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돌봄의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며 ‘늘봄학교’ 전면 시행을 1년 앞당겨 내년부터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전일제학교’의 다른 말로, 기존 돌봄 시간을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확대하고 방과후학교와 연계해, 학부모의 돌봄 부담과 사교육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는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에 대응해 더 많은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초등학생 자녀 돌봄 문제로 30~4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것을 시급히 해결할 과제로 여긴다. 또 늘봄학교에서 방과후수업과 연계해 초등학생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자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가장 높다.)

물론 사회적 돌봄을 늘리는 정책은 노동계급 가정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불가피하게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노동계급 가정의 처지에서는 방과 후에 아이가 그저 가정에 방치되거나 이 학원 저 학원을 돌기보다, 학교에서 저렴하게 안정적 돌봄을 받는 것을 원할 수 있다. 또, 많은 학부모가 돌봄 장소를 옮기는 것보다 학교 안에 머무는 게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

초등 돌봄은 미래의 노동계급을 키우는 것이므로 마땅히 국가와 자본가들이 비용을 대며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늘봄학교’ 시행을 위한 추가 인력과 시설 확충에 재정을 지원할 계획이 전혀 없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니 ‘남는’ 교사와 학급을 알아서 활용하라고 한다.

정부의 지원 부족 때문에 올해 초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 200여 곳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갑자기 아침과 저녁으로 늘어난 돌봄 인력 충원을 위해 퇴직 교원, 실버 인력, 자원봉사자나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급히 때웠다. 지난 6월까지 정규직인 돌봄전담사가 추가 지원된 학교는 한 곳도 없고, 한시적 기간제 교원이 178명, 자원봉사자 136명, 행정인력 40명 등 비정규직만 투입됐다고 한다(좋은교사운동본부).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아침 돌봄을 위해 도서관에 칸막이를 치고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풀리고, 교사들이 돌아가며 아침 일찍 도서관에서 근무를 해야 하기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땜질식 대처는 채용된 노동자들의 처우를 열악하게 만들고, 양질의 돌봄도 보장하지 못하게 한다.

경북교육청은 교사가 돌봄 업무를 맡지 않게 한다는 지침마저 어기고 ‘늘봄학교 부장’이라는 새로운 보직을 만들어 교사에게 돌봄 업무를 맡겼다.(2.27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도자료)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려 온 초등교사들의 부담을 늘린 것이다.

지난 5월 교육부 장관 이주호는 늘봄학교를 담당할 새로운 교사 직군인 ‘늘봄교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을 계속 줄이는 와중에, 늘봄교사라는 직군을 만들어 채용하는 것은 정규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더 줄인다는 뜻이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오죽하면 지난 8월 초등교장 연수에서 교장들이 이주호에게 야유를 보내고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늘어나는 돌봄 업무는 이미 고용된 돌봄전담사들에게도 전가되고 있다. 아침, 저녁, 틈새, 긴급 등 다양한 돌봄이 확대되고 있지만, 돌봄전담사 확충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상당수 교육청들은 돌봄전담사를 여전히 상시 전일제로 전환하지 않고 시간제로 채용하고 있다. 또, 경기도교육청은 늘어나는 돌봄을 지자체 민간위탁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더구나 늘봄학교, 유보통합 같은 정책 추진에 한 푼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정부는 내년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7조 원 가까이 삭감했다. 교원 정원 확보,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육 시설 정비 등의 지원도 절실한데, 줄어든 예산으로 돌봄 확대까지 하라니 교육 예산 삭감의 여파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교사가 늘봄학교 도입에 불만이 크고, 늘봄학교 정책 폐기와 학교 돌봄을 지자체로 이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사회적 돌봄 확대가 절실한 폭넓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게다가 지자체가 돌봄교실을 운영하게 될 경우, 민간위탁이 늘어나 돌봄의 질이 낮아지고, 돌봄전담사들의 고용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실질적 우려가 계속돼 왔다. 이런 돌봄 노동자들의 우려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늘봄학교 같은 돌봄 업무를 기존 교사가 담당하지 않게 하면서, 늘봄학교에 충분한 인력과 시설 확충에 재정을 투입하도록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이것이 전체 노동자(교사, 돌봄전담사, 자녀 돌봄이 필요한 학부모 노동자 등)을 단결시킬 수 있는 요구이다.

초등교사와 돌봄전담사 등이 함께 연대해 공동의 적인 윤석열 정부에 맞서 싸워야만, 교사의 업무 경감,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양질의 돌봄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