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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빌미로 한 원격의료(의료 영리화) 중단하라

정부가 원격의료 추진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을 시작으로 보건복지부 차관, 산업부 장관, 정세균 총리까지 연이어 원격의료 제도화 추진 필요성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의료 영리화의 상징으로 돼 있는 원격의료 추진 소식에 노동조합과 보건 엔지오 등이 크게 반발했다. ‘코로나 영웅’ 운운하더니 뒤통수를 친다며 의사협회도 반대하고 나섰다.

반발이 만만치 않자 정부는 ‘코로나 재확산에 대비해 비대면 진료를 추진한다’고 표현을 살짝 고쳤지만, 그 의도를 숨길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원격의료를 포함해 의료 영리화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가 원격의료와 뭐가 다른지 설명하지 못한다.

원격의료는 KT, 삼성 등 대기업 위한 것 KT가 개발한 원격 재활훈련 서비스를 시연하는 의료진 ⓒ출처 KT

물론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서 병원을 찾아 오기 어려운 사람들과 감염 위험이 큰 고령층을 대상으로 전화처방 등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미 그렇게 해서 수십만 명이 전화처방을 받았다.

평상시에도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산간·도서 벽지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조처가 보완적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불가피한 경우에는 전화처방이나 대리처방 등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 보완적 수단이 아닌 핵심 수단, 즉 의료 시설과 인력이 없는 게 진정한 문제다. 전화나 영상으로 이들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너무 크다. 지금 기술 수준으로는 영상 통화 수준을 넘어서는 가장 간단한 검사나 치료도 적용하기 어렵다. 검사와 치료에는 위험과 책임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핵심 조처들은 전혀 추진하지 않으면서 원격의료를 확대하겠다고 하니 그 동기가 다른 데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원격의료도 반대하고 공공의료 확대도 반대하는 의사협회의 주장도 지지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새로 설립된 공공병원은 단 한 개도 없다. 40명 정원의 공공의과대학 설립도 몇 년째 시간만 끌다가 결국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조처들(노동조건 개선 등)은 너무 더뎌 그 효과가 미미하다. ‘문재인 케어’라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정부가 추진했지만 아직 약속한 70퍼센트에도 한참 못 미치는 데다가 보험료는 매년 3퍼센트씩 인상되고 있다.

정부는 보통의 환자들이 병원을 옮길 때나, 만성 질환자들이 단순 반복 처방을 받고자 할 때 원격의료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병원을 옮길 때 자료 전송이 안 돼 곤란을 겪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방 시기를 놓치는 만성 질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필요를 충족하면서도 환자의 안전(과 정보)을 보호하려면 정부가 책임지고 환자의 정보를 보관, 전송해 줘야 한다. 그래야 환자들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거나 정보가 민간 기업의 수중에 넘어가 악용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민간 기업에 맡겨 시장을 확대하고 의료 ‘산업’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 의료기기와 제약 기업의 규제를 완화했다. 데이터3법을 통과시켜 민간기업들이 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의 데이터를 헐값에 얻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관리서비스법을 추진해 민간기업들이 병원에 환자를 알선해 주거나 처방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원격의료는 이런 규제 완화 조처들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내는 고리로 자리매김돼 왔다. KT나 삼성 등 국내 ICT 대기업들이 원격의료 합법화를 그토록 요구해 온 이유이자, 일부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가 의료 영리화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기업주들의 바람이 실제로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부풀려진 ‘4차산업혁명’론이나 ICT 기술에 대한 거품은 이미 조금씩 꺼지고 있다. 4차산업혁명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의료 분야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지만 가장 앞선 ‘왓슨’의 개발사 아이비엠은 스스로 그 한계를 인정해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현재 가장 발전한 ICT 기술도 대면 진료를 대체하기는커녕 보완 기능도 매우 제한적이다. 의료진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그 효과를 얼마나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왓슨’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장기 불황 속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바라는 문재인 정부와 기업주들은 원격의료를 통한 이윤 획득 시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 위기를 원격의료를 활성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를 저지해야 한다. 민주노총 등이 원격의료 추진 등에 반대하면서도 더 큰 틀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 태세를 이완시키는 효과를 낼 뿐이다.

코로나 재확산 대비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공공병원과 의료 물자, 숙련된 공공의료 인력이다.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집권 이후 호시탐탐 의료 영리화를 추진해 온 문재인 정부 2019년 5월 22일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 ⓒ출처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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