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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추진 늘봄학교 파행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정 양육이 대안일까?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전국 2741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가 본격 시행 중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늘봄학교를 저출생 문제의 주요 해결책으로 내세우면서 예정보다 일찍 시행한 것인데요. 돌봄 부담에 고통받아 온 많은 학부모들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늘봄학교를 시행하고 보니, 재정도 인력도 준비도 부족한 졸속 추진이었다는 게 드러나고 있죠. 추가 업무를 떠안게 된 교사들의 불만이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교원단체들에서는 늘봄학교를 폐기하라거나 노동시간 단축으로 가정 양육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교사들의 어려운 처지가 이해가 되지만, 늘봄학교에 부정적인 교원단체들의 입장은 사회적 돌봄 확대를 원하는 노동계급 대다수의 바람과는 상충하는데요.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1 초등학생 자녀를 둔 노동계급 가정을 생각하면, 늘봄학교 같은 사회적 돌봄의 확대가 필요하지 않나?

그동안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후 발생하는 ‘돌봄 공백’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돌봄 공백’ 문제가 훨씬 커지기 때문입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22년 9월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언제 돌봄 공백을 느꼈나’라는 질문에 24퍼센트가 초등학교 1학년을 꼽았습니다. 0세, 1세에 이어 셋째로 높은 수준입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닐 때는 필요에 따라 오후 6~7시까지 맡길 수 있고, 일부 사립유치원은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맡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수업이 1시 30분이면 끝납니다. 그 뒤에는 부모가 알아서 돌봐야 하는 것이죠.

2004년부터 실시된 초등돌봄교실이 있긴 하지만 오후 5시까지만 운영되고, 기초수급자와 한부모 가정, 다자녀 가구, 맞벌이 등에 우선권이 있어서 상당수 학부모들은 이를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방과 후에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내는 ‘학원 뺑뺑이’로 돌봄 공백을 메워야 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부모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초등학생 아이를 9시까지 등교시키는 것도 힘듭니다. 많은 부모들이 오전 7시에 시작하는 늘봄학교를 반기는 이유이죠.

최근 교육부는 새 학기 늘봄학교 이용 실태에 대해 발표했는데요. 올해 2741개 학교에서 12만 8000명, 70퍼센트가 늘봄학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돌봄교실의 이용자보다 갑절로 증가한 것입니다. 지난해 돌봄교실에 못 들어가서 대기하는 학생이 1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겠죠.

늘봄학교가 전체 6100여 초등학교에서 시행되는 2학기에는 이용자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게다가 상당수 학부모들이 늘봄학교 시행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 때문에 이용을 미루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용 비중은 더욱 늘어날 듯합니다.

그만큼 초등 돌봄에 대한 요구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막상 시작된 늘봄학교가 파행을 겪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의 급작스런 시행 계획 변경에다, 정부 지원 부족에 때문에 각 학교가 인력·시설 부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 전일제 학교’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던 윤석열은 정부 출범 후에 이를 늘봄학교로 이름을 바꿔서 국정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늘봄학교 시행을 1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추가 인력과 시설·재정 확보 계획은 전혀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2월에 갑자기 각 학교에 늘봄학교 시행을 지시한 것입니다.

정부는 늘봄학교의 행정 업무를 기간제 교사를 뽑아서 맡기라고 지시했습니다. 각 교육청과 학교는 부랴부랴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못 뽑은 학교가 꽤 됩니다. 채용된 기간제 교사의 상당수가 중등 교사이고, 나이 많은 교사도 많아서 과중한 늘봄학교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기존 교사들이 일을 나눠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상당수 학교들은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강사도 충분히 구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강사 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늘봄학교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대도시의 대규모 학교들은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해 정규 수업에 사용할 교실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늘봄학교를 위한 별도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서 기존 교실을 겸용 교실로 바꾸고 있습니다. 초등교사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 교실에서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고 업무도 처리하는데, 이제 일하다 말고 교실을 비워 줘야 할 판입니다.

이처럼 정부 지원 부족으로 늘봄학교 시행이 혼란을 빚자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늘봄학교 시행이 지체되면서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부모들은 부랴부랴 조부모, 지역아동센터 등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3 초등학교 교사 대부분이 늘봄학교에 반대하는데, 교사들의 우려와 불만은 무엇인가?

교사들은 이미 과중한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늘봄학교 업무까지 전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늘봄학교 시행으로 교사 업무가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교사는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학교 안으로 돌봄을 계속 집어 넣으면서도 인력 증원이나 교원 업무 경감 같은 약속은 거듭 어겨 왔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교육부는 늘봄학교 업무를 정규 교사들이 맡지 않도록 기간제 교사 등 추가 인력 3500명을 각 학교에 배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한시적 기간제 교사를 채용한 것을 보면, 결국 그 업무가 정규 교사들에게 이관될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또, 교육부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강사 1만 1500명을 확보했다고 밝혔는데요. 교육부 발표를 보더라도 강사의 17퍼센트는 학교 교사들입니다.

교육부는 이 교사들이 늘봄학교 참여를 “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교사들이 다 자발적으로 나섰을까요? 지난해 늘봄학교 시범 실시 때에도 몇 달 동안 강사를 구하지 못해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며 품앗이를 한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방치할 수 없어서 말이죠.

그러나 정규 수업 후 곧바로 늘봄 프로그램에 투입되면 다음 날 수업 준비나 기존 담당 업무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은 뻔합니다.

이처럼 정부의 업무 떠넘기기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우려와 불만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전교조나 초등교사노조, 교사노조연맹 같은 교원단체들은 그 대안으로 늘봄학교 폐기, 돌봄 지자체 이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돌봄 확대를 바라고,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학교에 머무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바람에 반하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대다수 노동계급 가정과 소원해지는 주장을 앞세우면 교사들의 투쟁이 지지를 얻기 힘듭니다.

4 일부 교원단체는 사회적 노동시간을 단축해 가정 돌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늘봄학교 반대의 근거로 “가정양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초등학교 시기는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와의 유대감을 쌓으며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간”이라며 늘봄학교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같은 가정 양육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운동을 이끈 ‘전국교사일동’도 지난 2월에 늘봄학교 반대 집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서는 늘봄학교가 아이를 13시간 동안 학교에 두는 것이니 ‘아동학대’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아이 돌봄은 가능한 부모가 맡는 게 최선이고, 이를 못하거나 안 하는 부모는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라는 보수적 가족 가치관이 교원단체들의 목소리로 거리낌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이런 보수적인 관념은 아이 양육이라는 핵심적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노동계급의 개별 가정에 전가하는 지배계급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도와줍니다.

특히, 이렇게 개별 가정으로 떠넘겨진 부담이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가정 양육을 강조하는 것은 여성 차별적 현실을 유지하는 데 이용될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조합원이 꽤 되는 전교조에서조차 가정 양육을 강조하는 주장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교원단체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돌봄 확대와 돌봄 공공성’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단지 가정 양육만 강조하는 게 아니고, 육아휴직 확대나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니 보수적 관점과는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대치시켜서는 안 될 것을 대치시키고 있습니다. 노동계급 가정에는 늘봄학교와 노동시간 단축이 모두 필요하지, 둘 중 하나가 우선되거나 전제 조건이 돼야 하는 게 아닙니다.

5 늘봄학교에 부정적인 교원단체들의 입장은 사회적 돌봄 확대를 원하는 노동계급 대다수의 바람과는 상충하는데, 진정한 대안은?

교원단체들이 늘봄학교 폐기를 앞세우는 것은 사회적 돌봄 확대를 원하는 노동계급 대다수의 이익에 반합니다.

이 틈을 타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늘봄학교 도입을 방해하는 일부 교원단체 행위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들이야말로 대다수 학부모들의 바람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졸속적인 정책 추진에다, 올해 교육예산을 7조 원이나 삭감해 늘봄학교에 제대로 된 지원도 거의 하지 않아 학교 현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당사자이면서 말이죠.

교원단체들이 소속 조합원의 업무 조건 여부에만 관심을 갖고 사회적 돌봄 확대 바람을 외면하는 것은 협소한 조합주의입니다. 교사들은 양질의 돌봄 확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교사의 업무를 경감시킬 요구를 내세우며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돌봄 확대를 원하는 평범한 노동계급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으며 투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교원단체들의 조합주의에는 정부의 부담 떠넘기기를 막을 수는 없다는 비관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교사들에게 떠넘기는 부담에 맞서 싸우려 하기보다 그 부담을 다시 지자체·교육청 공무원이나 학교 비정규직 또는 학부모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고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계급 일부인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며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를 외면한다면, 노동자 측의 힘이 약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정부가 사회적 돌봄 확대에 제대로 책임지도록 강제하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교원 업무 경감 같은 교사들의 조건 개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지금 돌봄전담사나 방과후 강사 같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업무 전가에 반대하면서도, 늘봄학교의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해 정부가 인력 충원과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늘봄학교 자체를 반대하는 교원단체들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교사들이 이런 목소리에 호응해야 합니다. 늘봄학교 업무를 기존 교사에게 넘기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충분한 인력과 시설 확충에 재정을 투입하도록 요구하며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사, 학교 비정규직, 자녀 돌봄이 필요한 학부모 노동자를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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