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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31지방선거 도전이 성공하려면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향한 온건화 압력이 당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한겨레 21〉(601호)은 민주노동당이 “대안의 정치 세력”보다는 “체제 비판적인 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이 강”하고, 당직공직 분리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 높은 국회의원들이 대중과의 “소통”을 차단당했으며, 열우당과 지지층이 겹치는 까닭에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민주노동당의 행동이 “노동운동의 말살을 가져온다”고 불평했다(〈중앙일보〉 3월 10일치). 이창우 부산시당 사무처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5년 간 임금동결 선언을 제안했다.

이 주장들은 민주노동당의 좌파성·투쟁성 등이 당 지지율 제고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당이 더 좌파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왜 좌파적인 것이 당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경제 위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개혁을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우파적으로 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혁의 가능성이 원천 봉쇄됐다는 뜻은 아니다. 매우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면 자본가들은 개혁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운동에 반격을 가할 시간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일 때는 말이다.

따라서 1백여 년 전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베른슈타인과 벌인 고전적인 논쟁에서 역설했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즉, 개혁을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이 투쟁을 통해 체제 전반에 도전하기 위한 동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 그러나 궁극으로,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에 근거해 국가 권력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개혁을 방어하거나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해에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 길을 따르지 않고 종종 그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개혁 공조’라는 이름으로 열우당의 불성실한 동맹으로 움직이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진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이 열우당과 “닮아 간다”고 비판한다(‘진보정치연구소’의 표적집단 면접 조사 결과).

국회 안에서 민주노동당이 열우당과 공조하는 것은 기성 정치 체제에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노동계급 속에서는 위상을 약화시킨다. 우익만 노무현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도 노무현을 끔찍이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민주노동당의 열우당 닮아가기는 열우당의 위기를 공동 책임지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맞서 대중적 저항을 건설한다면 당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도움된다.

유권자들이 특별히 좌파적이지 않은데 당이 대중의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과 실천을 한다는, 다시 말해 당이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당 일각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잘못됐다.

물론 대부분의 시기에 노동자들의 의식이 신문과 TV, 교육 기관, 기성 보수 정당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기구와 제도 들은 좌파 사상에 적대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이다. 계급 투쟁이 고양되는 국면에서는 노동자 의식이 왼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럴 때 민주노동당이 더 많은 투쟁을 보여 줄수록 당의 선거적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대규모 투쟁이 일어나 사회 이데올로기가 왼쪽으로 이동해야 민주노동당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계급 투쟁이 저조해 대다수 노동자들의 사상이 지배계급의 사상으로부터 주되게 영향을 받는다면 당의 성장은 매우 지체되거나 후퇴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계급 투쟁 자체를 만들어 낼 수야 없겠지만, 계급 투쟁이 고양되는 시기에 민주노동당이 이런 투쟁을 고무하는 정책을 편다면 당은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 투쟁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구사한다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예컨대, 2004년 4·15 총선을 전후해 계급 투쟁 수준이 매우 높았다. 수십만 명이 탄핵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 덕분에 사회 이데올로기가 왼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은 기대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총선 뒤에도 민주노동당은 확실히 대중 투쟁을 고무하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2004년 6월 김선일 피살 국면에서, 그리고 그 해 말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서도 당은 그렇게 했다.

그렇게 투쟁했건만, 파병을 막지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도 못했다. 그 투쟁들에 참가한 당원들은 좌절감을 느꼈다. 여기에서 대중 투쟁으로는 안 된다는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평가였다. 진정한 문제는 근거 없는 낙관이었다. 1만 명 남짓 참가하는 몇 번의 집회로 파병을 막을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 때문에 막상 파병이 강행되자 좌절감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남한 자본주의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다. 단지 미국의 압력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마지못해 떠밀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냉철하게 말하자면, 남한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남한 국가가 그 정도 규모의 운동에 굴복할 리는 만무했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그릇된 환상도 한몫 했다. 우리 운동의 지도자들 중에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파병 압력을 거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한국 현대사에 깊이 아로새겨진 구조다. 이런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터였다. 파병 반대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점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다. 지난 50년 동안 남한 지배자들의 핵심 통치 수단이었던 국가보안법이 단숨에 폐지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4년 하반기에 민주노동당이 대중 투쟁에 흠뻑 연루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근거 없는 낙관을 갖고 있다가 투쟁이 좌절되자 당 지도부는 조급성과 초조감을 드러냈다. 뭔가 마술적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대중 투쟁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 투쟁보다는 의회 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내달을수록 당의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이것이 지난해 지속된 당의 위기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의 지방선거 도전이 성공하려면,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 비정규직 확대와 한미 FTA 등 ― 과 제국주의 동조 정책 ― 미국의 이라크 전쟁 지지와 한국군 파병 ― 에 일관되게 반대해 대중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

그렇게 봤을 때,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표방한 주장과 정책 ― 보육과 의료 등의 공공성 강화를 비롯한 좌파적 정책 ― 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밀고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선 가망성이라는 헛된 유혹에 이끌리면 타협과 순화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반대로, 노무현 정부가 아닌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춘다면 열우당에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민주노동당의 자기장 안으로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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