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오디세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와 놀란의 오디세이, 오디세우스의 고백, 다른 오디세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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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오디세이》가 기록된 시기는 기원전 700년경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회적 격변과 계급적 긴장이 고조되던 때다. 이를 ‘기원전 8세기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기원전 11~9세기는 그리스의 ‘암흑기’라 불린다).
당시 그리스와 그 식민지에는 철기가 확산됐다. 농업은 잉여가 증가했고 수공업도 철 제련 지식의 혜택을 누렸다. 상업도 발달했다. 인구가 폭증했고 정착지가 커졌다. 식민지가 늘었고 해상 교역이 확대됐다. 암흑기에 사라진 문자가 다시 생긴 것(알파벳)도 해안 문명 페니키아와의 교역 덕분이었다.
《오디세이》가 왜 그렇게 ‘바다’, ‘손님’, ‘환대’, ‘선물’을 중요하게 다뤘는지는 이런 배경에 있다.
물론, 《오디세이》의 작중 시대는 기원전 8세기보다 400~500년 전이다. 청동기 말기였고 곧 미케네 문명이 붕괴했다. 학자들은 전쟁과 교역망 붕괴, 내전이나 봉기가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한다.
미케네의 궁전들은 파괴됐고 지배계급은 소멸됐고 문자도 사라졌다. 미케네 문명은 완전히 잊혀졌다. 살아남은 건 사람과 노래(시)와 유적이었다.
이후 암흑기 동안 인구는 급감했고 교역은 마비됐고 촌락들은 서로 단절됐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허름한 집과 마을에 비해, 비록 폐허가 됐지만 미케네의 거대한 석조 유적들을 보면서 거인(키클롭스)이나 신들이 만든 것이라고 여겼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는 이처럼 구전되고 노래되면서 거듭해서 재창작된 옛 서사시들과, 경외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옛 유적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시대와 연결해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다.
이전에도 노예가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쟁 포로로 충원되는 노예제 노동이 잉여의 주요 원천이 됐다.
정치적 변화로는 폴리스(도시국가)가 등장했다. 하지만 과거의 흔적도 살아 있었다.
족장 혈통에서 왕들이 나왔고 씨족 혈연이 사회적 의무와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유해진 지주들은 갈수록 이런 사회 질서에 도전했다.
《오디세이》에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의 왕권 역시 절대적이거나 관료제에 기반한 지위가 아니다. 개인적 카리스마, 분배 능력, 오이코스(Oikos, 가구·가족·재산)의 규모에 의존하는 족장의 권위에 가깝다.
기원전 8세기부터 폴리스가 형성되는 과정은 새로운 부를 축적한 유력 가문들이 전통적인 씨족 질서와 족장 중심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디세이》에서 구혼자들의 폭력성과 탈취 행위는 이 새로운 경제적 힘이 기존 질서를 압박하는 구조적 긴장의 문학적 형상화로 보인다.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틈을 타 이타카의 경제적 실권(가축, 토지, 노예)과 권력을 장악하려는 야심 찬 신흥 유력자들(또는 그 2세들)이다.
이처럼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초기 폴리스 형성과 권력 재편에 따른 구조적 균열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권력층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있었고 왕정을 대신해서 주로 과두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폴리스들은 경쟁과 전쟁만 하지 않았다. 무역을 통해 하나로 연결됐고 점차 문자와 방언의 차이도 줄었다. 공동의 축제(올림픽)가 시작된 것도 기원전 8세기다.
이때 중국 지역에서도 춘추시대가 열렸다. 당시 두 문명 사이에 직접 교류는 없었다. 교류가 있었다면 중동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대 그리스와 춘추시대는 비슷한 역할을 했다.
우선 두 지역 모두 옛 세계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정치적 정당성이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래된 확신들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정치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대응했다.
정치제도와 사회구조는 매우 달랐지만 두 시기의 역사적 기능이 유사했던 것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비슷한 구조적 요인도 있었다. 이를테면 철기 문화의 확산, 문자와 기록 문화의 확대였다.
놀란의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호메로스의 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헌신할 의도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호메로스의 문학에서 가장 큰 힘과 활동 반경을 보이는 존재인 신들을 화면에서 거의 다 밀어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오디세이를 만들고자 했다.
《오디세이 메이킹북》을 보면 영화화를 결정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개봉하기까지 겨우 2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서사시를 7개국에서, CG보다 실사 제작을 추구하며 세계 최초로 모든 장면을 70밀리미터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해서 영화로 만드는 데 들인 시간 치곤 짧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바로 지금 개봉할 필요를 느껴서일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영화가 “다중 위기가 만들어 낸 온갖 불안이 투사되는 일종의 피뢰침”이 됐다고 한다.
이 영화는 특히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과 통할 것이다. 놀란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위기를 은유한 듯도 하다.
〈가디언〉에 기고한 한 영국 노동당 의원은 “해체돼 가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그는 영화에서 “그 질서를 포기한다면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얻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다자주의의 가치”와 “국제 외교에 대한 헌신”을 제안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가 꼭 그의 생각처럼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바라는 ‘규칙 기반 질서’는 좋은 게 아니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자신의 지도 아래 결집시켜 세계를 지배하려고 구축한 것이다.
‘규칙 기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탄할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쇠락이라는 근본 원인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질서와 규칙의 위선을 폭로해 온 아래로부터 저항들의 기여도 있다.
어떤 한 형태의 제국주의 질서를 응원하거나 좋아해서는 전쟁과 참상을 계속 부르는 제국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런 입장으로는 전쟁과 참상에 일관되게 반대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제우스의 법(크세니아: 환대)”과 “문명의 붕괴”는 포식성 제국주의뿐 아니라 트럼프주의의 또 다른 측면, 즉 ICE(이민세관단속국)와 이민자 추방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다들 잘 알아차리듯 놀란의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는 전쟁 트라우마와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있는 참전 군인과 같다. 전투와 귀환 여정 내내 그는 마치 파병된 미군 소대장쯤으로 보인다.
오디세우스의 고백
이 영화를 패러디한 짧고 엉성한 AI 영상을 봤는데 맷 데이먼을 베트남전의 미군으로 바꾼 설정이 잘 어울렸다. 외눈박이 키클롭스는 전쟁광 장교로 나와서 사병들에게 응징(프래깅)을 당한다. 실제로 미군들이 베트남 농민들에게 땅 다음으로 소중한 소를 워낙 많이 죽였기 때문에, 병사들이 소를 약탈하고 죽여서 고기 맛을 보려 한다는 설정 역시 오디세이와 잘 맞아떨어졌다.
통념과 달리 전장의 군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의 주된 요인은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 만이 아니다. 적대적인 상황에 대한 거부감, 노골적인 증오에 직면하기, 피로와 증오와 공포를 모두 느끼면서도 살해하리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등도 몹시 괴롭다.
특히 죄책감이 장기적인 고통인 경우가 많다. 적군과 민간인에 대한 죄책감보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인간으로서 수치심이 더 강한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놀란의 오디세우스처럼 말이다. 트라우마가 상처라면 PTSD는 그 상처가 장애로 발전한 상태다. 둘 다 전쟁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나 정치적 각성을 뜻하거나 그걸 수반하는 건 전혀 아니다.
실제 전장에서 미군들은 적의 포화로 전사할 가능성보다 정신적 사상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쟁을 지속하는 물리력과 병참 능력이 전쟁을 버티는 병사들의 심리적 수용 능력을 능가해 버린 것이다.
지금 이란 전쟁에 참전 중인 핵 항공모함 승선 미군들은 거의 9개월 내내 배에 갇혀 있다. 정신적 사상자가 속출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는 주로 미군이 중동의 미군기지들을 사용하는 데서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영화를 따라가는 듯하다.
다른 오디세이들
부커상을 2번 수상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페넬로피아드》(2005)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그녀의 시녀(여성 노예) 12명의 관점에서 본 오디세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선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시녀 12명을 구혼자들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가차 없이 교수형시킨다. 《페넬로피아드》에선 이 시녀들의 사연이 설득력 있게 나온다. 노예인 그들은 구혼자들에게 강간당했거나 페넬로페의 지시로 염탐하기 위해 구혼자들에게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변호인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강간당한 노예의 죄를 묻는다!
1969~1970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팀 오브라이언의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1978)는 군인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비선형적 이야기다.
평화협상이 열리는 파리에 가려고 탈영한 미군 병사 카차토는 베트남→라오스→버마→인도→이란→튀르키예→그리스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나는데, 그를 추적하던 다른 부대원들도 이 터무니없는 ‘오디세이’에 합류한다. 작가의 추산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복무 기간 미군 병사가 걸어야 했던 총거리는 베트남에서 파리까지 직선으로 걷는 거리와 비슷했다고 한다.
에밀리 윌슨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여성으로서 처음 영어 완역 출판한 번역가다. 윌슨이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에 관해 쓴 평론은 해당 사이트가 다운될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에밀리 윌슨의 비평에는 과장되고 부당한 측면이 있다. 일단, 그가 원하는 영화화 수준은 너무 희귀하고 반대로 원작은 너무 추앙한다. 이 영화는 순제작비만 3,500억 원을 쓴 할리우드 영화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이런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조정하고 보는 편이다. 캐스팅, 캐릭터, 결말 등 할리우드 대작들의 일정한 관례들을 상수로 여기면서 새로운 것도 있길 기대하는 식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영화는 기대 이상이다. 시대의 불안과 피핍, 전쟁에 대한 반대 정서에까지 공감을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