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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어중간한 참여론 :
‘조건부 참여’안(案)은 ‘사실상의 불참’안(案)이 아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김명환 집행부의 경사노위 참여 방침(안)에 맞서 조건부 참여(안)이 수정안으로 제출될 듯하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려면 정부의 신뢰 회복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처들로 탄력근로제 개악 철회, 최저임금제도 개악 철회, 노조법 개악 철회 및 ILO 핵심협약 정부 비준, 노정교섭 정례화가 제시됐다.

그러나 조건부 참여론은 몇 가지 중대한 약점이 있다.

유통기한 지난 제안으로 시간 낭비 말아야

첫째, 철 지난 제안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에 이런저런 조건을 연동시키자는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민주노총 중집은 지난해인 2018년 1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결정하면서,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관련 개악이 일방 강행될 경우” 참여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삭감법 국회 통과 직후 노사정대표자회의 불참을 선언했다가 같은 해 8월 두 달여 만에 복귀를 결정했을 때도 “복귀 결정과 함께 정부에 신뢰 회복 조처”를 요구했다.

이처럼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 개악 중단, 신뢰 회복 조처 등은 사회적 대화 참여(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러 차례 제시됐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거듭 무시했다. 이 쟁점들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개악 의지는 더 타진해 볼 것도 없이 충분히 확인된 상태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정부 내의 경제관료가 문제이지 대통령은 믿을 만하다는 기대가 꽤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제안을 할 법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개악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 지금, 수개월 전 제시된 조건을 재탕 삼탕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너무 우려먹은 게 멋쩍다기보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게 진정한 문제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독이 된다.

둘째, 시간 낭비이다. 정부를 만나 신뢰 회복 조처를 타진하거나 답변을 기다려 본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조건으로 개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기조를 확립하고 민주노총 측에 양보와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지 않는다면서, 민주노총이 대화를 거부하는 세력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정부 쪽에 (대화를 위한 신뢰 회복의) 공을 넘기는 게 세련된 책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를 속이려다 우리 편을 속이는 효과를 낸다. 신뢰 회복 제안과 타진은 정부를 폭로해 불리하게 만드는 ‘전술’이기는커녕 투쟁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분 쌓기가 아니라 개악을 막는 실질적 투쟁을 해야 할 때다.

이 점에서, 조건부 참여론이 사실상의 불참론이라는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불참론은 대화에 연연하지 말고 대정부 투쟁으로 나아가자는 것인 반면, 조건부 참여론은 참여를 위해 여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이나 낭비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동요와 망설임으로는 투쟁성을 고취시킬 수 없다

셋째, 동요와 망설임으로는 투쟁성을 고취시키고 투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조건부 참여론은 현 시점에서 경사노위 참여는 부적절하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정부 투쟁으로 확실하게 전환하자는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대화에 대한 미련이 잔뜩 묻어난다.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두길보기를 하는 게 뚜렷하다.

조건부 참여론자들의 이런 마음의 ‘틈’을 정부와 경사노위 측도 보고, 선진적 조합원들도 훤히 본다. 정부와 경사노위는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 측을 분열시키려 할 것이다. 온갖 책략과 꼼수를 부리고 거짓 약속도 공개·비공개로 흘리면서 말이다.

훤히 보이는 동요와 망설임이 조합원들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 조합원들은 이런 틈을 보면서 노조 지도자들이 싸우지 않을 요량이라고 느껴, 투쟁 의지가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이 사회적 대화 참여의 조건을 높은 톤으로 말했다가도 그들 스스로 그 조건을 무시하고 대화 추진으로 내달리는 것을 수개월째 보아 왔다.

가령 최저임금 삭감법 국회 통과 직후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 불참을 결정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삭감법이 폐기되지 않았는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했다.

또, 민주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출발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 폐기를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2018년 4월 24일 민주노총 논평). 하지만 경사노위의 첫 의제로 탄력근로제 확대, 즉 노동시간 유연화가 논의되고 있는데도 지금 김명환 집행부는 경사노위로 들어가려 애쓴다.

이런 전례를 보면, ‘조건부 참여’론자들에게 ‘조건’의 충족은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기 위한 수단일 공산이 크다. 만약 대의원대회에서 ‘조건부 참여’안이 결정되면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 상층 지도자들은 그렇게 실천할 것이다.

그래서 조건부 참여(안)의 4개 조건 중 탄력근로제 개악, 최저임금제도 개악, 노조법 개악 등이 올해 상반기 중에 일단락되면, 지난해 최저임금 삭감법 이후 두어 달 냉각기를 가진 후 사회적 대화 복귀가 논의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좌파들은 경사노위 불참안 단호하게 추진해야

이 점에서, 조건부 참여안은 동요하는 조합원을 설득해 사실상 경사노위 불참 쪽으로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기는커녕 오히려 조합원들을 동요케 하는 모호한 제안에 내맡기는 안이다.

경사노위 불참을 명확하게 결정하고 대정부 투쟁을 결의할 때만 조합원들에게 확신을 주고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할 수 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비뚤비뚤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누구도 이런 지도자를 따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노동자들의 정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급속히 커졌고, 그 때문에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현장 분위기도 빠르게 부정적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런 불만이 투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과 대정부 투쟁 결정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좌파들은 경사노위 불참(안)을 단호하게 추진하고 더 나아가 투쟁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조건부 참여(안)을 사실상의 불참론으로 오해하면 기회를 허비하는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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