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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 안재훈 국장의 “고민과 과제”

[편집자 주] <노동자의 힘> 편집부는 “3ㆍ19 국제반전공동행동이 남긴 고민과 과제”(<노동자의 힘> 제99호)에 대한 ‘다함께’ 김광일의 반론을 게재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잡지 인쇄 직전에 갑자기 번복했다. 이유는 “어차피 이견이 분명하고 작년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김광일 동지의 반박 기고문을 싣는다.(지난해 논쟁은 <다함께> 54호를 참조하시오.)

“3·19 국제반전공동행동이 남긴 과제”에서 〈노동자의 힘〉 안재훈 편집국장은 그 날 “행진[이] 조용하고 한산한 일요일의 서울 거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고 했다. 아마 시위 당일 경찰 충돌이 없었던 것을 못마땅해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시위대가 애써 경찰과 충돌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경찰 폭력에 맞서 방어적 저항이 필요한 상황도 아닌데, 굳이 “평화” 행진을 문제 삼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폭력은 ‘필요악’이지 ‘선’이 아니다.

안 국장은 파병반대국민행동이 “자국민의 이해를 중심으로 … 한국군 파병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며, “진정한 국제주의 정신을 살려 ‘자이툰 파병과 철군’의 문제로 갇혀 있는 반전운동의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동안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종식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리고 자이툰 철수 요구는 운동의 국제적 성격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자이툰 부대를 철수시키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정책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것이며, 이라크 민중의 민족해방 투쟁에 가장 확실한 국제적 연대를 보내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현재 가장 커다란 국제 운동이다. 2003년 개전 직전에 ‘노동자의 힘’은 “미 제국주의가 벌이고 있는 패권적 군사행동에 대한 투쟁은 구래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의 성격을 넘어서는 전지구적 인민투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http://www.pwc.or.kr/spcl01/2_03.htm)라고 말했다. 그 동안 이라크 점령과 노무현 정부의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이 국제주의에서 일탈한 결정적 계기라도 있었는가?

안 국장은 한국 반전 운동이 “시민운동적 ‘평화캠페인’과 민족주의적 관점의 ‘반미주의’에 입각해 진행돼” 왔고 “이제 반전 운동에서 ‘전쟁 반대’만 외치면 모두 다함께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자본과 정권의 제국주의 전쟁 옹호 논리를 폭로하고 신자유주의 정권과 자본에 반대하는 투쟁과 주체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힘’의 이라크 침략 3주년 규탄 성명서에는 노무현을 언급하거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 결합돼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http://www.pwc.or.kr/jsboard/read.php?table=js_declare&no=182)

두 운동의 융합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운동 밖에서 팔짱을 끼고 운동의 약점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목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운동과 함께하며 그 안에서 참을성 있게 꾸준히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또, 안 국장은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반전 운동을 곡해하고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반미주의’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 내의 일부 단체들과 개인들이 이런 주장을 펴지만 그것이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한국에서 반전 운동만큼 참가자들의 국제적 구성 ― 아시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 등 ― 이 뚜렷한 운동이 또 있을까? 이를 두고 “반미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전 운동이 다양한 세력의 결집체이므로 ‘다함께’ 같은 국제주의적인 급진 좌파의 개입이 매우 중요했다. 운동 안에서 NGO의 선전주의적 운동 방식과 좌파 민족주의 경향의 민족주의적 방식과의 논쟁은 매 순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운동이 커졌을 때 ― 예컨대, 2004년 김선일 씨 피살 국면 등 ― 잠깐 얼굴을 내비쳤다. 이 때도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지 운동의 ‘단점’을 수집하기 위해 그런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대중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쟁 반대’만 외치면 모두 다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공동전선의 조직 원리다. 단일 쟁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력들이 단결하고, 그 안에서 자신(단체든 개인이든 간에)의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그 운동의 일부가 되길 꺼리는 듯하다.

한편, 안 국장이 지적한 것처럼 3·19 반전 행동에는 “노동자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반전 운동에 열의 있는 일부 현장 활동가들을 제외하면,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반전 운동 합류는 전제조건이 아니라 성취해야 할 과제다. 노동조합 운동이 반전 운동과 같은 정치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전 운동 그 자체를 더 큰 규모로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운동에 열의가 있는 ‘노동자의 힘’ 같은 단체들이 반전 운동에 적극 관여하고 그 분위기를 현장에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지, 이 운동에 노동자들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오히려 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힘’은 3·19 시위 당시 상근자 몇 명만 참가했을 뿐이다.

안 국장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3·19 당시 나의 연설 내용을 직접 언급하며 “모든 문제를 지방선거로 몰아가는 것은 노동자·민중에게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는 과장이다. 내 연설은 대부분 미국 제국주의와 노무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중 투쟁 건설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단지 지나가면서 나는 5·31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호소했다.(연설 내용은 http://blog.naver.com/jlennon74를 참조하시오.)

안 국장은 “지방선거는 제도 정치 안에서 하나의 중요한 계기이며, 부르주아 정치의 문제를 폭로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할 장이다” 하고 말하면서도 “지방선거 심판론”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 정당들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폭로하고, 평택과 한미FTA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 달리 자본가 계급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지방선거 도전을 옹호하는 것이 왜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는 것이라는 말인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경쟁 심리 때문에 이런 정서와 갈망을 외면한다면 급진 좌파는 성장의 기회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급진 좌파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함께하면서 운동의 성장을 위해 협력하면서 논쟁을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