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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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의 지은이 리언 시걸은 며칠 전 "북한의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이 북한과 진지한 협상에 임하는 것뿐이나 지금으로서는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실험은 예견된 순서였다. 핵보유 선언에도, 미사일 실험발사에도 미국이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며 대화에 나서지 않은 채 금융 제재를 지속하자 북한 당국은 결국 핵실험이라는 무시 못 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지난 5년 반 동안 부시 대북 정책의 누적된 결과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2002년까지 플루토늄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동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가 부시의 특사로 평양에 가 시비를 걸고 그 해 11월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제네바 합의 위반)함에 따라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후 대량살상무기가 없으면 미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리처드 펄 같은 자들은 "우리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쳐부셨다. 우리는 북한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곤 했다.
미국은 이미 2001년 12월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보고서에서 북한을 미국의 잠재적인 핵 공격 목표로 정해 놓았었다. 비핵국에 대한 이와 같은 위협은 명백한 핵비확산조약 위반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게 된 북한에 노골적 위협을 몇 년 동안 퍼부었다면 이것은 핵무기를 만들라고 제사를 지낸 셈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얘기다. 미국은 1957년 정전협정을 위반한 채 핵폭탄과 핵지뢰와 핵 미사일을 남한에 들여와, 비핵국인 북한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부시 정부를 비롯해 남한·일본·중국 당국은 지금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있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1996년에 "극단적인 환경 하에서 자위 목적, 즉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때, 한 국가의 핵무기 사용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부시의 대북 정책은 북한 정권을 교체시키지도 못한 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만 강화시켜 온 셈이다.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
북한 핵실험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 당국은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거나 핵 보유가 협상의 지렛대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이 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가 강화될 것이다.
내뱉어 놓은 험악한 말들 때문에라도 부시 정부는 뭔가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군사적 대응이라는 카드를 집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은 새 유엔 결의안을 통해 북한을 비난하겠지만 그 이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에 발목이 묶인 데다 이란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이 막강하다 해도 대북 공격까지 추진할 만큼은 아니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계산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정밀 공습하려 해도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1994년에 주한미군 총사령관이었던 게리 럭은 북한 핵시설 공격시 "미국인 8~10만 명을 포함해 1백만 명 정도가 사망하고 1천억 달러가 넘은 비용이 [드는]"전면전을 부를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중국과 남한 정부의 의견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과 남한 정부는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에는 동의하겠지만(수위에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군사 공격은 지지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중국은 미국 군대가 압록강 근처까지 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남한의 경우에는 대규모 파괴를 각오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른 시일 안에 회생이 불가능한 정도일 수 있다.
2005년에 공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한 핵시설을 정밀 폭격할 때 최악의 경우 한반도 전체가 10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다. 운이 조금 좋다면 폭격 후 두 달 안에 피폭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0~15 킬로미터에 있는 생물의 80퍼센트가 사망하고, 낙진은 서울을 포함해 최대 1천4백 킬로미터까지 확산된다.
미국이 북한을 너무 거칠게 몰아붙일 경우 남한은 중국과 좀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큰데, 이것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에 심각한 상처를 낼 수 있다. 브레진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전략가들은 냉전 해체 이후 늘 이 가능성을 염려해 왔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 위협이라는 지렛대를 사용하는 동시에, 사태를 너무 악화시켜서도 안 되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셋째, 미국의 군사대응을 쉽지 않게 만드는 조건으로 다수파가 된 미국 내 반전 여론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우선 유엔 제재를 통해 압박을 가하고 사태를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고민할 것이다. 지난 5년 반 동안 통일된 대북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부시 정부가 며칠 만에 핵실험에 대한 대응책을 정리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남한 진보진영은 대북 제재 강화 자체가 사태를 위협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 대응은 물론이고 유엔 제재에도 반대해야 한다. 남한 정부의 유엔 제재 지지 방침에 힘을 실어 줘서는 안 된다. 제재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만 증대시킬 뿐이다.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위협을 즉각 거둬들이게 하는 것이다.
위험한 게임
북한 당국은 핵실험이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의 군사 대응이 없다 해도 북한 핵실험은 평화와 안정은커녕 동북아 긴장을 한층 강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남한과 대만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는 핵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심지어 핵 전장이 될 수도 있다.
북한 관료의 처지에서는 핵실험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불가피한 수단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핵실험은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동북아시아 민중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일 뿐이다. 또한 남한과 일본 등지의 민중 운동에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핵 공포의 균형이 평화와 체제를 보장할 수는 없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인류는 핵전쟁 코앞까지 갔었다. 4년 전 카슈미르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전쟁을 일으킬 뻔했다. 핵무기로 상대 국가의 노동자·민중을 위협하는 것은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제국주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진정한 잠재력을 갉아먹는 일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