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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인가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정부와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더 혹독하게 쥐어짜려 한다 5월 1일 메이데이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코로나19 비정규직 긴급행동이 주최한 집회 모습 ⓒ조승진

심각한 불황이 다가오고 있다. 위기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장들일지, 아니면 노동자일지 결정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공공 서비스와 노동계급 생활 수준을 공격하는 가혹한 긴축이 뒤따랐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지금 다가오는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고 한다. 1930년대 대공황에 더 가까울 듯하다고 한다.

그때는 실업자가 속출하고 파시즘이 부상한 시대였다. 거대한 노동자 투쟁도 벌어졌다.

2020년은 세계 GDP가 제2차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하락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위기는 자유 시장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음을 보여 줬다. 그리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코로나19 위기가 끝나고 긴축과 불평등이라는 “정상”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위기에 빠지는 경향을 타고난 이 체제를 끝내야 할 것이다.

논평가들은 경제 위기가 자유시장 체제 외부에서 오는 문제이고 그런 문제만 없다면 이 체제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는 코로나19가 확산되고 그로 인해 여러 제한 조처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이미 취약했다. 세계 자본주의는 2007~2008년 위기에서 제대로 회복한 적이 없었다.

2008년 위기 때 금융 부문과 주택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이는 수익성 위기라는 훨씬 심각한 위기의 증상일 뿐이었다.

과잉생산

경제 위기는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생산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가 조직되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장의 “무정부성”을 띠고 있지만 일터에서는 “독재적”이라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에는 계획이 있지만, 기업들과 산업 부문을 아우르는 계획이나 경제 전체 차원의 계획은 없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팔리지 않는 상품의 과잉생산이, 다른 한편에는 결핍이 공존한다.

2020년 4월 역사상 처음으로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가 됐다는 놀라운 소식이 그런 무정부성을 잘 보여 준다. 누구도 사려 하지 않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시장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원유를 저장할 공간마저 부족할 정도다.

지난 1월 중국 정부가 마지못해 우한시(市)를 비롯한 몇몇 지역을 봉쇄했을 때부터 원유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원유 소비량이 몇 주 만에 20퍼센트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려고 러시아를 상대로 유가 전쟁을 개시했다. 원유 수요가 격감하는 바로 그 시점에 생산이 늘어난 것이다. 사우디가 경쟁 상대를 타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경쟁은 과잉생산만이 아니라 수익성 하락 위기도 낳는다. 이것이 불황의 근본 원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조처나 봉쇄령 하에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백만장자들이 부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이다.

마르크스는 1868년에 이렇게 썼다. “어떤 나라에서 노동이 멈추면 그 나라는 1년은커녕 몇 주 안에 망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이다.”

노동자들은 생계를 이어 가려면 임금을 받고 노동력(일하는 능력)을 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기가 생산한 것의 가치를 온전히 돌려받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 격차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바로 이 잉여가치가 자본가들의 이윤의 원천이다.

자본가들이 이 잉여가치에서 자기 몫을 얼마나 챙기느냐는 그 기업의 효율성에 달려 있다. 기업과 국가들은 상호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윤을 기업주의 개인적 부로 챙기지 않고 생산에 재투자한다.

자본가들은 경쟁 때문에 최신 IT 기술에든 신식 생산 설비에든 더 효율적인 생산 수단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경쟁자를 제치거나 따라잡기 때문이다.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개별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규 투자의 대부분은 노동이 아니라 기술과 기계 설비로 들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기계에 대한 투자가 노동에 대한 투자에 비해 훨씬 크게 늘어난다.

영국 제조업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인된다. 제조업은 여전히 경제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이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수는 제1차세계대전 때보다 줄었다.

개별 사장들은 여전히 막대한 돈을 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기에 투자 대비 이윤의 비율은 하락한다.

자본가들은 수익성 하락에 어떻게 대응할까? 사장들은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 조건을 공격해 착취율을 끌어올려서 노동자들에게서 잉여가치를 더 많이 짜내려 할 수 있다.

이때 정부도 덩달아 긴축 정책을 펴거나 공공 서비스를 공격할 때가 많다.

다른 방법도 있다. 기업들의 파산으로 비효율적인 자본을 제거해 다시 호황이 오도록 체제를 정리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호황은 또다시 다음 불황이 찾아올 조건을 마련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나타난다고 했다. 소수의 거대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큰 기업들이 파산하면 경제에 엄청난 구멍이 생기고 불황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마불사”라는 이유로 은행들과 대기업들이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다.

구제금융

2008년 위기의 근저에 있던 원인은 수익성 위기였다. 이에 대응해 각국 정부는 가혹한 긴축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기업과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의 비용을 치르게 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대폭 낮추고, 값싼 신용을 시장에 쏟아부었다.

수익을 못 내는 기업들을 정리하기는커녕 “좀비 기업”의 성장을 촉진했다.

좀비 기업이란 신용이라는 생명 유지 장치가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북미와 유럽 기업의 10~20퍼센트가 이런 좀비 기업이다. 세계 부채는 GDP의 300퍼센트를 넘겼다.

그래서 회복세는 매우 미약했고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세계 자본주의는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여러 나라 정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 대응해 이번에도 기업들에게 더 많은 구제금융을 제공한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2007~2008년에 그랬던 것처럼 값싼 신용 정책에만 기대기 어려운 처지다. 이미 금리가 기록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파산할 수도 있지만 파산하는 기업은 대기업보다는 주로 소규모 기업들일 듯하다. 따라서 기저의 수익성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벌어질 일을 둘러싸고, 또 이 엄청난 불황의 대가를 누가 치를지를 두고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방향

지배계급 일부는 사회의 운영 방식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안다. 친기업 언론 〈파이낸셜 타임스〉는 자본주의를 “리셋할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사설란에 이런 주장이 실리기도 했다.

“지난 40년을 지배한 정책적 방향을 완전히 뒤집는 급진적인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 승전국 지도자들은 승전하기 전부터 다음 일을 계획했다. 영국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약속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1942년에 발간했다.

“이런 선견지명이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체제 내에서 개혁을 제공할 능력이 약해졌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에는 전쟁 동안 막대한 자본이 전쟁으로 파괴됐기 때문에 전례 없이 긴 경제 호황이 왔다.

4월 6일 민주노총서울본부와 서울민중행동이 주최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 ⓒ이미진

지금은 불황이고 사장들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려 한다.

현재 기업주들은 기업 편에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요구할 것이다.

영국 보수당의 긴축 정책을 설계한 전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영국산업연맹(CBI)에게, 지금은 정부 지출을 늘릴 때고 “공공부문 부채를 줄이는 것은 나중 문제”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2008년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죽음”을 논했다. 자유시장 정책의 실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이윤을 지키기 위한 긴축 정책이 이어졌다.

인상적인 저항들도 있었다. ‘아랍의 봄’과 유럽의 반긴축 항쟁들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대체로, 급진적 운동들은 결국 약화되고 저지됐다.

다시 한 번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그러나 중대한 변화를 쟁취할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주들이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못하게 하려면, 위기의 결과를 결정짓기 위한 투쟁을 고취해야 한다. 바로 지금 그래야 한다.

영국 노동당[개혁주의 세력]과 여러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호소하는 ‘사회적 평화’와 ‘전 국민적 단결’을 거부해야 한다.

기업주들과 맞서고 위기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관철하는 데에서 투쟁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윤 체제의 논리와 단절하지 못하면 기업주들이 우리 계급에게 그 대가를 떠넘길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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