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훈 인천교육감에게 보내는 전교조 교사의 편지 :
국회 기자회견 참석 때문에 교사가 징계위에 회부되는 게 옳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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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인 조수진 교사는 인천 영종중학교 교사이자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이다. 조 교사는 2015년 9월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과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국회 안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기자회견 후 평화롭게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다른 연행자들과 함께 무죄 판결을 받았고, 다행히 지난 2월에 이 판결이 확정됐다. 부당한 연행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도 받았다.
그러나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인천시교육청 감사관실은 관할교육지원청에 징계위원회를 개시하라고 했다.
3월 24일 조 교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런 징계위 소환이 부당하며 도성훈 인천교육감이 자신의 권한을 발휘해 징계위 철회를 요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3월 25일 현재 징계위는 일단 연기된 상태이지만, 징계위 날짜가 다시 잡힐 가능성이 있다.
이에 조 교사의 글을 소개한다.
도성훈 교육감님 안녕하십니까?
영종중 교사 조수진입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지만 이 편지를 꼭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영종중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저에 대한 징계위원회 안내를 받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2월의 일이었지요. 장장 5년 동안 마음 졸인 재판에서 마침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취하했더군요. 국회 안 기자회견 참석을 이유로 단죄하려 한 검찰의 기소 사유가 2018년 5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난 후 그 효력이 상실됐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무리한 연행에 대해서는 국가로부터 손해배상도 받았습니다.
교육감님, 혹시 아십니까? 검찰과 법원 우편물이 집으로 배달될 때마다, 교감 선생님이 징계위원회 건으로 부르실 때마다, 재판 출석으로 수업을 바꾸고 휴가를 내야 할 때마다 교사인 저는 불편과 불안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무죄 확정이라니 속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천시교육청 감사관실이 제가 속한 남부교육지원청에 위 사안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속행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다 끝난 일인 줄 알고 두 다리 쭉 뻗고 지냈는데 깜짝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3월 24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었던 해당 징계위원회를 멈추기 위해 새벽 4시가 넘도록 이 편지를 썼습니다.(3월 25일 현재, 징계위는 연기된 상태다.) 본인에 대한 징계위원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당하기에 징계 등 의결 요구권자인 도성훈 교육감님께 “징계의결 등 요구의 철회”를 호소합니다.
도성훈 교육감님!
‘국회 안 집회 금지’를 담은 집시법 11조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수많은 인권 단체와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해당 조항은 2018년 5월 31일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관련 효력이 소급해 상실됐고, 관련 사유로 본인에게 진행된 검찰의 공소사실 또한 범죄가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해 1심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2018년 8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한, 2020년 2월에는 검찰 측 상소 취하로 무죄 판결이 최종 확정됐으며, 앞선 2019년 1월에는 공권력의 무리한 집행 여지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로 같은 사안에 대해 국가가 본인에게 4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본인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를 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시교육청은 징계사유에 대해 충분히 조사한 후 징계의결 요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천시교육청이 남부교육지원청에 징계위원회를 속행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본인에 대한 징계 시도의 근거가 된 2015년 9월 23일 국회 기자회견은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임금피크제 도입 ▲저성과자 개별해고 허용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 등 “현대판 노예법”과 “노동 대참사”로 불리는 노동개악안에 항의하는 행동의 일부였습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평화롭게 해산하려는 찰나 경찰이 에워싸 마구 연행한 것이 당시 국회 안에서 있었던 일의 진실입니다. 무리한 공권력 집행 여지가 있음을 법원도 인정했기에 무죄 판결과 별도로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것입니다.
“노동 존중”을 강조하는 인천시교육청 도성훈 교육감님께 솔직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남의 재산을 탐하거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닙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교조 조합원이자 교사 노동자로서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에 항의하는 합법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이 본인이 징계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까.
아니면, 합법 기자회견 중 제자들이 나가게 될 사회를 더 팍팍하게 하려는 정부의 노동개악에 항의한 것이 징계의 이유입니까.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 촛불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섰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이후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2015년 당시 제가 참석했던 기자회견은 법을 어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정당성마저 입증됐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제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부당한 정권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 합법적으로 참여한 제가 정녕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인지요.
도성훈 교육감님에게는 “징계의결 등 요구의 철회” 권한이 있습니다. 무죄 판결과 국가손해배상까지 받은 본인의 사안에 징계위원회 절차를 기어이 ‘강행’하실 수도, 혹은 ‘철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타 시도에서는 같은 건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현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제게만 유일하게 징계위원회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요. 전교조 지부장 출신의 진보교육감이신 도성훈 교육감님은 이 사안에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경찰의 무리한 연행, 40시간 이상 유치장 구금, 검찰 기소 등 공권력이 휘두르던 칼날은 결국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로 멈춰 섰습니다. 무죄 판결과 국가손해배상을 받았습니다. 징계를 ‘강행’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요.
교육감님께서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은 교사 조수진에 대한 행정 폭력과 괴롭힘의 칼자루를 꺾어 버리실 수도 휘두르실 수도 있습니다. 교육감님의 선택은 저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부디, 징계의 칼자루를 거둬 주십시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받은 것이 확인돼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도, 억울하게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교사들의 피해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저는 교육감님께 “징계의결 등 요구의 철회”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추신) 3월 24일 전교조 인천지부는 인천시교육청에 “징계의결 등 요구의 철회” 요구 공문을 보냈으며, 3월 26일(목) 12시까지 답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당사자인 저의 이의제기로 징계위는 관할지원청 내부 판단에 따라 연기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