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윤석열 퇴진 집회:
눈치 보며 시간 끄는 헌재에 분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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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토) 전국 동시다발 총궐기의 날, 전국 28곳에서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집회가 열렸다.
전국 집중이 아니었는데도, 서울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범시민대행진은 수십만 명이 참가한 지난주 전국 집중 집회에 버금가는 규모로 열렸다. 광화문에서 우익 목사 전광훈이 주최한 집회보다 갑절 이상 컸다.
오늘도 서쪽으로는 사직공원 근처까지 동쪽으로는 안국역 방향 열린송현공원 입구까지, 그리고 세종대로 북단이 가득찼다. 연인원은 집회 면적 단위 계산보다 훨씬 더 많다. 집회 후 행진은 3km 넘는 구간의 전 차선을 가득 채웠다.
오늘 집회에서는,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가 기약 없이 지체되면서 대중의 인내가 점점 줄고 분노가 커지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비장한 표정의 참가자들이 많았고, 시민 발언자들은 이전과 달리 카랑카랑한 쇳소리로 헌재와 정권에 대한 분노를 토해 냈다. 공식 발언들도 달라졌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헌재 규탄 메시지가 두드러졌다.
헌재의 결정 지연이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이는 것임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쿠데타 세력들은 정권을 재정비하고 우파를 결집시키며 상황을 역전시킬 시간을 벌고 있다. 때마침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본부장 구속영장마저 기각됐다. 구속을 요구한 검찰과 경찰은 영장실질심사에 나가지도 않았다!
이로써, 윤석열만 직무 정지됐을 뿐 윤석열 정권이 버젓이 살아 있고 국가기관들을 여전히 지휘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오늘 집회 참가자들은 본지의 특별 호외와 정기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본지 판매 부스에 와서 지지한다고 격려하는 참가자들도, 대안이 뭐냐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반면 현재 제시된 투쟁 계획은 그런 대중의 분노와 조급함을 담아 내기에 아직 미흡하다. 비상행동 지도부는 다음 주 목요일인 27일 민주노총과 시민이 함께 파업을 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너무 늦고, 그동안 많은 시간과 기회를 까먹은 탓에 조직된 세력들의 태세 전환도 더디다.
그럼에도 아직 기회는 있다. 오늘도 수십만 대열이 종로 1~3가와 우정대로를 가득 채웠고, 종로에서는 행인들이 인도에 도열해서 박수를 치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렇게 드러난 열기와 분노를 분출할 수 있도록 투쟁이 조직돼야 한다.
오후 3시 안국역 촛불행동
촛불행동 집회는 “온국민의 분노가 헌재를 향하고 있다”는 사회자의 발언으로 시작했다. 안국역에서 안국동사거리를 지나 광화문 방면으로 차도와 인도를, 또 열린송현녹지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강렬한 분노를 뿜어냈다.

사전 자유 발언에서 한 청년은 “보통 직장인은 일이 안 끝나면 야근을 하는데, 헌법재판관들은 도대체 뭘 했다고 퇴근하느냐”고 호통을 쳐, 뜨거운 공감의 함성을 받았다.
촛불행동 권오혁 공동대표는 “국민이 헌재의 판결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가 ‘윤석열을 파면하라’는 국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 [헌재가 이를] 거역하는 순간, 그것은 거대한 항쟁의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권 대표는 “촛불 국민과 야5당, 시민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자고 했다. 그러나 민중전선이 투쟁 수위를 높이는 데 제약이 되고 있음도 봐야 한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이재명 2심 선고(26일) 후에 윤석열 탄핵심판을 하려는 “모략”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박 의원은 헌재가 윤석열 탄핵 판결을 “수요일 전까지 끝내”야 한다며 “안 끝내면 위험합니다” 하고 경고했다.
시민 발언들은 헌재에 대한 뚜렷한 분노를 드러냈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미루는 것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것이며 내란 세력의 연명을 돕는 행위[이므로] ... 헌재는 자멸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헌재 재판관들은 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댄 불의하고 악한 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 아닙니까? ... [이런] 법 기술자들과 모리배 같은 자들에게 운명을 맡길 수 없지 않습니까?”
사전 집회들
오후 4시경에는 수도권·강원 지역의 민주노총 산하 여러 노조의 조합원들 약 1500명이 사전 집회를 가졌다. 젊은 조합원들이 많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조합원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짤막한 발언이 끝나고 대열은 비상행동 집회가 열리는 동십자각까지 행진했다. 행인들이 많이 나오는 구간에 들어서자 선두 방송차와는 별개로 곳곳에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노동자들이 동십자각에서 집회에 합류했을 때 많은 시민들이 손과 팻말을 흔들며 반겼다.
한편, 비상행동 집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 본무대에서는 야5당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헌재가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지 않는 사이 국가적 위기가 증폭되고 극우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며 헌법재판관 8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경고했다. 그동안 헌재 비판을 삼가던 것에서 태도가 바뀐 것인데, 그동안 민주당 정치인들은 ‘만장일치 파면은 당연하다’며 대중의 불안을 달래는 역할을 해 왔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다음주 초에 당장 헌재가 파면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헌재를 압박하려면, 민주당은 헌재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부터 철회해야 하고, 진보당은 승복 약속을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오후 5시 비상행동 집회
집회를 여는 발언을 한 박석운 비상행동 공동의장은 “헌법재판소가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밀착 감시해야 하는 ... 실로 엄중한 상황”이라며 다음 주부터 투쟁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결의한 27일 목요일에는 오늘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지인들도 데리고 나와, 그 날을 ‘전국 시민 총파업의 날’로 만들자고 했다.


김민문정 비상행동 공동의장 역시 “비상한 상황”인 만큼 “전면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면서 27일 ‘전국 시민 총파업’에 지인들을 데리고 나올 것을 호소했다.
이날 집회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다는 한 여성은 “신혼을 내내 이 길 위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첫 번째 탄핵 표결을 앞두고 국회 침탈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신랑과 함께 전날 밤부터 국회 앞을 지켰다 한다.
그녀는 윤석열이 “이 나라를 독재와 완장과 지배의 세상”으로 되돌리려 했는데도 파면을 머뭇거리는 헌재를 보며 “열불이 터져서 가만히 못 있겠다”고 했다. 이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자며,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수원에 사는 40대 아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한 시민은, 계엄 당일 퇴근 후 맥주 한 캔 하려다가 계엄 선포 방송을 보고 바로 국회로 갔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우리를 빡치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기본[이고]... 내란범, 극우 폭도, 검찰, 이제 헌법재판소까지 아주 주렁주렁”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상황을 변화시켜 온 것은 우리라며, 더 강하고 더 단단해져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더 강조했다. “힘센 놈이 이깁니다.”
행진

두 시간에 걸친 집회를 마치자 골목과 인근 카페, 식당 등에서 휴식을 취하던 인파까지 가세해 행진 대열은 길게 늘어섰다. 대열이 광장을 빠져 나가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렸다.
행진은 기세 있게 벌어졌다. 헌재의 선고 지연과 그로 인한 긴장에 피로감을 느끼던 많은 참가자들이 행진의 큰 규모와 활력 넘치는 분위기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했다.
행진을 지켜보는 이들의 호응도 좋았다. 날씨가 풀려 지난 주보다 행인들이 꽤 늘었는데, 응원의 박수나 대열 구호에 맞춰 팔뚝질하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진 대열을 향해 “힘내세요”라고 크게 외치며 지나가는 시민들도 기자 눈에 띄었다.
종로대로에서는 방송차 선무 방송과 구호 소리를 들은 행인들이 죽 늘어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구호를 따라 했다. 대열의 구호 소리는 더 커졌다.
비상행동은 다음 주에도 평일 저녁 매일 집회와 행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화요일 전농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 서울 행진, 수요일 한국노총 결의대회, 목요일 민주노총 총력 투쟁과 시민 파업(개별적으로 휴가 내고 낮부터 집회) 일정을 알리며 동참을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