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진보계 주류의 조국 지키기는 민주당 차악론의 모순과 위험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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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이렇게 생각한다] 조국 임명에 따른 반사이익 얻으려는 보수 세력에 속지 말라”를 읽으시오.
9월 9일 오전 문재인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임명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인사청문회까지 마쳐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입니다.”
검찰 수사 논란에 대해서는, 검찰의 독자 행보를 정면 비판하지는 않고 중재하는 식으로 말했다. 검찰은 검찰이 할 일을, 장관은 장관이 할 일을 한다면 권력기관 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이 될 거라는 것이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도 임명할 기세였다가 청문회 이후에도 이틀이나 장고를 거듭하며 임명한 일이 검찰로 말미암은 난처함이었음이 또다시 드러났다.
물론 조국 자신은 검찰에 대한 인사권 행사, 법제화,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통제 등을 통해 검찰 개혁을 하겠다고 법무부장관 취임사에서 밝혔다. 자신의 법무부장관 임명 명분인 검찰 개혁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칭 사회주의자 조국의 계급적 본질이 드러나, 진보 염원층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서민층에서는 실망과 반감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층을 결속시킬 유일한 길은 한국당에 대한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진보·좌파의 독자적 입장을 억제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 드러난 조국 일가의 온갖 특혜 의혹뿐 아니라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 때 한 일만 봐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이 촛불 개혁의 완수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조국의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을 돌아보자. 시작부터 박형철·이인걸 등 부패한 반(反)노동 성향의 검사들을 민정수석실 반(反)부패비서관실로 영입했다. 버닝썬 게이트에서 뒤를 봐준 경찰 간부로 지목된 윤규근도 민정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를 했었다. 결국 이들이 데려온 수사관들 안에서 비리와 민간인 사찰 의혹이 나왔다. 노조를 파괴하려 한 사용자 측을 변호한 박형철에게 세월호 특별수사 청원을 거부하는 청와대 입장을 발표하게 해, 많은 사람을 모욕했다. 장관 후보자 부패 검증에 계속 실패한 문제점은 본인 장관 임명에서 정점에 이른 듯하다. 그밖에도, 대통령이 약속을 저버리고 노동개악을 강행하는 것을 옹호하려고 민주노총을 얼토당토않게 비난한 일, 법원의 사법 적폐 감싸기, 박근혜 정치 보복의 피해자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전 의원 사면 거부, 검찰의 노동운동 수사 기능 유지 등등.
조국 옹호론에는 진보적 가치와 대의가 실종돼 있다
상류층 특혜에 대한 의혹들은 청문회에서 해소되지 못했다. 물론 현재 드러난 의혹들로 조국 본인의 연루 사실까지 드러난 건 아니다. 그러므로 설사 위법한 비리 문제라고 해도 가족에 대한 의혹만으로 조국을 비난하는 게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감안하고 봐도 조국은 본인이 소집한 기자간담회와 청문회에서조차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거니와, 그나마 위법은 아니라는 식으로 대부분 해명했다.
이는 그 자신이 여러 해 동안 표방해 온 진보의 가치나, 현 정부가 표방해 온 “촛불 정부”라는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은 행태들이다. 많은 진보 염원 대중은 자유한국당이 원래 그런 자들이라면, 그래도 민주당은 (한국당을 부패한 특권층이라고 비판하면서 집권했기 때문에)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중은 이번 일을 민주당의 위선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국 본인의 부도덕에 대한 의혹이 없거나 해소된 것도 아니다. 민정수석 재직 시절 사모펀드 투자에 대한 특혜 의혹, 조국 이사 시절을 포함해 웅동학원이 무변론 패소를 택함으로써 조국 가족이 수십억 원대의 이득을 본 일 등은 본인 관여 여부가 해명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밝혀져야 할 의혹이다.
여러 의혹들 중 조국의 처가 주연처럼 돼 버린 딸 스펙 만들어 주기 대행진은 검찰 기소로까지 이어졌다. 설사 위법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그것은 법을 초월해 계급적 특권이 대물림되는 현실이 드러난 일이었다. 동양대 총장이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해도, 엄마가 교수인 점을 이용해 조국의 딸이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스펙을 손쉽게 확보한 일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KIST 인턴 경력 부풀리기, 그리고 조국 아들의 허위 인턴 경력 문제도 있다.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상류층이자 고위 전문직인 학부모들의 품앗이 프로그램이었음도 새삼 확인됐다.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손 쳐도, 문재인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과 연계된 조국의 존재가 그 자녀들에 대한 특혜들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물음은 합리적 의심이다.
이런 많은 일들과 의혹들은 민주당과 친민주당계 진보파 지식인들이 말로 표방한 가치들과 달리 실제로는 진보 염원 서민층과 완전한 별세계에 살면서 생색내기 정치를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바로 이 때문에 조국 임명을 둘러싼 진영논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허구적 프레임(또는 사회 주류 내의 프레임이었을 뿐)이다. 우파의 총공세에 맞서 문재인과 조국을 옹호함으로써 지킬 진보적 가치와 대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인 제1선호 정당으로서 더 노골적으로 특권을 향유하고 서민층을 노골적으로 괄시해 온 한국당이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식으로 구는 건 메스꺼운 일이다. 특히 나경원, 김성태 등 한국당 지도자들의 자녀 대입·취업 특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게다가 이들은 박근혜·최순실의 부패 비리도 억울하다며 석방을 요구하는 뻔뻔한 작자들이다.
그러나 한국당이 부패했다는 사실이 민주당의 부패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문재인의 이번 임명 강행은 핵심 지지자 단속에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노동자·청년들은 더 분노할 것이다. 공식 정치 영역에서 이들의 분노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은 데다 형식적인 임명 찬반 프레임 속에서 우파 취급이나 받았으니 그 소외감은 더 클 것이다. 다수는 조국 의혹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계급 특권과 부패, ‘불통’ 문제에서 이전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물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진보파 주류가 침묵하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문재인·조국 편을 듦으로써 오히려 우파에게 이런 불만을 낚아챌 기회를 줬다. 3주간 조국 문제에 침묵하다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부당한 판결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신속하게 낸 정의당, 조국 임명 찬성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수사한 검찰이 적폐 몸통이라며 사실상 정부·여당을 편든 민중당, 조국 의혹 논란 내내 완벽하게 침묵한 채 (조국 구하기용 성격이 있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간담회를 가진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동이 유감스러운 이유이다.
민주당 편들기 진영논리로는 진보적 개혁을 얻을 수 없다
온건 진보파들의 잘못된 편들기 때문에, 한국당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조국 의혹에 분노한 서민층(특히, 청년)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다.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조국 임명을 지지했거나, 아니면 정치 경험이 일천한 20대들은 “모든 정당이 싫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반발심 때문에 이들 중 일부는 조국 임명에 반대해 온 한국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진보·좌파는 조국 임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우파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권력자들의 이분법 프레임을 거부해야 한다. 민주당도 (두번째 선택지이기는 하지만)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면에서는 한국당과 다르지 않은 세력임을 폭로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지지층에게 진짜로 책임을 지는 정치이다. 진영논리가 필사적으로 가로막으려는 계급 정치의 관점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조국을 지키는 식의 전략으로는 진보적 개혁을 결코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민중당, 민주노총의 지도부들은 그런 기대를 포기하지 않은 듯하지만 말이다. 조국이 이런 집단을 의식해 국가보안법이나 난민 문제 등에서 개혁을 주도할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이 점은 중요하다.
첫째, 한국당과 다르지 않은 민주당의 계급적 특권에 대한 대중의 항의를 우습게 치부함으로써, 적폐 청산의 명분(결국 그 동력)을 약화시켜 버렸다. 둘째,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개혁의 동력이 돼야 할 노동계급 운동을 분열시키고 그 정치적 예봉을 무디게 만들었다. 셋째, 조국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부터 검찰·경찰의 적폐 인사들을 받아들인 것만 봐도 그가 표방한 ‘개혁’의 한계를 알 수 있다.
혹자는 그 수많은 의혹을 견뎌 낸 조국의 강단을 보며 오히려 사법 개혁의 적임자 자질을 봤다고도 한다. 그러나 개혁은 뛰어나고 선한 엘리트들이 국가의 요직을 맡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왜 문재인과 조국이 2년 반이나 집권했는데도 검찰이 지금과 같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 그나마 지난 1년간 우파가 온전히 되살아나는 모습을 우리가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촛불 운동의 여파 덕분이었지, 문재인 정부의 몇몇 인물들이 개혁을 선물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은 경제 권력에 있고, 자본주의 국가의 임무는 그 권력을 정치적·물리적으로 감싸고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인 정치 권력 교체만으로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는 없다. 지금 같은 경제 침체기에는 더욱 그렇다. 문재인이 지난 1년간 경제 지표 악화 속에서 노동개악 추진을 본격화한 것을 보라. 경제 침체기에는 사용자들이 비용 절감과 이윤 보전의 압력을 크게 받는 데다, 미온적인 개혁조차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어서 양보를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계급의 근본적 이해관계를 거스를 수 없다. 지배자들을 압박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거대한 대중 투쟁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기성정치의 양당 구도에 순응하는 식의 ‘현실’론이나 진영논리가 조장하는 줄서기 말고 혁명적 현실주의/책임정치가 필요하다.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은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정부에게 지금처럼 처신하다가, 노무현의 실패와 함께 추락해, 무기력하게 우파의 득세를 지켜봐야 했던 쓰디쓴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