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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폭격장은 완전 폐쇄돼야 한다

지난 5월 8일, 미 공군 A10 전폭기 1대가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쿠니 사격장 안 해상 무인도 부근에 500파운드 짜리 폭탄 6발을 투하했다. 폭탄이 투하된 지점은 인근 매향1리 농가에서 2㎞쯤 떨어진 곳으로 갑작스런 폭발음에 놀란 노인 6명이 대피하다 넘어지는 등의 사고를 당했다. 또한 폭발 충격으로 매향1리 등 5개 마을의 농가 700여 채의 유리창이 개지고 담벽에 금이 갔다. 그러나 매향리 주민들에겐 이런 일은 일상과도 같다.

1952년 SOFA가 체결되면서 미 공군 사격 연습장 설치가 결정됐고 195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군 사격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68년엔 농섬 반경 3,000피트 구역과 해안지역 38만평이 징발됐고 1979년에는 8,000피트까지 확장돼 500여만 평 규모의 사격장이 조성됐다. 1980년에는 해안지역 토지 50여 만평이 추가로 징발된 뒤 육지 사격장이 생겼다. 이후 미군은 지난 1950년 동안 하루 평균 전폭기 40여 대가 14시간 동안 400여 번 폭격을 퍼붓고 기총사격 연습을 해댔다.

이로 인한 주민 피해는 신고된 것만 3,459건에 이른다. 1950년대부터 크고 작은 불발탄 사고가 계속된 것을 비롯해서, 1967년엔 당시 33세였던 이영자씨가 만삭의 몸으로 사격장 인근 해안에서 굴을 채취하다 폭탄에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사망했다. 68년에는 어린이 5명이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포탄이 폭발,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다. 마을이 사격장에 편입되면서 재산 피해도 컸다. 주민들은 황금어장과 함께 개펄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1968년 농경지 징발 당시엔 당시 평당 500∼600원 하는 농지를 180∼200원이란 헐값에 강제로 징발 당한 후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그나마도 폭격연습이 없는 토·일요일에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참았던 불만은 19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투쟁을 통한 민주화의 열기 속에 폭발했다. 1988년 7월 매향리 일대 612가구가 연대서명과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정부와 미군의 대응이 미온적이자 12월에는 주민 700여 명이 사격장 점거농성을 벌였다. 이 사건은 국내 주둔 미군기지를 점거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소음

SBS TV 프로그램 〈뉴스추적〉 제작팀의 조사에 따르면, 매향리의 소음도는 93db로 주거 불능 지역(90db)보다 높다. 소음도 70㏈ 이상은 청력손실을 유발하는 수준이다. 매향리와 그 인근의 주민들은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을 고막이 찢어질 듯한 비행기 소음에 시달린다. 주민의 35%가 소음성 난청에 걸려있고 70%에 가까운 주민들이 신경쇠약과 불면증을 겪는다. 또한 임산부들의 비정상적 유산(10명중 2명)·고혈압·식욕부진·기억력 감퇴·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최근 대전대 김선태 교수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격장 주변 5개 마을의 소음도는 100㏈에서 133㏈까지 측정됐다. 이런 소음으로 인해 가구마다 1년 평균 5마리의 가축까지 유산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은 지난 6월 1일 “폭탄투하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없다”며 “건물 균열은 폭탄투하와 무관한 것”이고 “주민 피해와 가축 피해가 폭발음과 관련된 것인지는 판단하지 못했다”고 뻔뻔스런 대응으로 일관했다.

중금속·방사능 오염

환경운동연합은 농섬 쿠니 사격장 주변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을 분석한 결과, 납과 크롬·구리 등 중금속이 다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농섬 훈련장의 흙에는 공업 지대 평균치보다 34배나 높은 양이 검납이 검출됐다. 크롬은 공업 지대 평균치의 3만 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였다. 게다가 매향리 사격장에서 우라늄 탄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크게 제기되었다. 열화 우라늄 탄은 미군이 코소보 전쟁 때 사용해서 방사능 오염 문제 등에 관한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열화 우라늄 탄은 폭발한 이후에 미세한 가루로 변해 3백㎞에 걸쳐 방사능 오염과 기타 중금속 오염을 일으키고 이에 따른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을 야기한다.

열화 우라늄탄 사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미국인 반전평화운동가 윌슨 씨는 매향리 해안에서 발견된 포탄 파편에 씌여진 ‘BDU’란 글자가 열화우라늄탄(Bomb Depleted Uranium)의 약자라고 증언했다. 미군 조종사 출신 반전운동가의 설명은 흘려듣기엔 너무 구체적이다. 그에 따르면 매향리 앞바다에서 자주 훈련을 하는 A10기는 우라늄 탄을 싣고 다니며 탱크를 파괴하는 데 활용되는 전투기다.더군다나 방사능 피폭 증세로 의심되는 주민들의 피해 사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몇 년 전 탄피를 주워 고물상에 판 부모들에게서 기형아가 태어났고 근간에 암환자가 여러 명 발생했으며 무정란을 낳는 타조도 늘었다.

100% 미군책임도 한·미 공동 배상

주한미군이 훈련하다가 일으킨 피해에 대한 보상은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주민들이 해당 지역 정부 배상 심의위원회에 신청하면 미군 또는 한·미 합동의 피해조사를 거쳐 배상 여부가 결정된다. SOFA 제23조는 피해 책임이 전적으로 미군 측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배상 비용의 75%만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미군 측이 이의를 제기하면 승소를 해야만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지난 1998년 매향리 주민 15명이 ‘사격 연습의 소음과 진동 등으로 가축 불임, 주민들의 수면 장애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1억 5천 만원의 배상 신청을 했으나 배상 심의위원회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매향리 사격장 주민 피해와 관련해선 지난 1967년 만삭의 몸으로 포탄에 맞아 사망한 이영자씨와 그 때 경상을 입은 또 다른 한 명이 유일한 보상 사례다.

대한민국 ― 국민 없는 정부

그런데도 남한 정부는 SOFA 개정에 대해 어떤 진지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매향리 등으로 반미감정이 국민들 사이에서 불거질대로 불거졌는데도 김대중 정부의 관료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미군과 미국 때문에 나라와 민주주의를 지킨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며, 한·미간 전통적 선린·우호 관계가 훼손되어선 안 된다.” 5월 8일의 오폭 사건을 조사한 한·미군 합동 조사단의 국방부 군수국장 이정빈은 지난 6월 1일 “매향리 주민들이 신고한 시설, 가축피해 등 3,459건에 대해 합동 조사를 벌인 결과 폭탄 투하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없다”고 했다. 이 조사 결과 발표 뒤 19일간 중지됐던 사격훈련은 2일부터 재개됐다.

특히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 전후에 주한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정상회담 직후에는 군 부대를 직접 방문하며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그는 지금 반미 불가를 외치고 있다.

매향리, 푸에르토리코, 오키나와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라 볼 수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섬에도 미해군 전투기의 사격 훈련장이 있다. 1966년, 미 해군은 이 섬에서 핵무기를 분실한 적도 있다. 주민들의 사격장 폐쇄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 섬의 암 발생율은 다른 지역보다 27%나 높아 우라늄탄의 사용으로 인한 방사능 노출 문제가 심각하다.

비에케스 섬에 있는 미군 사격장에서 작년 4월 미해군 전투기의 폭격 훈련으로 인해 민간인 경비원 한 명이 숨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동자들과 카톨릭 주교와 신부, 수녀, 독립운동가 등이 폭격장을 점거한 채 폭격장 폐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처음 이들은 훈련장 피해만을 문제삼았으나 400만 주민들의 호응이 커지자 미군 철수 등의 주장을 펴며 한 달간 폭격 훈련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5월 4일 미군은 사격장 점거농성을 강제로 진압했다. 이 사격장은 형식적으로 미국 영토이기 때문에 “미해군기지 무단침입”죄로 100여 명이 체포됐다. 이들을 석방하라는 교도소 밖의 시위는 지금도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계속되고 있다. 반미 시위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자 미국은 2002년 미군 철수에 대한 국민 투표를 치르겠다며 몸을 낮추고 있다.

일본의 작은 섬 오키나와도 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인 오키나와의 겨웅 일본 정부로 반환된 미군 통신 기지 땅이 심각하게 중금속으로 오염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러나 미군은 미일 지위 협정에 따라 이에 대한 어떤 보상의 의무도 지고 있지 않다. 7월 21일 오키나와에서 개막되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 문제가 외교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고 사건을 조기 수습하기 위해 미군은 재빠르게 사과했지만, 미군 주둔에 반대해왔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관계없이 정상회담 기간 중 항위시위를 벌였다.

특히 회담을 앞둔 7월 20일 3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엔 한국인들도 참여해 매향리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한 일본인은 KBS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오키나와도 심각하지만, 매향리처럼 사람이 사는 곳에서 1.5㎞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격을 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미군은 “실제 살아있는 표적이 있어야 훈련 효과가 크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폭격 훈련장을 3년 전에 폐쇄시킨 승리의 경험이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매향리 주민들을 연대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의 매향리와 일본의 오키나와,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섬 3자간에는 최근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항의가 조직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대만까지 확대되고 있다.

전국에 있는 미군 기지 및 훈련장, 탄약고는 모두 93개에 달한다. 총면적은 7445만평. 이중 훈련장은 5600만평(72곳)으로 76%를 차지한다. 주민들의 민원이 집중되는 지역은 서울 도심의 용산 미8군 기지이다. 미군 기지를 운영하는 데 쓰이는 시설과 토지제공 비용 또한 남한 노동자들의 세금일터인데, 주한 미군은 면세 혜택까지 받는다. 미군은 대규모 기지 집중 육성을 위해 1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노동자들의 세금에서 뜯어내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군 자신이 SOFA를 무시하면서 시공 계약권 행사까지 주장하고 있는 마당이다. 얼마 전엔 미군이 포름 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서울 시민들의 상수원인 한강에 방류했다.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자, 미8군 사령부의 한 간부가 그야말로 형식적인 사과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다.

주한미군 철수하라

매향리 사격장은 폐쇄되어야 한다. 주한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북한을 “깡패국가”로 삼아 남한과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미제국주의는 노동자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으며 전쟁위협을 일삼고 있다.

7월 중순, 미국의 시민단체와 미국노동총동맹(AFL-CIO) 등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매향리를 방문해서 자신들도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매향리 사격장의 폐쇄를 지지한다고 주장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미 남한의 노동자 운동도 매향리 문제에 적극적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열린 용산 기지 앞에서 반미 시위가 열렸는데 시위대의 절반은 노동자들이었다. 단병호 위원장도 민주노총이 매향리 등 반미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실로 의미심장한 노동자 운동의 발전이다. 제국주의와 주한 미군 주둔을 옹호하는 김대중에 맞서 싸우는 독립적 노동자 민중의 운동은 매향리 사격장을 패쇄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인 힘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