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이냐 복귀냐 어찌 되든 계속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헌법재판소가 좌우로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고 있다. 초고속으로 변론을 진행한 뒤 4주가 넘도록 선고는커녕 평결조차 하지 않고 있다.
“헌재의 시간”은 안갯속이다. 헌재의 선고가 지연되면서 쿠데타의 실체적 진실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윤석열 탄핵이 기각되면 윤석열과 김용현의 2·3차 계엄 모의, 전방 군 부대의 영현백 구입과 종이관 대량 구매 타진, 아파치 헬기의 NLL 위협 비행 등은 묻히게 될 것이다.

헌재 선고가 지체되는 사이에 윤석열 탄핵의 쟁점은 변했다. 헌재 변론이 진행될 때만 해도 윤석열 탄핵의 주된 쟁점은 본질과 관련된 문제였다. 계엄이냐 계몽이냐, 의원이냐 요원이냐, 국회의사당 봉쇄냐 질서 유지냐 등. 변론은 윤석열에게 불리하게 진행됐다.
2월 25일 변론이 종결된 뒤에는 절차 문제가 부각됐다. 국회 탄핵안 가결은 일사부재의 위배다, 국회 측이 ‘내란죄’를 철회했다면 국회 재의결을 거쳐야 한다, 헌재가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 형사소송법을 준용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 등등. 절차 문제가 부각되자 극우는 탄핵 기각에서 각하로 요구를 변경했다.
지금은 시간 문제까지 추가됐다. 선고 기일이 헌법재판관 두 명(문형배, 이미선)의 임기 만료 전이냐 뒤냐. 국민의힘(국힘)은 탄핵 심판을 재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헌재의 한덕수 탄핵 심판 기각 선고는 불길한 시그널을 줬다. 물론 한덕수 탄핵 문제와 윤석열 탄핵 문제가 같은 것은 아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주도했고, 한덕수는 묵종했다. 그렇다고 해서 두 문제가 다르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두 문제가 같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같은 정치적 지형 속에서 재판관들이 똑같기 때문이다.
한덕수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두 명(정형식, 조한창)이 각하 의견을 냈다. 그들은 윤석열 탄핵 심판에서도 절차 위반에 따른 각하 주장에 기울 수 있다. 김복형은 ‘한덕수에게 위헌·위법의 소지가 없다’며 기각 의견을 냈다.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 지체가 이 3인의 의견과 관계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탄핵 심판의 정치적·법리적·절차적 합의를 흔들며 시간을 끌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말한 상황들은 헌법의 틀 안에서 윤석열을 몰아내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보여 준다.
경비계엄
지배계급은 윤석열 탄핵을 놓고 내부적으로 통일돼 있지 않는 듯하다. 그들의 전통적 대변자들 중 조갑제·김진·정규재 등 원로 보수 언론인들은 윤석열 탄핵을 찬성한다. 그들은 박근혜 탄핵은 반대했었다.
또,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때임에도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은 야당 지도자 이재명을 만났다. 일종의 보험 들기다.
일부 지배자들의 이런 태도는 윤석열이 기존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행동하면서 집권했지만,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질서 있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에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정치 체제는 정치학자 바버라 월터가 ‘아노크라시’라고 부른 상태가 됐다. 아노크라시는 “독재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사이의 불안정한 중간 지대에 있는 체제”다.
“시민들은 민주적 통치의 일부 요소들(예컨대, 완전한 투표권)을 누리는 동시에, 독재에 가까운 광범한 권력을 휘두르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사실상 자유로운 지도자 밑에서 살아간다.”(바버라 월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열린책들, 2025)
월터는 이런 결론을 미국 사례(2016년 트럼프의 당선 덕분에 그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에 적용했는데,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지배계급의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고 해서 헌재가 평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단순히 자본가 계급의 집행 기구가 아니다. 국가와 자본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다. 따라서 보수적인 법·정치 엘리트층의 일부로서 헌재는 독자적 판단을 내릴 것이다.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파업하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거대하다면 헌재가 윤석열 파면 압력을 크게 받을 텐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헌재의 선고 지체에 분노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윤석열 탄핵 찬성자의 76퍼센트가 헌재를 신뢰한다. 탄핵 반대자는 21퍼센트만이 헌재를 신뢰한다(한국갤럽의 3월 11~13일 조사). 이렇듯 현 상황의 모순이 커 헌재 선고의 즉각적 여파가 어떨지는 극도로 불투명하다.
물론 본지가 지적했듯이, “헌재에서 윤석열 파면이 결정되느냐 여부는 격렬한 좌우 격돌에 잠시 몇 달의 휴지기를 두느냐의 차이일 뿐이다.”(〈노동자 연대〉 536호, ‘윤석열 반대 운동의 올해 전망’)
그럼에도 당면 전술 문제가 있으므로, 각각의 경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살펴보자.
윤석열이 파면되면 그것은 친민주주의 운동의 승리다. 운동은 윤석열 개인을 제거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쿠데타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을 위해 싸워야 한다. 검찰이 비화폰 수사를 계속 가로막고 있는 탓에, 얼마나 많은 고위 국가 관료들이 쿠데타에 연루돼 있는지 알지 못한다.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쿠데타에 가담한 자들이므로, 그들에 대한 처벌 촉구 투쟁은 민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반대로 윤석열이 복귀하면, 헌법의 틀 안에서 윤석열을 제거하는 것이 좌절됐다는 뜻이다. 대중 자신의 힘으로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투쟁을 해야 한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경비계엄을 검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각하나 기각될 경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와 광장 투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를 ‘사회 불안’으로 규정해 경비계엄을 실제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골자다.”(노컷뉴스, 3월 25일 자)
김 전 의원은 이 경우 경찰력을 주로 사용할 것이라고 봤다. 최상목 대행체제 하에서 이뤄진 경찰과 경호처의 최근 인사를 주목했는데, 그 인사가 헌재 선고 이후를 대비한 모종의 계획이 존재함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탄핵이 기각되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항의가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이 예상하듯 “민중 혁명”으로 발전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윤석열이 어떻게 대응하냐에 적잖이 달려 있을 것이다. 윤석열은 계엄을 하지 않겠다고 대중을 달래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경찰국가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윤석열이 제2의 쿠데타 기도 등 강경하게 나오면 김진의 예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과학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투쟁뿐이고, 투쟁의 계기들은 예견할 수 없다. … 우리는 우리가 행동하는 만큼만 예견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만큼, 그래서 ‘예견한’ 결과가 실현되도록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만큼만 ‘예견’할 수 있다.”
대중 투쟁을 일으키도록 애쓰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