거부되고 있다.

최근 심화되는 경기 악화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대리운전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에 따라 대리운전업체들이 경쟁을 부추기며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주트리콜에 맞선 부산·울산·경남 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리운전 노동자들도 뭉쳐서 싸우면 얼마든지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미 이 소식에 자극받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투쟁이 준비되고 있다. 이런 투쟁들 속에서 노동조합도 성장할 수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아 온 장애물을 제거하는 투쟁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약속한 바 있지만, 주52시간, 최저임금 등의 쟁점에서 거듭 뒤통수친 것에 비춰 보면 이 약속도 제대로 지켜질지 의심스럽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정부와 여당은 완전한 노동3권 보장이 아니라 일부 업종에 대한 산재·고용보험 적용 확대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따라서 정부에 기대지 말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속에 조직을 강화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전면 보장 요구는 민주노총의 하반기 총력투쟁 주요 요구 중 하나다. 지역에서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뿐아니라 이 투쟁에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