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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부족으로 엉망 된 늘봄학교 : 총선용 졸속 대책이기 때문

번지르르한 말과 달리, 정부의 빈약한 지원 때문에 늘봄학교는 시작부터 엉망이 됐다 ⓒ출처 대통령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전국 2741개 초등학교에서 1학년생을 대상으로 늘봄학교가 시작됐다. 정부는 2학기부터 전체 6100여 개 초등학교의 모든 1학년생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내년에는 1~2학년생, 내후년에는 전체 초등학생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늘봄학교는 원하는 초등학생에게 오전 7시부터 아침 수업시간 전과 정규수업 후부터 오후 8시까지 다양한 방과후·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도다. 기존에 운영됐던 방과후 학교와 돌봄을 통합한 것이다.

정부는 늘봄학교 참여 학생들에게 한글·수학·체육·미술·과학 등의 프로그램을 2시간 동안 무료로 제공하고, 저녁 8시까지 남는 아이들에게는 저녁식사도 줄 예정이다.

그동안 많은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입학 후 발생하는 돌봄의 어려운 현실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 일반적인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가 제3자의 도움 없이 초등학생 아이를 9시까지 등교시키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기존 초등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됐고, 기초수급자와 한부모 가정, 다자녀 가구, 맞벌이 등에 우선권이 있어, 많은 학부모들이 방과 후 초등학생 자녀를 알아서 돌봐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저녁 늦게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곳을 제법 찾을 수 있지만, 오히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방과 후에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이 학원 저 학원에 보내며(이른바 ‘학원 뺑뺑이’) 돌봄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늘봄학교 시행으로 출퇴근 시간대의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됐다고 기대하고 있다. 또, 그들은 아이들이 돌봄 장소를 옮기는 것보다 학교 안에 머무는 게 안전하다고 본다.

엉망진창

그러나 이미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늘봄학교는 엉망인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늘봄학교를 저출생의 주요 해결책으로 내세우면서 새 학기 개학을 코앞에 둔 지난 2월, 늘봄학교 전면 시행 시기를 기존의 2025년에서 1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추가 인력과 시설·재정 확보 계획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각 학교는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는 늘봄학교 업무를 맡을 정규 인력은 늘리지 않고, 기간제 교사를 뽑아서 맡기라고 지시했다. 각 교육청과 학교는 부랴부랴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못 뽑은 학교가 꽤 된다. 일부 교육청은 자격 조건을 ‘중등 교사 자격자’와 ‘만 70세 이하’로 확대하기도 했다.

상당수 학교들은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강사도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늘봄학교 시범 운영 때도 프로그램 강사를 구하지 못해 정규 교사가 대신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는데 말이다. 특히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는 강사 구하기가 더 어렵다.

이처럼 비정규직 인력으로 늘봄학교를 운영하려고 하니 모든 초등학생에게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각 학교들은 늘봄학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특히, 대도시의 대규모 학교들은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해 정규 수업을 위한 교실 확보도 어려운데, 이제 교실을 돌봄을 위한 겸용 교실로 바꾸면서 교사들이 일하다 말고 교실을 비워 줘야 할 판이다.

이처럼 정부 지원 부족으로 늘봄학교 시행이 큰 혼란을 빚자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늘봄학교 시행이 지체되면서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부모들은 부랴부랴 조부모, 지역아동센터 등을 찾고 있다.

정부는 ‘늘봄학교 범부처 지원본부’를 구성하며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인력과 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 지원이 있어야 한다.

늘봄학교 자체에 대한 교원단체의 반대는 근시안적, 보수적

많은 교사들은 제대로 된 정부 지원도 없이 늘봄학교가 시행되는 것에 불만이 크다. 이미 과중한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 늘봄학교 업무까지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이다.

정부는 늘봄학교 시행으로 교사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늘봄학교 업무를 맡기자 결국 늘봄학교 업무가 정규 교사들에게로 이관될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이다.

그동안의 정부 행태를 보면, 교사들의 우려가 기우인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학교 안으로 온갖 돌봄과 업무들을 집어 넣으면서도 인력 증원이나 교원 업무 경감 같은 약속은 거듭 어겨 왔다.

이 때문에 전교조나 초등교사노조, 교사노조연맹 같은 교원단체들은 늘봄학교 정책을 폐기하고 학교 돌봄을 지자체로 이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에 돌봄이 남아 있으면 그 업무가 결국 교사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말이다.

지난 1월 교사노조연맹은 돌봄 지자체 이관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했고, 초등교사노조도 1월 27일 늘봄학교 저지를 목표로 집회를 열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투쟁을 이끈 ‘전국교사일동’도 2월 17일에 늘봄학교 규탄 집회를 열었다. 지난해에 4차례나 늘봄학교 규탄 집회를 연 전교조도 오랫동안 “돌봄을 학교와 분리”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늘봄학교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돌봄 확대를 원하는 노동계급 대다수의 이익에 반한다.

“가정 양육”을 강조하는 교사들의 주장은 사회적 돌봄 확대를 바라는 노동계급 다수의 이익에 반한다. 2월 17일 전국교사일동 주최 집회에 걸린 배너 ⓒ이미진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이 늘봄학교 반대의 근거로 “가정양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보수적인 시각이다.

예를 들어, 전교조는 1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초등학교 시기의 아동에게는 충분한 휴식과 가정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시기는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와의 유대감을 쌓으며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간”이라며 늘봄학교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같은 가정양육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하게 교사노조연맹은 학교 돌봄 확대가 “가정돌봄과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노동정책 등과도 면밀하게 연결될 수 있게 범부처적, 사회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전국교사일동 주최 집회에서는 심지어 늘봄학교 시행이 ‘아동학대’라는 주장도 나왔다.

아이의 돌봄은 가능한 부모가 맡는 게 최선이고, 이를 못(안) 하는 부모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보수적 가족(가정) 가치관이 교원단체들의 목소리로 거리낌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수적인 관념은 아이 양육이라는 핵심적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노동계급의 개별 가정에 전가하는 지배계급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도와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개별 가정으로 떠넘겨진 부담이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특히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정 양육 강조는 여성 차별적 현실을 유지하는 데 이용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조합원이 꽤 되는 전교조에서조차 가정 돌봄 주장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물론 교원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변호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은 ‘사회적 돌봄 확대와 돌봄 공공성’에 반대하는 게 아니고, 육아휴직 확대나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의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대치시켜서는 안 될 것을 대치시키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적 돌봄 확대 중 전자를 전제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동계급 가정에는 늘봄학교와 같은 사회적 돌봄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이 모두 필요하다. 둘 중 하나가 우선되거나 전제 조건이 돼야 하는 게 아니다.

조합주의

교원단체들의 조합주의에는 비관이 깔려 있는 듯하다. 바로 정부의 부담 떠넘기기를 막을 수는 없다는 비관 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교사를 비롯한 인력을 대폭 증원해 학교 돌봄의 질을 높이라고 요구하며 싸우지는 못하고, 정부가 떠넘기는 부담을 지자체·교육청 공무원이나 학교 비정규직 또는 학부모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도 계급 일부의 이익을 앞세우는 입장에 따라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교사들의 조건(가령 업무 경감)에도 결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늘봄학교 같은 돌봄 업무를 기존 교사가 담당하지 않게 하면서, 늘봄학교 운영을 위한 충분한 인력과 시설 확충에 재정을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전체 노동자(교사, 학교 비정규직, 자녀 돌봄이 필요한 학부모 노동자 등)를 단결시킬 수 있는 투쟁으로 정부에 저항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응이 훨씬 낫다.

늘어나는 돌봄 업무는 교사뿐 아니라 돌봄전담사나 방과후 강사들에게도 전가되고 있다. 돌봄전담사 확충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데다, 많은 교육청들은 돌봄전담사의 거듭된 요구에도 돌봄전담사들을 상시 전일제로 전환하지 않고 시간제로 채용하고 있다. 방과후 강사들의 고용은 불안하고 그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

이 때문에 학교 비정규직 노조들은 늘봄학교의 제대로 된 운영을 위해 정부가 인력 충원과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늘봄학교 자체를 반대하는 교원단체들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교육 예산을 7조 원 가까이 삭감했다. 줄어든 예산으로 돌봄 확대까지 하라니 교육 예산 삭감의 여파가 더 클 수밖에 없고 교사들의 업무 경감도 요원하다.

교사들이 학교 비정규직과 함께 연대해 늘봄학교에 충분한 인력과 시설을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싸워야만, 양질의 돌봄 확대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고, 교사의 업무 경감,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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