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라는 이름의 계급협조:
노동자와 중소기업은 대기업(독점)에 맞서 같은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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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협력업체와 이익을 나누도록 제도화하자는 발상은 오래전부터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돼 왔다. 재벌이 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탈취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 몫의 일부를 협력사에 되돌리자는 제안은 직관적으로 정의로워 보인다. 이 구상은 2011년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제안 이후 문재인 여당의 협력이익공유제 등으로 변주되며 거듭 정책 의제가 됐다.
그러나 이 제안에는 좀처럼 검증되지 않는 전제가 깔려 있다. 노동자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 같은 편이라는 가정이다. 이익공유제는 이 가정을 자금 흐름으로 구현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 가정은 마르크스주의적 좌파가 이미 반세기 전에 해체했던 낡은 논리의 재판이다.
‘반독점동맹(민중전선)’
이 가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공식 경제 교리였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하 국독자론)이 그 원형이다. 1 이 이론은 사회의 근본 모순을 자본과 노동 사이가 아니라 소수 독점체와 전체 민중(노동자, 중간계층, 중소기업) 사이로 재배치했다.
여기서 ‘반독점동맹’ (민중전선) 전략이 도출됐으며, 그 동맹의 접착제는 독점의 폐해에 맞서 계급을 초월한 국민적(“민중”) 투쟁이었다.
가장 노골적인 정식화는 프랑스 공산당 이론가 클로드 캥이 1975년 《공산주의 연구》에 기고한 글의 제목인 ‘임금노동자와 중소기업: 다르지만 수렴하는 이해관계’였다. 2 이는 오늘날의 이익공유제 담론과 궤를 같이한다.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거대 적 앞에서 수렴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 자크 발리에르가 책임 편집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정치경제학 비판》이었다. 3 이 저널이 겨냥한 핵심 표적은 노동자와 중소자본의 이해가 수렴한다는 (포퓰리즘적) 명제였다.
모순 바꿔치기 마술
이 비판의 핵심은 단순하다. 근본적인 적대 관계는 대자본과 소자본 사이가 아니라,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에 존재한다.
중소기업도 자본이다. 잉여가치를 착취해 이윤을 창출한다. 오히려 단가 압박과 낮은 노조 조직률 탓에 협력사 노동자가 더 강하게 착취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기업 대 중소기업·노동자’라는 전선 설정은 이러한 착취 관계를 자본 내부의 규모 갈등으로 치환한다. 적대의 진정한 축을 은폐한다.
이익공유제는 이러한 구도 전환을 제도로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자금의 이동 방향을 보면 명확하다. 분배는 대자본에서 노동으로가 아니라 대자본에서 소자본으로 향한다. 이전된 몫을 일차적으로 수취하는 주체는 협력사 노동자가 아닌 협력사 기업주다. ‘이해관계의 수렴’이라는 전제는 분배의 계급적 성격을 흐린다. 대기업이 내놓은 이윤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노동자와 기업주를 한 배에 태운다
정치적 효과는 더욱 결정적이다. 이익공유 담론 속에서 협력사 노동자의 적은 자신을 직접 착취하는 사용자가 아니라 ‘갑질하는 대기업’이라는 축소된 존재가 된다. 노동자는 기업주와 한편으로 호명된다. “우리 회사가 단가를 제대로 받아야 우리도 산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이 순간 분배 갈등은 일터의 노사 대결에서 기업 간 거래나 정책 위원회의 조정 문제로 옮겨 간다. 노동조건을 둘러싼 직접적 투쟁의 동력이 ‘동반성장’이라는 협상 테이블에 흡수돼 해체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협조다.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가 반독점동맹 전략을 비판하며 지적한 핵심도 이 지점이다.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자본가 계급 일부와의 동맹에 종속시키면, 결국 노동자의 독립적 행동은 억제되고 전투성은 무뎌진다.
체제에 면죄부를 준다
이익공유 구상은 또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재벌과 국가가 스스로를 ‘개혁 가능한 선의의 파트너’ 행세를 하게 해 준다. 착취는 ‘불공정 거래’로, 계급 적대는 ‘동반성장’으로 치환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일부 대기업의 도덕적 일탈로 축소되고, 그 일탈을 바로잡으면 체제는 정당화된다는 이데올로기가 근저에 놓인다. ‘상생’은 결국 계급 평화의 코드네임이다.
진짜 경계선이 어디인지 묻는다
대안의 출발점은 전선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노동자를 결속시킬 요구는 자본 간 이익 재분배가 아니라 원·하청을 가로질러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직접 고용, 동일 노동 동일 임금, 하청·협력사 노동조건의 직접 개선이 그 핵심이다. 분배는 자본 사이가 아니라 자본에서 노동으로 향해야 한다. 이를 강제하는 힘은 위원회 합의가 아니라 계급적으로 독립된 노동자 조직과 투쟁에서 나온다.
공산당들의 국독자론과 반독점동맹 경험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그 계급 협조주의 이론과 전략은 노동자를 강화하기는커녕 무장해제시킨다. 이 도식은 “공산당이 노동계급을 협소하게 가두고, 통합적 요구를 정식화하지 못하게 했으며, 계급투쟁을 선거 산수로 환원시켰다.” 4
노동자와 중소자본의 이해가 수렴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이익공유 담론도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노동자를 자본의 일부와 화해시키는 대가로, 맞서야 할 진짜 상대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다.
후주
- Bruno Théret · Michel Wieviorka, Critique du capitalisme monopoliste d’État, Maspero, 1978. ↩
- Claude Quin, ‘Salariés et PME. Des intérêts différents mais convergents’, Cahiers du communisme, n°4, 1975. 프랑스 공산당 측의 ‘수렴하는 이해관계’ 정식화. ↩
- Critiques de l’économie politique(dir. Jacques Valier), Maspero, 1970–1985. 또한 Jacques Valier, Le Parti communiste français et le capitalisme monopoliste d’État, Maspero(Petite collection Maspero n°166), 1976. ↩
- Michel Husson, ‘Le PCF et l’économie’ / ‘La voie étroite de l’économie marxiste en France’(반독점동맹·국독자론의 계급분석에 대한 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