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2018 임금협약 잠정합의:
기대에 못 미친 임금, 정규직 전환자 처우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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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투사들은 잠정 합의 부결시키고 단결과 투쟁 위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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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는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2018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한다.
철도노조 강철 위원장은 이번 잠정 합의에 대해 “많은 아쉬움 속에서도 비정상적인 인건비 구조를 바로 잡았[다]”고 자평했다.
철도공사의 ‘비정상적인 인건비 구조’는 이전 정부들이 추진한 구조조정으로 인건비를 대폭 줄인 데서 생긴 문제다. 그동안 정부와 철도공사 사측은 실제 지급해야 할 임금보다 수백억 원이 부족한 ‘총액인건비’를 책정해 놓고는, 인건비가 부족하니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강요해 왔다.
또, 인건비를 줄이려고 인력을 대폭 줄인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2008~2017년 동안 유지보수 인력, 역당 인력, 열차당 인력이 각각 20퍼센트 넘게 줄어들 정도로 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사측은 부족한 인력은 뽑지 않고 기존 인원의 전환 배치와 외주화 확대로 해결해 왔다. 그래서 철도 노동자들은 인력과 정원을 늘려 이런 악순환을 끊어 내길 절실히 바랐다.
그러나 이번 잠정 합의는 노동자들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임금 삭감 효과 — 연차 이월, 임금피크제
첫째, 사측이 부족 인건비라고 제시한 980억 원 중 상당 부분은 결국 노동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해결하도록 했다. 미사용 연차를 전부 이월하고, 초과근로를 억제하는 등의 조처로 부족 인건비의 73퍼센트(721억 원)를 메우도록 합의한 것이다.
결국 이번 잠정합의로 2018년 기본급을 2.6퍼센트(호봉 인상분 포함) 올렸지만, 연차수당과 초과근로수당 등 못 받게 된 임금분이 훨씬 커 결국 올해 임금은 삭감됐다고 봐야 한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미사용한 연차는 향후 3년 안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이월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16년 연차 사용률이 평균 36.9퍼센트(7.9일)에 불과한 상황을 직시하면, 이런 주장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연차 사용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인력 부족으로 연차를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탓이다. 있는 연차도 못 쓰는 판에 이월된 연차까지 쓰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 임금의 일부였던 연차보상비만 깎이는 셈이다.
게다가 반복되는 연차 이월은 사용자들이 ‘연차 촉진’(연차보상비 폐지) 제도를 굳히는 길을 열어줄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연차 사용 촉진이 가장 흔한 인건비 절감 방안의 하나로 사용돼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력이 부족해 초과근로가 줄지 않는 명백한 현실을 개선하지 않은 채 초과근로만 억제하는 것은 수당 삭감뿐 아니라 노동 강도와 각종 사고 위험을 높인다.
둘째,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들은 앞으로 기존보다 임금이 더 많이 삭감되게 생겼다.
기존에는 2년 동안 40퍼센트씩 임금이 깎이던 것을 이번 합의로 35퍼센트씩 깎기로 했지만, 내년부터는 그동안 정부가 지급하던 임금피크제 지원금(1인당 연간 1080만 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의 애초 임금이 7000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감액률이 5퍼센트포인트 낮아져도 정부 지원금 삭감으로 연간 임금이 650만 원이 더 줄어들게 된다.
올해 3분기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1273명인데, 이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철도공사 사측은 ‘희망퇴직’ 방안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삭감이 싫으면 떠나라는 것으로 사실상 강제 퇴직이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크다. 총액인건비가 정해진 상태에서 임금피크제 감액률이 낮아지면 그만큼 다른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줄어들게 된다. 또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별도 정원’으로 분류해 상위 직급자 수를 줄여 승진 적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효과를 낸다. 나이든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삭감돼야 내 임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이 자라나게 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됐고 문재인 정부도 이를 폐지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한 사업장에서만 없애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공공기관들에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철도노조가 임금피크제 폐기를 진지한 요구로 내세우고 투쟁했다면 상당한 호응과 관심을 끌어냈을 수 있다. 투쟁도 해 보지 않고 지도부가 생색내기 수준의 합의안을 가져오면 노동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노조에 대한 냉소를 키울 뿐이다.
이 외에도 신규 직원 임금 차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규직 전환자 처우 차별 — 인건비 증액 몫 못 받고 단협 적용 미뤄져
셋째, 정원 증가를 통한 인건비 증액 합의에서 정규직 전환자 처우 차별이 전제된 것은 문제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이번 잠정 합의로 철도공사의 정원을 3064명 늘렸기 때문에 총액인건비가 늘어나게 돼서 내년 인건비 부족분을 어느 정도(507억 원) 메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정원 증가의 절반은 정규직 전환자(1466명)들인데, 정작 이들은 즉각 6급(정규직 최하 직급) 처우를 받지 못한다. 사측은 애초 비정규직 경력에 따라 정규직 처우 적용을 6년까지 유예하는 방안을 내놨는데, 철도노조 집행부는 즉각 정규직 처우 적용을 요구하지 않고 유예 기간을 2~3년으로 단축하는 양보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현재 철도노조는 사측과 정규직 전환자의 임금과 처우에 대한 교섭을 진행 중이다.)
노조의 안대로 합의가 된다 해도 정규직 전환자들은 최장 3년 동안 6급보다 낮은 임금과 처우를 적용받게 되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양보안에 반발했다.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규직 전환자들, 정규직 활동가들은 지난 10월 철도노조 중앙위에 참관해 양보안 철회를 요구했다.
철도노조가 정원 증가를 통한 총인건비 확대를 위해 상위 직급의 정원을 늘릴 것을 요구한 것은 과거 정원 감축을 일부 되돌리는 것이므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자들의 차별 처우를 인정함으로써, 정규직 전환자들의 처지에서는 정당한 자신의 몫(정원 증가에 따른 인건비 증액분)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불만을 느낄 법하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정규직 직제로 편입하기로 합의를 했고 비정규직 때보다 처우가 개선될 것이므로, 유예 기간을 두는 게 차별 인정은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철도공사 사측이 정규직 전환자의 6급 처우를 유예하면 “80억 원의 인건비 여유분”이 생긴다고 말해 온 것을 고려하면, 사측이 정규직 전환자들의 몫을 일부 떼어내 기존 정규직의 부족 인건비를 메우려 하는 것을 철도노조가 용인해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이번 잠정 합의는 정규직 전환자들에 대해 철도노조 단협을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명시했다. 임금뿐 아니라 노동 조건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이다. 특히 근무체계 적용이 핵심 사항일 듯하다. 직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교대제가 정규직과 다르다. 예컨대 고양 차량의 경우, 정규직은 3조2교대제인데 비정규직은 5조2교대로 야간 근무가 하루 더 많다.
정규직과 동일하게 교대제를 적용하려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노조는 이런 조건 때문에 당장 동일한 단협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이 기존 정규직보다 열악한 조건을 1년 동안이나 유지하도록 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는 이번 잠정합의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비판했다: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덕분에 인건비 부족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하면서, 정작 당사자들의 6급 전환을 3년까지 유예시키자는 차별을 두자는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열을 유발시키는 합의.”
득보다 실이 더 큰 합의
철도노조 집행부는 이번 잠정 합의로 정규직 전환자들의 처우도 어느 정도 개선되고, 기존 정규직들의 임금 부족분도 일부 해결돼, 서로 윈-윈 하는 방안이라고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잠정 합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 염원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의 조건 차등(기존 정규직과 정규직 전환자)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득보다는 실이 더 큰 합의다.
이런 식으로 노동조합 지도부가 특정 집단의 노동조건 차등(정규직 전환자, 신규 채용자, 고령 노동자 등등)을 계속 내주면, 사측의 이간질이 더 잘 먹힐 수 있고 노동조합 조직은 약화되기 쉽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그동안 투쟁보다는 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아 왔고, 그 결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원치 않는 양보를 종용받았다.(정규직 임금 삭감, 비정규직 대규모 전환 제외 등) SR과 철도공사의 통합, 남북 철도 연결을 통한 철도 산업 발전 등의 비전을 국토부나 사측과 협력해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이런 경향을 부쩍 강화시킨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선데다 SR 분리를 주도했던 국토부 관료들이 교통물류실장 및 철도국장 지위로 복귀한 상황을 보면, SR과 철도공사 통합과 같은 민영화 되돌리기가 순탄하게 진행되긴 어렵다. 남북 철도 연결은 북미(그리고 미중) 관계에 종속돼 있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 심화 속에 문재인 정부는 친기업 정책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시간을 공격하고 있다. 직무성과급제,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가 추진되고 있고, 최저임금 추가 개악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1월 10일 노동자대회를 대규모로 치렀고, 11월 21일 하루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철도노조 투사들은 득보다 실이 더 큰 합의를 거부하고 투쟁 건설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투쟁 잠재력은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을 관망하던 노동자들은 점차 불만이 증대하고 그중 일부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철도노조 투사들은 오랫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차별을 받아 온 동료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도 임금과 단협 차별을 받게 되는 합의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노동자 단결을 심각하게 훼손하므로 어떤 단기적인 이익보다 중시해야 할 문제다. 정원 증가(정규직 전환) 덕분에 확충된 인건비로 정규직 임금 올렸다는 비난을 받게 되면 철도노조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철도노조 투사들은 잠정 합의를 부결시키고 단결과 투쟁을 위해 나서야 한다.
2018. 11. 12
노동자연대 조직노동자운동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