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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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다
이정구
지난 3월 28일 2백68개의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출범했다.
출범식 날 김정명신 범국민교육연대 공동대표는 “한국 교육은 제주특별자치도법, 인천 경제 자유구역법, 혁신 도시 등에서 이미 예외 조치로 상당 부분 시장화가 진척돼 있다. [한미FTA는] 서비스 시장 개방과 맞물려 사회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인순 보건의료 공대위 집행위원장도 한미FTA가 “영리법인화 추진, 건강보험의 붕괴 등으로 결국 의료 양극화를 더 극대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광훈 범국본 상임대표는 “FTA는 말이 협정이지 나라의 기간 산업부터, 자연·물·의료·곡물 등 민중의 권리를 상품화시키는 전략”이라며 “삶의 재앙을 막기 위해 열심히 연대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4월 4일 제주를 시작으로 14일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문화제를 개최하고 한미FTA의 본질과 폐해들을 적극 알려나갈 계획이다. 또, 오는 15일 서울에서 ‘한미FTA 저지 1차 범국민대회’를 대규모로 개최할 예정이다.
병노협의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가입을 막지 말아야
한미FTA를 저지하고 특히 의료 공공성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밝히면서 범국본에 가입을 신청한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이하 병노협)의 가입이 보류됐다.
3월 28일 범국본 대표자 회의에서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병노협 가입을 보류해 달라는 민주노총의 의견 때문에 병노협의 가입이 보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범국본은 민주노총과는 다른 조직이기 때문에 자체의 민주적 운영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 더욱이 민주노총 산하 연맹과 노동조합들이 범국본에 이미 가입해 있는 상태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가입 보류 의견 때문에 병노협의 가입을 막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것은 출범 선언문에도 나와 있는 “작은 차이를 넘어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취지와도 어긋난다.
범국본은 한미FTA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을 끌어들여 대중적 운동을 건설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2백68개 단체가 가입돼 있지만 이 숫자는 더 늘어나야 한다.
민족주의적 한미FTA 반대 운동의 함정
〈다함께〉 76호에 실린 한미FTA에 대한 이해영 교수의 입장은 현재 한미FTA 반대 운동의 유력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좌파 민족주의 지도부뿐 아니라 시민단체들과 옛 PD 경향의 일부 인사들도 한미FTA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한국 경제를 미국에 팔아먹는 “제2의 을사늑약·한일합방”이라는 민족주의적 언사를 사용하고 있다.
재벌들을 제외하고 한국민 모두가 피해자라는 주장은 결국 재벌, 일부 관료, 친미 언론 등을 제외한 중소자본가도 노동자·민중과 함께 한미FTA 반대 투쟁에서 나서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좌파 민족주의측의 기대와 달리, 자본가와 노동자처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세력들을 한데 모으면 그 힘이 서로 상쇄돼 오히려 운동을 약화시킨다. 자본가 일부와 함께 운동을 건설하려 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게 돼, 핵심 세력인 노동자들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주제준 한미FTA 범국본 상황실장은 한국사회포럼의 한 워크숍에서 수산업 분야 일부 자본가들도 한미FTA 반대 투쟁에 참여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자본가들이 기웃거릴 만큼 운동이 광범하게 건설되고 있다는 사례였지만, 민족주의적 관점이라면 이런 중소자본가들의 개입을 막을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자본가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하려 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자본가들의 눈치를 본다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 등의 투쟁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윤에 실질적 타격을 주는 노동자 투쟁이 아니라면 “국내 이해 단체의 저항 때문에 [한미FTA가] 못 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를 저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은 또한 각 부문별 피해를 거론하며 한미FTA가 “한국 경제 발전과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따라서 전 국민이 피해자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산업별 피해에 맞춰진 반대 논거는 상이한 민주노총 노동자 부문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 취약하다. 한미FTA로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보건·교육·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금속연맹 등의 노동자들은 아직 적극 나서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체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전술을 제시하지 못하고 각 부문별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끝으로, 지방선거 이후에 추진될 김대중의 방북 때문에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노무현을 ‘통일의 주체’로 인정해, 노무현 정부를 실질적 위기에 빠뜨릴 만큼 강력한 투쟁을 건설하는 데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운동이 민족주의적 지도력에 따라 전개된다면 한미FTA 반대 운동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압력이나 청원 형태의 운동에 그칠 것이고, 노무현은 한미FTA를 강행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재식민화’에 반대한다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운동이 조직돼야 한다.
그럴 때만 노동자 대중이 광범하게 참가하는 운동을 조직할 수 있고, 또 노동자들이 집단적 행동으로 자신들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때 한미FTA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강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