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 미국의 막가는 점령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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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지난달 30일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은 이라크에서 안정적인 민주 정부를 수립하며 이라크 경제를 복구하는 포괄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경제 복구’의 최근 사례를 김용민 기자가 말한다.
이라크의 “언론 자유” ― 매수하거나 폭격하거나
부시가 해군사관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던 그 날 〈LA 타임스〉는 미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이라크 신문사에 비밀리에 돈을 지급해 왔다고 폭로했다. “미군 정보작전 전담 부대”가 쓴 이 기사들은 독립적인 언론인이 쓴 공정한 기사로 포장돼 신문에 실려 왔다.
기사의 내용은 미군과 이라크군의 활동을 추켜세우고, 저항세력을 비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재건 사업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기사들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제목이 달렸다. “더 많은 돈이 이라크의 발전을 위해 쓰이다”, “민주적 이라크로 향하는 바람이 불다”.
미군 정보작전 전담 부대는 아예 이라크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을 직접 인수해 친미적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미국 법률은 군대가 미국 내의 언론을 이용해 선전 활동을 하거나 미국 내에서 심리전을 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 미군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줄기차게 말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영국의 〈데일리 미러〉는 조지 W 부시가 지난해 4월 중동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 본사를 폭격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은 팔루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진행하고 있었고, 부시는 ‘알 자지라’의 보도를 매우 못마땅해 했다.
미군은 실제로 2001년과 2002년에 ‘알 자지라’ 방송의 아프가니스탄 지국을 폭격했고, 2003년 4월에는 바그다드 지국의 기자가 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석유 강탈 ― “식민지의 덫”
이라크의 재건 사업은 엉망진창이다. 재건 사업을 둘러싼 비리가 횡행하는 한편, 재건 기금의 막대한 부분이 재건이 아니라 ‘치안 확보’ 활동에 쓰이고 있다. 전기·수도·보건 체계의 회복 전망은 거의 절망적이다.
그러나, 석유 산업과 관련된 동향은 이와 딴판이다. 미국과 영국의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이라크 석유 산업의 ‘재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빈곤과의 전쟁’(‘War On Want), ‘신경제재단’(NEF), ‘플랫폼’ 등 영국의 시민단체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석유 약탈 계획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원래 석유 개발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오는 15일 총선 이후 구성될 새 의회와 정부가 제정할 ‘석유법’에서 다루게 돼 있지만, 다국적 석유기업들은 이미 과도정부측과 밀실 협상을 벌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미·영 정부가 석유 산업 재건을 외국 회사에 맡기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말한다.
협상은 ‘연합군임시행정청’(CPA) 통치 시절 체결된 ‘생산물분배협정(PSA)’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이 협정대로 하면 서방 석유기업들은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그것도 무려 25∼40년 동안 원유를 공급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서방 기업은 보통 12퍼센트인 투자 수익률을 42∼162퍼센트까지 올릴 수 있다. 반면, 이라크는 최대 2천억 달러 정도를 손해 보게 될 것이다.
앤드루 심스 NEF 정책국장은 “이라크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식민지라는 덫에 발목을 잡히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의 실체가 원유와 약탈, 이윤 추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루이스 리처즈 ‘빈곤과의 전쟁’ 사무총장)
저항세력 탄압 ― “도시를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라크 내무부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총선 치안 유지를 위해 이라크인을 제외한 모든 아랍인들의 이라크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제껏 미군 점령 하에 치른 모든 선거들에서 이와 비슷한 과정이 반복돼 왔다. 매번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고, 고속도로와 주요 도로가 봉쇄되고, 도시 간 이동이 금지됐다. 그리고 저항세력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있었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미군 해병대 2천5백 명과 이라크 정부군 1천5백여 명이 이라크-시리아 국경 부근의 도시인 후세이바와 카라빌라, 우바이디 등을 공격했다. 〈미군통신사〉는 미군이 “그 도시를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습이 수십 차례 있었고, 수많은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미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지역들은 지난 10월 15일 헌법초안 찬반투표 당시 압도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곳이다. 미군은 지난 9월에 시작된 시리아 국경에서의 군사 작전으로 최소 7백 명의 ‘저항세력’이 죽었고, 1천5백 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반면, 민간인 사망자의 수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군은 현재 1만 3천9백 명의 이라크인들이 감옥에 있다고 발표했다.
“저항은 모든 국민의 권리다”
지난 1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일곱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는 이라크 안정화에 진전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1월 한 달 동안 발생한 미군 사망자만 87명이다. 이것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 한 달 사망자 수로는 가장 높은 수치 가운데 하나다. 10월에는 99명이 사망했다.
미군이 자살폭탄 테러가 감소했다고 발표한 바로 그 날 미 해병대 도보 순찰대가 대형 야포탄 형태의 폭발물 공격을 받았다. 해병대원 10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자살폭탄 공격이 줄어드는 반면 미군 사망자 수는 늘어나고 있는 이유가 저항세력의 공격이 더욱 정교해지고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21일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라크의 거의 모든 종파와 정치세력이 참가한 ‘이라크화합회의’가 개최됐다. 알 사드르와 주요 수니파 조직들도 대리인을 파견했다.
회의는 두 가지 주요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수니파의 주도로 모든 참가자들이 미군 철수 계획을 요구했다. 둘째, 모든 참가자들이 공식 성명을 통해 “저항은 모든 국민의 합법적 권리”라고 인정했다.
아랍국가연맹이 주최한 이 회의에는 유감스럽게도 탈라바니 대통령 같은 친미 부역세력도 참가했다. 이 자는 저항세력 탄압의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미군 철수와 저항권 인정에 동의해야 했다는 사실은 이라크인들의 미군 철수 염원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이들은 12월 선거를 앞두고 이를 거스르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2일에는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군대와 경찰의 공격과 저항세력 용의자에 대한 광범한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의 시아파와 수니파들이 함께 합동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수니 무슬림학자연합과 점령에 반대하는 시아파 조직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의 마흐디 민병대가 조직했다. 〈연합통신〉은 이것이 종파간 경쟁 구도로 치러질 선거와는 다른 “단결의 표시”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