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할 권리 보장 의지가 없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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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지가 10월 17일 발행한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 특별호에 실렸다.
10월 1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소속 공익위원들이 노동기본권(단결권, 단체교섭권, 쟁의권) 관련 입법안에 합의했다. 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논의를 거쳐 노사정 합의안을 도출하겠다고 한다.
공익위원 합의안은 단순한 초안이 아니다. 공익위원들은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구성의 과반을 차지하고(13명 중 7명), 매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대개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반영한다.
그런데 공익위원 합의안의 내용은 ILO(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이행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말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다.
우선,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특히 이 문제가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라며 연내 입법을 강조해 왔는데, 결국 사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알맹이가 빠졌다. “향후 ... 합리적 방안을 마련한다”, “기본권 보장을 모색한다”는 추상적 말로 변죽만 울린 수준이다.
오래전부터 ILO,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한 권고를 또다시 무시하며 장기 과제로 미뤄 두겠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둘째, 교사·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형식적인 노조 인정(단결권) 문제로만 국한했는데, 그조차 어떤 법·제도를 언제, 어떻게 개정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원칙적으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보장한다고만 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처들(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직권 취소, 교사·공무원 해고자 복직 등)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셋째, 노동조합 설립신고 문제에 대해서는 “행정관청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최소화”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돼 온 행정 방침을 폐기하고 신고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 ‘대항권’?
넷째, 쟁의행위의 “대등성을 확보”하겠다거나 부당노동행위제도의 “형평성”을 제고하겠다는 등의 대목에서는 상당한 위험성도 엿보인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요구할 때도 사용되지만, 반대로) 사용자들이 노조의 쟁의에 맞선 ‘대항권’을 주장할 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해고는 쉽게 하고 파업은 더 어렵게 만드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거기에는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직장폐쇄와 공익사업장 대체근로를 확대하고, 쟁의행위 금지 기간을 연장하는 등 단체행동권을 크게 제약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대등성’은커녕 가뜩이나 불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저항 능력을 제한하는 조처일 뿐이다.
지금도 사용자들은 쟁의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고, 대체근로를 무제한 허용하자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
미국처럼 사용자뿐 아니라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규정을 신설하자는 것도 사용자들의 오랜 바람이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위원장 박수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격월간지 《사회적 대화》 최근호에서 이런 사용자들의 주장을 거들었다. “노동계에도 의무를 부담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기획 대담 — ILO 노동기본권이 보여주는 ‘사회적 대화’의 가치”, 경사노위 발행)
같은 정간물에서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주장한다: ILO 기본협약의 비준과 이행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정 3자 주의”, 즉 사회적 대화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계뿐 아니라 사용자들의 의중도 살피는 노사 당사자의 “무기대등의 원칙”, “균형의 관점”의 실현이자 “현실에서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루려는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사실 헌법과 ILO 기본협약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노사정 대화의 거래 대상으로 삼아 노동자들에게 양보와 후퇴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에 기대서는 결코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단호히 싸워서 얻을 권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