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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고 사태를 바라보며

강남의 명문으로 알려진 상문고등학교가 시끄럽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비리 재단의 복귀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문고는 상 씨 문중이 묘소 주변을 학교 부지로 만들어 개발로부터 묘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학교이다. 그러나 초대 이사장이었던 상헌과 그의 아들 교장 상춘식은 문중의 소유를 마치 개인의 재산인 양 취급하면서, 용도 변경, 부지 매각을 밥 먹듯 하고 학교 법인 소유 공금도 수차례 유용했다. 이들은 학교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뿐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적으로 상춘식과 그의 처 이우자는 지난 20년 동안 부가가치를 창출할 만한 사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1973년 당시 14평 연탄 아파트에 생활하던 사람이 1994년에는 200억 원이 훨씬 넘는 재산을 가진 것으로 보도됐다. 오직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들을 상대로 그 돈을 끌어 모아야 했으니, 교육에 눈꼽 만큼이라도 신경 쓸 시간이 있었겠는가? 또한 그들이 200억 이상을 갈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렀는지는 가히 짐작할만 하다.

드디어 1994년 3월 14일에 참다못한 교사 8명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재단의 부패를 폭로했다. 비리의 규모와 수법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였다. 상 씨 부부는 학급당 학부모 찬조금을 몇 백만 원씩 할당하는 방식으로 1993년까지 약 17억 원을 착복했다. 학생들이 실제로 받는 보충수업과는 다른 시간표를 짜서 보충수업비를 착복하기, 권력자 자녀들의 내신 성적을 조작하여 권력자에게 아부하기(재판과정에서 당시 병무청장이며 현재는 새천년민주당의 부총재인 엄삼탁 아들의 성적이 조작됐음이 밝혀졌다.), 명절 때 교사들한테서 떡값 걷어가기, 학생들에게 학습지 강매하기, 학교 법인의 수익 사업인 골프 연습장 수입금을 착복하기…

비리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는 얼마나 억압을 받았을까? 학생들은 걸핏하면 교련 선생의 군화에 짓밟히거나 토할 때까지 기합을 받아야 했고, 학부모들은 늘 돈 가져오라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제일 악랄한 수법 중 하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을 제적시키고 제적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학생은 제적 증명서가 없으면 다른 학교에 입학할 수도 없고, 검정고시를 볼 수도 없다. 교사들은 부패의 실무자 역할을 해야했다. 학생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 내야했고,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주워 담아야 했으며, 상춘식의 아들이나 김포 세관 아들에게 특별 과외를 해 줘야했다. 혹시라도 입바른 소리를 할라치면 조회에서 동료 교사들에 의해 들려 나가거나, 수업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사립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인 신분 불안에 시달려야했다. 재단에서 해직시키면 구제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교복에 리본을 단 학생이 폭도인가?

비리의 내용을 조목조목 들추자면 책 한 권도 모자랄 지경이니, 상문고의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의 분노는 당연하다. 1994년 교사들의 양심선언 이후에 상춘식과 교감 장방언, 이사 최은오는 공금횡령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리고 상문고에는 관선 이사가 파견되어 정상화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27일 임시 이사회가 교육청에 승인 요청한 정이사 7명의 명단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명단은 1994년 당시 이사장이었던 상춘식의 처, 이우자를 비롯하여 주치의, 군대 상관, 고등학교 동창, 친구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상문고의 교사와 학생들은 상춘식과 이우자가 복귀한다는 불안에 휩싸여서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11일에 걸쳐 교육청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네 차례의 학생 집회를 조직했다. 놀란 교육청은 임원 승인 취소와 학교정상화추진위원회 구성을 약속했다.

새천년 한 학기 동안 평화의 시기가 상문고에 찾아 왔다. 학교 운영에서 50여 명에 이르는 전교조 조합원이 중심이 됐다. 다른 학교의 교무회의는 지시와 전달만 있을 뿐인데, 상문고의 교무회의는 활발한 토론과 합의가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중앙의 마이크를 잡고 당당하게 의견을 발표했다. 다른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그랬다가는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겁도 없이 벌떡 벌떡 일어선다’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러나 새천년 상문고에서는 학교 운영의 새로운 모습이 창출되고 있었다. 교사와 학생이 학교 운영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의 왕이라 불리던 교장이 전교조 분회장을 찾아 다니며 조언을 구했고, 분회원들은 수시로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러나 1학기가 끝나 가는 6월 29일 상문고에는 새로운 위기가 닥쳤다. 전 이사장 이우자가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고, 관선 이사의 업무가 정지됐다. 이우자를 비롯한 상춘식의 측근들이 상문고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곧바로 교사들은 정문에서 부패 재단의 복귀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했다. 학생들은 수업과 기말 고사를 거부한 채 수 차례의 집회를 가졌다. 현재 상문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 대책위에는 상문고의 운영위원회·학부모회·전교조분회·총동창회 뿐 아니라 목천상씨대종중과 참교육학부모회·민주노총 서울 본부·민교협 등 수십 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하게도 전국에서 최초로 행정실 직원들이 직원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상문고의 문제는 점점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시 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김영태)는 판결문에서 “서울시 교육청은 불법적인 농성을 벌인 교사들을 해산하고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 국회의원 등의 질책에 몰려 정당한 이유 없이 이씨 등에 대한 이사 승인처분을 철회하며 굴복했다”며 “교사들이 불법적인 실력 행사로 재단의 이사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오히려 비리 주범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는 200억 이상의 자본가 상춘식과 재판부 간의 은밀한 거래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자본가의 비리보다 노동자의 직접적인 행동을 두려워하는 지배계급의 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은 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7월 15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 집회에서는 이런 사태에 냉담한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또한 7월 8일 학생들의 법원 앞 시위 당시 경찰들의 폭력 진압은 법 질서를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된 경찰의 테러가 군사 정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최근 김대중 정부는 불법적인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에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기득권을 지키려던 의사들에게는 양보했으면서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상문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비리를 통해 축적된 상춘식의 재산은 애지중지 보호해 주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자하는 학생들의 요구에는 몽둥이로 응답했다. 학교를 바로잡고자 오직 정의감만을 가지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을 곤봉과 방패로 찍어댔다.

누가 진정으로 폭도인가? 교복을 입고 가슴에 리본을 단 학생들인가, 곤봉과 방패를 든 경찰을 앞세운 정부인가?

아직도 상문고의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시험과 수업을 거부한 채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며 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모든 당원들이 상문고의 정상화에 관심을 가지고, 상문고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지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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