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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위기를 겪는 조직 좌파

조직 좌파들이 지도하는 한국 학생운동이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직 좌파들은 대체로 그들이 수용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통한 활동가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PD 경향은 1991년까지 소련을 모종의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삼고 있다가, 소련이 몰락하자 정체성 정치, 자율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 이제 이들은 스탈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는, 노동자 권력을 포함해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율주의자들은 다중의 자율적 행동을 단순히 예찬하고, 연대회의도 “필요한 것은 운동”이라며 운동에 정당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공통점은 ‘대안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의 약점은 운동 자체를 찬양하는 데 머물러 있다 보니, 운동이 특정 국면에서 제기하는 전략·전술적 쟁점들을 종종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진보적 학생들을 주변에 모을 수는 있지만, 변혁적 반자본주의 활동가 층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기는 어렵다.

NL 경향을 지도하는 주체주의자들도 소련 몰락 후에 위기를 겪었으나 PD만큼 큰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 이들이 대안으로 삼던 ‘우리식 사회주의’ 북한이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했는데도 1990년대 말 건재한 듯했기 때문이다.

NL 경향 전체는 좌파 민족주의 때문에 제국주의 억압 반대 정서와 융합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1990년대와 2000년대 대부분 동안 학생 운동 내에 다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들어 가시화한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 때문에 NL 경향 내에서도 북한을 대안으로 삼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NL 경향 내에서 주체주의자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연대회의나 한총련 등의 학생운동 주요 조직 좌파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재생산이 어려워지자, 더 넓은 범위의 학생들을 접촉할 수 있는 학생회 활동으로 정치 활동을 용해하곤 했다. 실제로 연대회의와 한총련은 학생회 연합체의 조직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학생회와 정치조직은 지향하는 강령 수준과 역할이 다르다. 정치조직은 고유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사회 변혁을 위한 대안을 둘러싸고 건설돼, 주되게 운동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반면, 학생회는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둘러싼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하고, 몇몇 정치 쟁점을 둘러싼 진보적 활동을 벌임으로써 더 넓은 학생들을 운동에 끌어당길 수 있다.

따라서 학생회와 정치조직은 학생운동에서 모두 필요한 조직이고, 또한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 기존 조직 좌파들처럼 정치조직을 학생회에 용해시킬 경우, 정치조직의 이데올로기를 학생회 수준으로 낮춰야 하는 압력에 노출돼 오히려 이데올로기 재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물론 학생회와 정치조직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는 정치조직이, 학생회는 교육문제만’ 식의 역할분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이익과 정치는 무관하지 않다. 남종영 기자처럼 학생회와 정치를 대립시킬 경우, 학생운동은 오히려 정치적 방향을 상실한 운동으로 변질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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