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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의 국유화와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논제

[편집자 해설] 오늘날 노동운동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끊임없이 긴축과 실질임금 삭감에 맞서 싸워야 한다. 개별 기업, 심지어 일부 산업부문에서는 거대 기업조차 파산 직전에 몰리고 있다. 대규모 인력 감축과 국가의 막대한 보조금 투입 없이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런 기업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요구는 기존 체제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기존의 국유화 요구는 종종 불충분해 보인다. 우리는 모두 기존 국가에 의한 국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거에 경험했다. 또, 국가가 위기 대응을 위해 노동자들의 별다른 압력 없이도 국유화를 강행하는 사례도 많았다.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가(예금보험공사, 산업은행 등)가 최대 주주가 된 상태는 경제학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일시적 국유화’ 혹은 ‘사실상의 국유화’에 해당한다. 다만, 정부가 국유화라는 낱말을 그토록 피했던 데에는 몇 가지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 ‘국유화’라는 단어가 주는 시장의 공포: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직후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외국 자본의 유치와 신뢰가 절실했다. 당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국유화’라는 단어는 국가가 시장을 강압적으로 통제한다는 인상을 줘 외국인 투자자들을 도망가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둘째, 영구 소유 vs. 매각(민영화)의 목적 차이: 전통적인 의미의 국유화(예: 철도, 전기, 수도)는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반면, 공적자금 투입은 ‘망가진 기업을 고쳐서(구조조정) 비싼 값에 민간에 되팔아 납세자의 돈을 회수하겠다’는 출구전략이 전제돼 있다. 잠시 맡아두는 ‘위탁 관리’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국유화라고 부르기를 꺼렸다.

실제로 과거의 우리은행(상업·한일은행 합병 후 공적자금 투입)이나 대우조선해양, HMM(구 현대상선) 같은 기업들이 이 ‘일시적 국유화’를 거쳐 다시 민간의 품으로 돌아갔거나 돌아가는 과정을 겪었다.

1997년 기아 사태도 같은 경로를 밟았다. 부도유예협약 적용(7월) 이후 기아 노사는 ‘국민기업’ 정서를 바탕으로 범국민적 ‘기아 살리기’ 운동을 벌이며 화의를 통한 자력 회생을 요구하고, 제3자(재벌) 인수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10월 법정관리와 산업은행 출자전환(공기업화) 1 을 강행했고, 1998년 10월 국제입찰을 거쳐 기아는 결국 현대자동차에 넘어갔다. 그 사이 기아·아시아자동차에서는 약 8,300명이 회사를 떠났으며, 인수 후에도 중복 인력 정리가 이어졌다. 공기업화는 위기 속에서 노동자를 지키는 방파제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재매각을 위한 구조조정의 틀이 됐다.

이러한 수사학적 줄타기는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조차 파산 위기에 처한 GM(제너럴모터스)과 AIG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붓고 정부가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미국 주류 언론에서도 “이것은 명백한 국유화”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심지어 GM을 ‘Government Motors(정부 모터스)’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오바마 정부도 “이것은 국유화가 아니라 신속한 민영화를 위한 일시적 개입”이라며 단어 사용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꽥꽥거리면 그것은 오리다”라는 속담처럼, 공적자금 투입의 실질은 국가가 소유권을 통제하는 국유화가 맞았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의 안심을 유도하고 향후 민영화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경영 정상화’라는 포장지를 씌워야만 했던 셈이다. 경제 현상의 본질과 정치적 수사의 차이를 짚어 내야 한다.

국유화가 그 자체로 ‘반자본주의적’ 조치라는 낡은 믿음을 고수하는 자들은 결국 체제 전체를 위해 생산을 합리화하려는 국가 정책을 옹호하게 된다. 이때 국유화 요구에 ‘노동자 통제’라는 구호를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정 노동자 집단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조건 악화(인력 감축, 노동강도 강화 등)를 감수하며 단일 기업을 통제하는 방식은 결국 다른 노동자 집단과의 첨예한 경쟁으로 내몰릴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고립된 ‘단일 기업의 국유화’나 ‘노동자 자주관리’는 구조적 한계와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거시적인 시장 규칙(이윤 추구와 경쟁)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소유권만 국가로 넘어가거나 특정 기업의 통제권만 노동자에게 쥐어질 경우,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가 대신 스스로를 쥐어짜는 ‘자기 착취’의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한 뼈아픈 사례들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노동자 통제 국유화’가 전면적으로 실현된 적은 없으나, 부도난 기업을 노동자들이 인수해 운영한 자주관리 기업(노동자 협동조합) 사례에서 같은 딜레마의 일단이 나타난다. 가령 청주의 우진교통을 보자. 2004년 경영진의 부실 경영과 비리로 부도가 나고 임금이 체불되자, 노동자들은 170일 안팎의 파업 끝에 회사를 인수해 2005년 1월 자주관리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노동자 기업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그 출발 조건은 혹독했다. 노조는 체불 임금·퇴직금 65억 원을 포함한 회사 부채 전액(합의 당시 137억 원, 실제로는 150억~200억 원 규모였다고 한다)을 떠안는 조건으로 주식 50퍼센트와 경영권을 넘겨받았고, 조합원들은 1인당 500만 원씩 출자해 운영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경영진은 출범 이후 임금 체불과 삭감은 하지 않았다고 밝히지만, 위기가 올 때마다 구성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버텨 왔다고 스스로 말한다. 경영진을 몰아내고 통제권을 얻었지만, 전 사주가 남긴 부채와 다른 민영 버스 업체들과의 경쟁이라는 조건은 그대로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리스의 비오메(Vio.Me.) 사례도 마찬가지다. 2010년대 초·중반 경제위기를 겪은 그리스에서도 상징적인 노동자 통제 사례가 나타났다. 2011년 사주가 임금을 체불하고 공장을 버리자, 테살로니키의 비오메 건축자재 공장 노동자들은 2013년 2월부터 공장을 점거하고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생산을 재개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단일 공장의 노동자가 겪게 될 고립을 뼈저리게 겪었다. 기존 거래처들은 노동자가 통제하는 공장과의 거래를 끊었고, 합법적 영업 지위를 얻지 못한 채 공장 부지 경매와 퇴거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당국은 여러 차례 전기를 끊으려 했고, 2020년 코로나19 봉쇄 기간에는 진압 경찰을 앞세워 실제로 전력을 차단하기도 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착취하는 경쟁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건축자재 대신 ‘친환경 세제·비누’로 주력 상품을 바꾸고, 시장 유통망 대신 지역사회의 ‘연대 네트워크’를 통해 제품을 팔며 간신히 버텼다. 성공적인 정치적 상징이 됐으나, 경제적으로는 보수가 월 360유로 수준에 머물고 실업급여마저 끊기는 등 참여 노동자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자본주의하에서 공기업이 겪는 구조적 곤경은 가장 큰 국가 단위에서도, 가장 극적인 공장 단위에서도 확인된다. 유고슬라비아의 ‘시장 사회주의’(1950년대~1980년대)는 ‘자본주의 바다의 외로운 공공 섬’ 논리가 국가 단위로 실현된 완벽한 사례였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국유 기업의 경영 통제권을 각 기업의 ‘노동자 평의회’에 맡겼다. 그러나 이 ‘자주관리(또는 자율경영)’ 기업들이 서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내버려 뒀다. 그 결과, 수출이 잘되고 수익성이 높은 공장의 노동자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받으며 소득이 넉넉해졌고, 낙후된 산업의 노동자들은 도산 위기에 처해 스스로 임금을 깎거나 해고를 단행했다. ‘자본가’의 착취는 없었지만, 노동자 집단 간의 첨예한 경쟁과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며 결국 체제 붕괴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아르헨티나 파신팟(FaSinPat, 구 사논 Zanon)은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당시 임금을 체불하고 공장을 폐쇄한 기업주에 맞서 노동자들이 세라믹 타일 공장을 장악하고 ‘사장이 없는 공장(Fábrica Sin Patrones)’을 운영한 사례다. 초반에는 고용을 늘리는 등 기적 같은 성과를 냈고, 2009년 8월 네우켄 주 의회가 공장 수용법을 통과시켜 2012년 공장·설비·상표가 노동자 협동조합에 최종 이전됐다. 그러나 법적 소유권을 얻은 뒤에도 시장의 압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크리 정부 시기 공공요금 폭등으로 월 전기요금이 30만 페소에서 200만 페소로 치솟으면서 체납이 쌓였고, 코로나 위기 시기에는 전력 공급이 끊겼다가 채무 상환을 약속한 뒤에야 재개됐다. 2026년 현재 생산은 멈춰 있고, 협동조합은 주 전력공사에 진 20억 페소가 넘는 전기요금 부채를 갚기 위해 공장 인근 부지 매각을 검토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재고와 고철을 팔아 연명하고 있다.

결국 이 사례들은 기존 사회 체제와 구조(경쟁과 이윤 중심의 논리)를 바꾸지 않은 채, 단일 기업의 간판을 ‘국유화’나 ‘노동자 통제’로 바꿔 다는 것으로는 해방이 불가능하며, 오히려 가장 가혹한 형태의 ‘자발적 착취’를 낳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유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국유화’(또는 ‘노동자 통제하의 국유화’)를 그 자체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더 근본적인 투쟁이자 노동자에게 위기의 대가를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투쟁의 핵심 고리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논의하는 주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00여 년 전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초기 시절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주제였지만, 그 발생 맥락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사뭇 다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각국은 참전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에 직면했다.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혼란은 경제를 10년, 심지어 20년 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후퇴시켰다. 특히 연합국의 전쟁 부채를 ‘배상금’으로 갚아야 했던 독일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실질임금을 전쟁 전 수준의 50~80퍼센트로 유지하는 정책을 폈음에도 독일 정부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재원을 마련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의도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계급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동시에 슈티네스·크루프·지멘스 같은 거대 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인플레이션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 정책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세금이 징수될 때쯤이면 세금 납부에 사용된 지폐가 사실상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좌파는 ‘실질적 가치에 대한 과세’, 즉 국가가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자본의 일부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놓았다.

여기서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이 문제들에 대해 제시한 논증을 다시 게재한다. 이 논증들은 1921년 하반기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회보에 ‘자본주의 발전과 쇠퇴 시기의 조세 문제’라는 제목의 테제로 발표됐다.

당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ECCI)는 지노비예프와 부하린이 주도했고, 레닌과 트로츠키는 그 활동을 전반적으로 감독하는 역할만 맡고 있었다. 지면 관계상 테제 전체가 아니라 전후의 국가자본주의와 국유화 문제를 다룬 부분만 발췌해 실었다.


국유화와 국가자본주의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인해 국민소득 대비 국가 지출 비율이 역전됐다. 이전에는 5~10퍼센트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국민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독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국민소득을 지폐 기준으로 1,400억 마르크로 추산했다(브뤼셀 전문가 회의). 국가 지출은 복구 비용(1921년 기준 약 500억 마르크)을 포함해도 약 1,500억 마르크에 달한다. 따라서 국가 총지출이 국민소득을 초과해 축적된 부의 일부를 지출할 필요성이 생긴다.

아무리 광범한 조세제도를 적용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에 필요한 수단을 모두 제공할 수는 없다. 더욱이 지폐 가치 하락으로 인해 아무리 높은 세금이라도 몇 달 안에 재원을 마련하기에 역부족이다. 화폐세는 물론 화폐 자체도 허구에 불과하다. 오직 실질적인 가치만이 견고한 조세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모든 교전국은 이러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며, 기술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 방식을 없애고, 관리 비용을 절감하며, 국가의 직접적 이윤 분배를 도입하기 위해 산업의 국유화(국가적 트러스트로의 전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산당들은 도처에서 국가자본주의 문제에 근접하고 있다.

제2인터내셔널과 제2.5인터내셔널, 그리고 암스테르담 국제노동조합연맹을 이루는 정당들은 이 문제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이윤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트러스트화해 국가가 통제하는 것을 사회주의 강령의 실현으로 보고 이를 ‘사회화’라고 부른다. 이 정당들은 이러한 ‘사회화’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화를 통해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점진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진실을 왜곡하고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자본가 계급의 손에 권력이 남아 있는 한, 그들로부터 생산수단을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국가가 모든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몰수한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공공 경제의 경영권이 개별 자본가들로부터 전체 부르주아 계급으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계급이 공장위원회를 통해 산업을 일정 부분 통제하고 산업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들이 사회화에 관해 만들어 낸 환상을 파괴해야 한다. 그들의 환상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노동계급이 부르주아지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막는 데에만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조된 사회화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사회 혁명 시기에 공산당이 국가자본주의에 대해 취할 적극적 태도가 조금도 정해지지 않는다.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공산당의 태도는 자본주의의 붕괴와 세계 혁명 역량의 축적 과정이 점진적이며, 특히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들에서 세계적 차원의 장기적 투쟁을 요구한다는 점을 전제한다. 이 기간 코민테른의 정책은 노동 대중의 시급하고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투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코민테른은 자본주의의 이익이나 자본 축적의 필요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덜거나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 요구들을 제시한다. 자본주의는 과거처럼 경제 발전의 동력 역할을 더는 하지 못한다. 현재의 자본 축적은 새로운 사회 질서 탄생이라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연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코민테른은 제시된 요구들이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그 요구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기는지만을 고려한다. 동시에 코민테른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들이 이중성을 띠거나 부분적으로 개혁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러한 요구를 위한 투쟁이 최대한 많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결집하고 나아가 권력 쟁취 투쟁으로 발전한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수용할 경우, 국가자본주의 요구는 한편으로 부르주아지를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요구는 계급투쟁 전선의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노동계급 승리 이후 사회주의를 실현할 더 나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쿠노프나 레너 같은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세계적 발전은 반드시 국가자본주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관점이 도식적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가자본주의 시대를 거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은 다르다. 사회 혁명기에 산업 국유화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든 진전은 승리 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업을 수월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많은 동지가 국가자본주의 조직화가 부르주아지를 강화하고 혁명의 도래를 늦출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세계 혁명은 자본주의 조직의 결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요구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이러한 요구를 부분적으로라도 충족시킬 수 없는 무능력 사이의 불일치에서 비롯한 결과다. 그러므로 사적 신디케이트를 국가 독점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늦추거나 세계 혁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 독점 도입, 즉 영미권 국가에서 흔히 ‘국유화’라고 불리는 조치를 위한 투쟁은 현재 심각한 혁명적 투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지는 이 모든 요구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압력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게 된 국가 관료는 점진적으로 이윤을 몰수하고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을 확대하도록 강제될 수 있다.

조세 제도가 국가 신디케이트와 국가의 이윤 분배 문제로 이어질 때마다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상황이 발생한다.

혁명 기간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조세 제도는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결국에는 더 나아가 혁명적인 조치로 이어지거나 옛 부르주아 체제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고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인 1917년 9월 레닌은 팸플릿 《다가오는 재앙과 그에 맞서는 투쟁 방법》에서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제시했다. 레닌은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카데트당(입헌민주당)으로 이뤄진 연립 정부(즉, 대기업, 도시 소시민, 부유한 농민으로 이뤄진 정부)가 자본가들의 이익에 얽매여 있는 탓에 이 간단하고 절박한 조치들조차 실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폭로했다.

  1. 모든 은행을 하나의 은행으로 합병하고 국가가 운영을 통제하는 것, 즉 은행을 국유화하는 것.
  2. 신디케이트의 국유화, 즉 가장 거대한 독점적 자본가 연합체(설탕·석유·석탄·철강 등의 신디케이트)의 국유화.
  3. 영업 비밀 원칙의 폐지.
  4. 강제 신디케이트화, 즉 산업가·상인·기업주 일반을 신디케이트(연합체)로 강제 결합시키는 것.
  5. 주민을 소비조합으로 강제 조직하는 것, 또는 그러한 조직화를 장려하고 그에 대한 통제를 행사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요약하자면,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개혁주의 정당들이 제시하는 세금 요구와는 달리, 공산당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이러한 조치들이 대중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노동계급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2. 대중에게 이러한 조치들이 단지 일시적인 대책일 뿐이며, 국유화를 기반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 스스로 산업에 대한 강력하고 투쟁적인 노동자 통제 기구를 조직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만 노동계급의 상황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3. 프롤레타리아가 단일 전선으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과정에서 정부가 경제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과감한 조치를 시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과제는 개혁주의적 환상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록 환상적인 전제에서 출발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혁명적 결과를 가져올 투쟁을 강화하는 데 있다. 노동계급은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통해 ‘국민소득’에서 자신들의 몫을 늘리려 하고 있으며, 조세 투쟁을 통해 인상된 임금이 자본주의 국가의 재정 적자를 메우는 데 다시 몰수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임금 인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생각은, 산업 국유화와 국가 이윤 배분을 통해 이윤의 일부를 몰수해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시도만큼이나 공상적이다. 두 경우 모두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그 의미는 노동계급 투쟁을 확대하고 더 격렬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국가자본주의적 조세 요구를 지지하고 이윤과 재산의 일정 비율을 과세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간접세 제도뿐 아니라 현행 직접세 제도의 표적이 되는 가난한 소시민과 소규모 농민 대중을 견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직접세 제도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소규모 농민들의 소득과 재산을 압박하려는 시도다. 모든 문제 중에서 조세 문제는 재산 소유 계급 내 여러 집단, 특히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고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대부르주아지와 국가 균형 재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농민 사이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충돌하는 문제다. 따라서 공산당의 조세 정책은 프롤레타리아가 소농과 중농을 포함한 더 넓은 대중과 함께 부르주아지와 대지주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동에서 얻은 소득과 잉여가치의 전유에서 얻은 소득, 즉 소농처럼 자신의 노동력을 수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반이 되는 재산과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이용되는 재산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공산주의 조세 정책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간접세를 거부하고 임금에 대한 모든 소득세를 거부하며, 모든 소비 및 유통세를 거부한다. 아울러 개인의 노동으로 얻은 소득에 부과될 수 있는 모든 세금을 거부한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의 국유화 강령”을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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