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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도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 RCEP:
“사회주의”와 무관한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협정

11월 4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제3차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RCEP 제3차 정상회의는 협상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서명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이 참가해 몇 년째 논의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 간 FTA다.

RCEP은 세계 인구의 절반(36억 명)을 포괄하고, 참가국 국내총생산(GDP)의 총합은 27조 달러(세계 전체 대비 32퍼센트)에 이른다. 그 교역량은 13조 4000억 달러(세계 전체 대비 27퍼센트)에 이르는 그야말로 초대형 FTA다.

특히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RCEP 논의를 주도하며, 이를 체결해 동남아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한다. 역내 소비보다 수출을 위한 중간재 생산을 많이 하는 동아시아 국가의 지배자들도 RCEP을 지지한다.

착취 정신으로 뭉친 세계 지배자들 중국은 미국 중심 질서의 진보적 대안이 아니라, 미국과 자본주의적으로 경쟁할 뿐이다 ⓒ출처 아세안 사무국

그러나 다른 FTA와 마찬가지로 RCEP도 단지 자유무역에 관한 게 아니라 자본 자유화와 친기업적 환경 조성을 위한 협정이다.

RCEP은 상품과 서비스 교역은 물론 지적재산권, 경쟁, 전자상거래, 위생·검역, 기술장벽, 분쟁해결 등 통상의 전 분야를 망라할 뿐 아니라 전자상거래나 지적재산권 등에서는 최근의 무역환경을 반영한 최신의 무역규범을 포함한다. 기존의 FTA보다 더 강력한 자본 자유화 요소를 갖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한·아세안FTA에는 없었던 지적재산권 조항이 RCEP에는 들어가 있다.

따라서 RCEP도 체결 당사국들의 노동계급에게 해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최혜국 조항으로 알려진 투자의 원활화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은 RCEP에 참가한 국가들에서 최악의 노동조건이 기준이 될 것이다. 산업안전 관련 조항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좀 더 엄격하게 보장하는 국가는 다른 국가보다 투자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 규제도 가장 허술한 국가의 기준이 FTA의 기준이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을 두고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뱀파이어 효과’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 메콩강 개발에 참가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아동노동을 고용하거나 초착취 공장을 운영해도 처벌을 받지 않고 이윤을 추구할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다른 국가의 자본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즉 RCEP는 국적을 불문하고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협정이다.

이런 협정을 주도하는 중국을 두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동아시아 제국주의 경쟁

2017년 1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를 선언할 때까지 RCEP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적’(또는 진보적) 국제무역질서로 언급되곤 했다. 이제 TPP가 무력해진 상황에서 RCEP이 친기업적인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는 본질이 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영논리의 소재는 남아 있다. RCEP 제3차 정상회의가 끝나자, 미국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설명하고, 호주, 일본, 한국 등을 협력 국가로 언급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조했다. 다음 날 시진핑은 상하이에서 열린 제2차 중국국제수입박람회에서 중국은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며 국제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런 신경전은 노동계급의 이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제국주의 국가 간 패권 경쟁일 뿐이다.

한편, 인도도 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인도 총리 모디는 RCEP 체결로 저가의 중국 제품이 인도로 몰려와 무역수지 적자가 대폭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인도의 관방 싱크탱크인 인도개조국가연구원은 “인도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 무역협정에 서명하면 이들 국가뿐 아니라 이 지역과의 무역적자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가 RCEP 협정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일본도 서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2월 5일자 〈환구시보〉의 보도를 보면, 11월 29일 일본 경제산업성 차관 마키하라 히데키는 “일본은 인도가 없는 상황에서 RCEP에 대한 서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RCEP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2020년에 RCEP이 체결되리라고 장담하는 것은 이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일본, 인도 사이에도 제국주의적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동아시아가 세계 자본주의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산업 생산이 활발한 지역이다 보니 이윤을 두고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거짓말

문재인과 대다수 한국 언론들은 “RCEP 타결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이 시작됐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타결된 것이 아니다. 한국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왜곡 보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받아쓰기’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는 “RCEP 타결”이라고 했다가 남희섭 변리사가 외신 보도를 근거로 정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협정문 타결”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 말도 사실 왜곡이기는 마찬가지다. 조약이 타결되면 협정문이 나오는데, 협정문은 타결되고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완전한 이율배반이기 때문이다.

12월 5일 RCEP을 통해 무역 시장 다변화를 이뤘다며 자화자찬한 문재인 ⓒ출처 청와대

중국 정부도 공식적으로 RCEP 타결은 물론이거니와 협정문 타결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결국 산업통산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는 “RCEP 참여국들이 잔여 협상 마무리 후 협정문 법률 검토를 거쳐 내년 정식 서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협상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RCEP 협상에 큰 기대를 걸며 띄우는 것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한국 경제가 입는 타격을 만회하고, ‘신남방정책’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수입에서 아세안 10개국에 대한 수출과 수입 비중은 각각 2위(16.55퍼센트)와 3위(11.14퍼센트)를 차지한다. 특히 베트남 등 아세안 10개국은 중국과 인도와 더불어 최근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다수 재벌들은 RCEP 협상 체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RCEP이 2020년에 타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중국과 인도, 일본 등의 갈등이 암초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타결되지도 않은 무역협상에 대해 “타결됐다”고 설레발치는 것을 보면 신남방외교에서의 치적이 필요할 만큼 국내외 사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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