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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총선:
혼란을 거듭하는 공식정치

“개혁보수”를 부르짖으며 새로운보수당을 만들겠다던 유승민이 2월 9일 불출마와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한국당에 흡수통합되는 것이다.

같은날 한국당 대표 황교안은 1980년 5월 광주 항쟁과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 선포를 “1980년, 그때 뭐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다]”고 말했다.

5일에는 1월에 박근혜에게 죄송하다며 눈물 콧물 짜며 불출마 선언을 했던 한선교가 한국당의 비례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의 대표가 됐다. 아마 한국당이 수도권 지역구에 차마 내세우기 어려운 우파·친박 성향의 인물들이 이 비례정당으로 공천을 받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몰락하며 당시 우파 여당이 분열한 지 3년 만에 재통합한 것이다. 그래 봐야 도로 새누리당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흩어졌던 우파가 다시 통합해 힘을 키운다는 면에서 보면, 그저 비아냥거리며 우습게만 볼 일은 아니다. 마지못해서긴 하지만 황교안이 이낙연 전 총리를 상대로 종로에 출마한 것은 이번 총선이 2년 후 대선의 전초전 성격임을 드러낸다.

한편, 함께 당을 만들었던 유승민계가 한국당과 통합하기로 하자, 안철수가 돌아와 옛 안철수계 의원들을 규합해 실용 중도 정당을 표방한 국민당(가칭)을 만들었다. 안철수는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주류 양당을 모두 비판한다. 양당 구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둘 다에 실망한 중도층을 붙잡아 보겠다는 의도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몰락 이유가 너무 부패하고 우파적인 면모로 일관한 것에 대해 대중적 반감이 폭발한 것이었으므로, 우파가 다시 살아나는 상황은 그저 ‘상식’의 시각으로만 보면 의아할 수 있다.

문재인의 개혁 약속 배신

그러나 이런 변화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지지율 하락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40퍼센트대(민주당은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초 경제·안보 위기의 심화 속에서 기업주들이 본격적으로 조바심을 드러내자 문재인 정부는 친기업 기조를 노골화했고, 특히 노동자들이 여기에 반발했다. 이후 꾸준히 문재인 정부는 친기업 규제 완화와 노동개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총선용 영입 인재’에도 우파가 좋아할 만한 주류 인사들이 한국당보다 많다.

또한 지난해 후반부에는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집권 세력의 위선과 부패 때문에 진보계는 물론이고 (임기 초반 소극적이나마 문재인을 지지했던) 중도계에서도 이반이 생겼다. 특히, 청년층이 크게 환멸을 느끼며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여권이 총력을 기울인 것은 진영 논리의 강화였다. 민주당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한국당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여권은 반우파 포퓰리즘 미사여구를 꺼내들고 일부 온건 진보 인사들을 등용하며 연합 제스처를 보였다. 이런 전술은 온건 진보계 지도자와 진보 염원층 일부에 차악론의 형태로 먹혔다.

그러나 진영 논리는 상대적인 것이라서 민주당의 이런 진영 논리 대응은 우파 결집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다. 물론 위기에 직면해 문재인 정부가 우선회를 노골화한 것이 우파의 사기를 올린 결정적 요인이다.

최근 우파가 재결집하고 중도정당이 신설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두길보기를 다시 강화했다. 재결집한 우파에게 사용자 계급이 쏠리지 않도록 친기업 기조를 강화하는 한편, 진보적으로 보일 만한 포퓰리즘적 행보도 선보일 것이다. 최근에 지소미아 폐기를 다시 거론한 이유다.

그러나 1년 이상 지속된 노골적인 친기업·반진보 실천과 권력형 부패 의혹 덮기 때문에 진보층에서의 신뢰가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총선에서 한국당의 승리 가능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민주당에게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이처럼 현 정국 상황을 초래한 주된 요인이 문재인 정부가 대중의 진보 개혁 염원을 배신하며 실망과 환멸을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정의당, 민중당은 비례 의석 확보가 전보다는 쉬워진 점을 이용해 이런 기대감을 현실화하려고 한다. 최근 두 당 모두 시민선거인단(정의당), 민중공천제(민중당)라는 이름으로 당원이 아닌 진보적 대중을 참여시키는 개방형 경선을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진보정당들은 민주당 차악론과 진영 논리에 불필요하게 타협해 왔다. 최근 정의당 경남도당 노창섭 위원장은 경남 창원 성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최종 확정도 되지 않았는데도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급 기반이므로 진보정당들은 문재인 정부와는 계급 기반이 다르다. 그 때문에 일관되게 문재인 정부 편들기만 한 것도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진보층의 불만을 대변해야 한다는 압력도 크다. 최근에는 정부 비판의 톤이 조금 높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부동산 정책 등이 비판 대상이다. 일부 진보계 정치인들의 경우,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차별화 행보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양극화

최근의 정치 상황을 종합하면, 첫째, 경제·안보 위기에 직면해 문재인 정부가 우선회를 본격 시작했다. 둘째, 그 때문에 노동계급의 불만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위기를 낳았다. 셋째,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문재인은 우파 눈치를 더욱 보게 됐고, 덕분에 우파가 사기를 회복해 우파 재결집을 이루고 있다. 넷째, 이런 상황 때문에 정의당이 진보적 선거 대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결국 최근 공식정치가 양분돼 분열과 쟁투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속되는 경제 위기와 불평등 심화를 배경으로 한 세계적 정치 양극화 추세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노동계급의 불만과 염원이 독자적 계급정치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정치에서는 우파와 중도파 간의 양극화라는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런 최근 동향들을 봤을 때, 우파의 회복에 대한 경계가 문재인 정부 차악론과 방어론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부패를 옹호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 성장에 해롭다.(그럴수록 차악론과 진영 논리가 강화될 것이다.) 우파의 회복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퇴진 운동이 담고 있던 진보 염원에 역행하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본지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때부터 지적해 왔듯이,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계급 기반상 필연적이다.)

게다가 각종 여론 지표를 보면, 진보계와 중도계 모두 진영 논리로 수렴되진 않았다. (대체로) 양측 지지자들의 결집 강도가 공고해진 만큼 무당층도 더 늘었다. 이는 촛불 운동의 염원이 실현되지 않는 것 때문에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 대부분이 불신받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제3세력을 표방한 안철수가 (신인이던 8년 전 같은) 기대를 별반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번 총선에서 (필연적이지는 않아도) 노동계 대중정당들이 지지를 확대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 염원 대중을 갈수록 실망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총선에서 노동계 대중정당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투쟁을 위해서도, 우파 견제를 위해서도 유용하다.

지난 경험에서 정치적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부패가 연속해서 터지던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고,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어 역대 최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선거적 성공을 통해 차기 정권에서 민주당의 연립정부 파트너가 되려는 욕심에 매몰돼, 진보당은 분열을 자초했다. 그 결과 진보당의 신망과 위세가 급속히 추락했고, 박근혜는 그런(대중의 실망이라는)조건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