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긴 글 미국의 쇠퇴, 이제 중국의 시대가 열리는가?:
중국의 부상, 모순, 저항

이 글은 2026년 9월 30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에이드리언 버드가 한 강연과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에이드리언 버드는 런던 사우스뱅크대학교 부교수이자 사회과학부 학부장을 지냈고, 현재 동 대학의 객원 연구원이며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당원이자 마르크스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위원이다.

중국의 부상, 모순, 저항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 역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부상했고 지금도 여러 면에서 부상 중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므로 간단히 다루겠다.

내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내가 어릴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은 정말 크게 변했다. 과거에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난한 농업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현대식 교량과 고속철도를 갖춘, 여러 면에서 크게 발전한 나라다. 한국에 사는 여러분은 유럽인보다 이를 훨씬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발전을 뚜렷이 보여 주는 사례 하나는 고속철도다. 2008년만 해도 중국의 고속철도망은 상하이 공항과 도심을 잇는 노선 하나뿐이었다. 그 후 10년 만에 중국은 세계 최대 고속철도망을 구축했다. 노선 총연장이 세계 다른 모든 나라의 고속철도를 합친 것보다 길다.

중국이 세계 경제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1980년에는 약 1~1.5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20퍼센트에 육박한다.

이렇듯 중국의 부상은 명백한 현실이지만 거기에는 온갖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부상을 추동한 동력을 봐야 한다.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팽창을 추동한 첫째 요인은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이주다. 조사마다 추산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억 7,000만 ~ 3억 명이 생산성이 낮은 낙후한 농촌을 떠나 대규모 공장과 일터가 있는 대도시로 이동했다.

이렇게 이주한 노동자(농민공)들은 대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가 출생지에 연동되는 중국의 호적 제도 때문에 농민공들은 도시에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 취약하고 공장과 일터에서 착취당하기 쉬운 대규모 노동력을 이뤘다.

둘째 요인은 그들의 소비가 자본 축적에 종속됐다는 점이다. 아래 그래프는 중국 연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가 자본 축적에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는 심대한 과잉 축적 위기를 낳을 조건이다.

셋째 요인은 수출이다. 마오쩌둥 사후 개혁기가 시작된 1978년 중국의 수출 규모는 미미했다. 그러나 2010년경부터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됐고, 2025년에는 수출액이 3조 7,7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십중팔구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을 넷째 요인은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계획?’이라고 물음표를 붙이겠다.

중국 국가가 연간 계획과 5개년 계획을 통해 국가의 목표와 국가가 자원을 집중하려는 부문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계획을 달성하는 일은 지방정부와 지방 당국에 내맡겨진다. 그래서 “하나의 국가, 32개의 경제”라는 어느 저술가의 말처럼 엄청난 중복과 낭비가 있다.

부상이 낳는 모순

이제 모순의 여러 측면을 조명해 보겠다. 순서에 큰 의미는 없는데, 아마도 여러분은 이 모순을 드러낸 사건과 변화들을 익히 알고 있을 듯하다.

첫째, 부동산 문제다. 지난 30년 넘게 이어진 주택 건설 호황은 이제 사실상 완전히 멈췄다. 신규 주택 건설이 급감했다.

수많은 주택이 비어 있다. 2024년에는 팔리지 않은 주택이 8,000만 채에 달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중국에서 주택의 96퍼센트가 민간 소유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야수의 심장이라는 미국에서도 그 비율은 65퍼센트다.

주택은 경제의 나머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적 위치에 있다. 사람들은 집을 사면 소비재를 사서 그 집을 채운다. 그래서 주택 부문이 위기에 빠지면 나머지 소비재 제조업도 위기에 빠진다. 전체 경제의 약 30퍼센트가 주택과 주택 관련 산업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중요한 주택 부문이 침체에 빠지면 더 광범한 경제가 고통을 겪는다. 이는 경제 성장률의 저하로 나타난다. 그런데 공식 통계마저 부풀려진 것일 수 있고, 실제 성장률(1~2퍼센트)은 공식 통계(4퍼센트)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흥미로운 관측도 있다.

물가는 실제 상황이 공식 통계로 나타나는 것보다 심각하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중국은 지난 2년간 디플레이션을 겪었고 그 상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 일본의 디플레이션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최근의 변화를 살펴봤는데, 좀 더 장기적인 변화도 있다. 특히 인구 압박이 주목할 만하다.

농민공의 이주는 생애에 한 번 있는 현상이고 지속·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농촌에서는 잉여 노동력이 상당히 빠져나간 상태다.

도시 인구는 고령화하고 있다. 다른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인구 분포가 점점 노년층으로 쏠리고 있고 노인이 늘고 있다.

최근 한 경제지는 이 문제를 시진핑이 AI를 적극 지원하는 한 이유로 꼽았다. 제조업에서 일할 노동자가 점점 줄어들 테니 로봇과 AI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고령화, 인구 감소의 대응책이라는 것이다.

큰 고통을 겪는 층 하나는 청년 대졸자들이다. 연도별·월별 청년 실업률을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청년 실업률은 졸업 시즌에 가장 높은 경향이 있다.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얻기 전이기 때문인데, 이제는 일자리를 얻는 졸업생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여러 해에 걸친 추세를 보여 준다. 이 추세는 여기에 나타낸 것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그래프 안의 공백은 청년 실업 증대로 곤혹스러워하던 정부가 통계 발표를 중단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사이에 정부는 계산법을 고친 뒤 다시 발표를 재개했다. 그 때문에 실업이 잠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마저도 다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분노한 청년들 사이에서 ‘졸업은 곧 실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취약해지는 경제

전반적으로 보면, 경제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취약점 하나는 수출이나 자본 축적에 비해 내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르면 2002년부터 내수와 가계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경제를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시진핑의 발언도 그것의 최신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가계 소비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2000년보다 적다. 반면, 자본 축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다.

내수가 취약한 이유 하나는 개인·가계 소비를 뒷받침하는 복지 지출이 적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무슨 사회주의이기는 한 것이냐는 문제를 다시금 제기한다.

물론 우리는 중국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지지자들에게 “중국은 도대체 무슨 종류의 사회주의 사회이길래 주택 대부분이 민간 소유이고, 교육·의료에 대한 국가 지원도 거의 없고 개인이 자비로 부담하는 것인가” 하고 물어야 한다.

개인·가계 지출 중 정부 지원의 비율이 중국보다 적은 주요국은 거의 없다. 브릭스(BRICS) 회원국 중에서도 인도만이 중국보다 낮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개선될까? 최근 시진핑은 유럽식 복지국가가 노동자들을 나태하게 만든다며 이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연설했다.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도널드 트럼프, 신(新)우익과 다름없는 주장이다.

늘어나는 부채

중국이 직면하기 시작했고 심각하게 겪게 될 위험이 커지고 있는, 오늘날 위기의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부채 규모의 증대다.

부채는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좌파는 이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먼슬리 리뷰》의 필자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도 부채 규모가 늘고 있다는 이들의 지적은 옳다. 이것은 자본주의라는 세계 체제 전반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에 약 130퍼센트였던 중국의 총소득 대비 총부채 비율이 2025년에 300퍼센트를 넘긴 것은 중요한 변화다.

문제의 심각성을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대부분의 부채는 한 국가 기관이 다른 국가 기관에게 진 빚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이 국가 기관들은 지역별로 나뉘어서 경쟁한다.

《먼슬리 리뷰》의 견해와 달리 부채가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 주는 사례 하나는, 부채 증대와 함께 저항과 노동자 투쟁이 증대한다는 점이다.

부채 부담에 시달리는 지방 정부들은 복지를 삭감하고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방정부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쟁의를 낳고 있다. 그리고 지방 정부들은 경쟁 속에서 각자의 재정을 충당하려고 국가 자산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중국은 첨단 기술을 갖춘 정상적 자본주의 경제가 되고 있다. 서유럽이나 미국에 견줘 국가가 경제에서 더 작은 역할을 하는 부문도 있다. 전반적인 규제는 서구보다 좀 더 엄격하지만 국가 생산은 전보다 줄어들었고, 국가 복지는 확실히 매우 제한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기업들이 부채로 자금을 수혈받아 연명하는 ‘좀비 자본주의’의 모습을 빼닮은 것이다.

일자리가 느는 부문도 있는데, 규제가 적고 유연한 ‘긱 경제’ 부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차량 사이를 누비며 아파트와 일터에 음식을 배달하는 위험한 일자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노동자들은 최근 안전한 노동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 규제가 가장 완화되고 유연한 부문이 가장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징후다.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미국과의 경쟁 때문이다.

중국이 가계 지출을 늘리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세계 시장, 군사 기술, 첨단 기술 우위 등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초고도 축적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경제는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아래로부터의 저항도 격화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저항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적어도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세계 다른 모든 자본주의에서 익히 봐 왔던 모순들이 빚어지고, 그런 모순들이 저항을 촉발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항의가 벌어졌다. 널리 알려진 사례는 홍콩이다.

홍콩이 갈수록 중국 본토의 통치 방식에 편입되면서 민주적 표현을 위한 작은 여지마저 사라지자, 홍콩 사람들은 여기에 저항했다. 널리 알려진 우산 운동이 있었고, 중국의 국가보안법을 홍콩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항의 운동은 현재로서는 완전히 진압됐다. 가장 뛰어난 홍콩 마르크스주의 조직가·운동가 일부는 이후 홍콩을 떠나 영국 등지에서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들의 항의가 있다. 이 운동은 상당히 발전해 있지만 잘 조직돼 있지는 않다. 전국 수준의 여성 운동을 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운동 등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저항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고 지역 수준에 머물도록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태의 저항도 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코로나 록다운 기간에 중국 곳곳에서 벌어진 록다운 반대 시위다. 시진핑의 극단적인 록다운 방식이 촉발한 시위였다.

이 항의는 2022년 말 신장 우루무치 화재에 대한 항의로 이어졌다. 당시 그 화재로 위구르 무슬림 10여 명이 숨졌다. 록다운을 이유로 경찰이 이들을 아파트 안에 가두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여기에 항의해 시위가 벌어지자 신장에서 사상 최초의 연대 행동이 벌어졌다. 인구의 다수이고 그 지역에서 식민 정착자로 불리는 한족 주민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한 시위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위구르 무슬림들이 시위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 시위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연대는 중국 곳곳의 50개 도시로 확산됐다. 주로 대학 도시였고, 많은 경우 여성들이 앞장섰다. 젊은이들이 록다운과 위구르 무슬림 천대 모두에 항의했다.

파업 지지 시위나 거리 시위에서 여성들이 선두에 서는 것은 중국에서 꽤 널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종의 방어 전술인데 경찰이 강제 해산을 시도하면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서 경찰을 향해 “성추행하지 마라!” 하고 외쳐 경찰을 움찔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초보적이지만 어느 정도 발전한 계급의식이 엿보인다. 그것은 젠더를 통해 표현되지만 그 바탕에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있다.

그뿐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환경, 노인 권리 증진 및 노인 지원 등 사회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항의가 빈발했다. 지방은행이 문을 닫자 사람들이 “우리 돈을 돌려 달라” 하고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노동자 저항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특별한 관심을 둔다. 중국에서는 2007~2016년 동안 거대한 파업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 시진핑이 권위주의를 강화하며 노동자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상황이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끝날 무렵 록다운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선전 공장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공장을 탈출해 경찰과 충돌했다. 이는 비슷한 다른 수많은 투쟁의 마중물이 됐다.

그래서 중국 노동운동을 연구하는 미국 학자 일라이 프리드먼은 2023년 초에 “코로나19 이후 공장 파업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관측했다.

당시 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측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품었지만, 실제로 파업이 부활하고 노동쟁의 빈도도 전반적으로 늘었다. 홍콩에 기반을 두고 중국 노동운동의 성장을 추적하던 ‘차이나 레이버 불레틴’에 따르면, 중국의 노동자 행동은 2023~2025년 사이 갑절로 늘었다.(중국 바깥의 좌파들에게 ‘차이나 레이버 불레틴’은 중국 상황을 전하는 소중한 매체였는데 2025년 5월에 폐쇄됐다. ‘차이나 레이버 불레틴’ 측은 재정난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중국공산당이 비판을 일절 불허하며 압박한 탓이다. ‘차이나 레이버 불레틴’의 폐쇄는 노동운동의 상대적 취약성을 보여 준다.)

파업 노동자들이 다시 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두 가지 사례를 들겠다. 하나는 지난 1월 청소 노동자들이 도로를 봉쇄해 위력을 과시한 것이다. 둘째, 푸양 버스 노동자들이 지방정부에 항의하는 구호를 버스에 내건 것이다. “16개월째 임금 체불. 우리 돈 내놔라.”

이 파업들은 방어적 파업이고 상대적 약세에서 나오는 투쟁이다. 16개월 동안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들이 벌이는 운동을 강력한 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분명 투지를 보이고 있고, 그들의 분노와 투쟁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방어적일지라도 실제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모순을 보여 준다.

그래서 시진핑이 지난 10년 동안 전보다 권위주의를 훨씬 강화한 것이다. 앞서 시진핑의 파업 물결 탄압을 언급했지만, 국가보안법 문제도 있다.

중국의 국가보안법은 세 명 이상 모인 모든 공개 단체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당국의 통제 대상이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는 기업과 대학 등 온갖 단체가 해당될 수 있다. NGO들, 특히 중국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 운동을 지원하는 중국 본토 바깥 NGO들의 활동이 분쇄됐다.

권위주의 강화를 보여 주는 한 사례는 신장 지역에서의 탄압이다. 신장에서 거주하고 연구하며 그곳의 실상에 관한 탁월한 책을 쓴 저자들은 신장·위구르 지역 자본주의의 성격을 ‘테러 자본주의’로 규정했다.

요컨대 지배계급의 힘이 강화돼 왔다. 하지만 우리 편도 저항 능력이 있다. 그 저항을 짓누르기 위해 자행되는 일 자체가 저들이 우리 편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마무리하겠다. 바닥을 치면 남은 것은 반등뿐이라는 말이 있다. 영시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않으리.” 다시 때가 올 것이다. 노동운동을 다시 키우고, 여성운동을 다시 키우고, 천대에 맞서는 다른 모든 운동들도 다시 키울 때가 올 것이다.

데이터에서도 나타나듯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제국주의 간 경쟁이 그 위기를 한층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투쟁의 봄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토론 정리

훌륭한 발언과 토론에 감사한다. 제기된 논점을 하나씩 살펴보고, 순진하지 않으면서도 낙관적인 결론을 내려 보겠다.

‘정치적 우울’

중국 청년들이 겪는 ‘정치적 우울’에 관한 두 발언은 우리 좌파가 매우 강력한 적에 맞서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치적 우울은 실질적인 문제다. 상상의 산물이나, 우파가 지배하는 소셜미디어의 산물이 아니다. 서구 청년들이 소셜미디어에 이끌리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교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징후다.

소셜미디어는 우파, 대형 플랫폼, 빅테크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이를 보여 주는 최근 사례로, 이번 브라질 대선을 약 열흘 앞둔 시점에서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한 소셜미디어 계정이 친트럼프 빅테크 기업들에 의해 정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저들이 통제하는 기술과 맺는 관계에서 우리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한편에는 ‘둠스크롤링’(한국에도 이런 말이 쓰이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화면만 들여다보며 끝없이 스크롤바를 내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그와 사뭇 다른 현상도 있다. 모든 시위가 젊은이들로 가득하고, 젊은이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예컨대 그레타 툰베리도 소셜미디어의 늪에 빠지지 않은 그런 젊은 층에 해당한다.

물론, 집에만 틀어박혀 내면에 갇혀 사는 많은 청년이 중국과 한국, 그 밖의 나라들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속 불가능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발전 모델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한 발언자가 중국 여행 중에 만난 중국의 장시간 근로 노동자들에게 느낀 동질감에 관해 얘기했는데, 그 연결은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첨단 산업 부문 노동자들이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맞서 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중국 IT 전문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996ICU’로 불린 운동이 벌어졌다. 9시부터 9시까지 주 6일 일하다 심장마비나 질병으로 중환자실(ICU)에 실려 간다는 뜻이다. 이 운동은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퍼져 수만 명, 어쩌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젊은 전문직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전문직 노동자들조차 분노가 크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압력솥과 같아서, 압력이 계속 높아지면 결국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말 폭발할 것이다. 근저에서 제국주의 간 경쟁이 열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발전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지만 중국 지배자들은 그 모델을 바꿀 수도 없다. 기술과 군사력 우위 등을 두고 미국과 경쟁하려면 자본을 계속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서 양쪽, 즉 중국과 미국 모두 같은 평행 궤도 위에 있으며, 그 궤도에서 내려올 수도 없다. 경쟁이라는 체제의 본성이 그들을 궤도 위에 붙잡아 두기 때문이다.

세계는 식량과 의약품 등을 필요로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실하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핵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감시카메라로 사람들을 초정밀 감시하며, 그 치밀한 감시로 파악한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압력솥의 압력은 일거에 폭발하지 않고 조금씩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는 한 발언자가 언급했듯 이탈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도 1960년대 미국의 히피들과 비슷한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시골로 내려가 카페를 차리고 기타를 치며 지내는 식인데, 이들은 기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꾸리고 싶어 한다.

폭발하는 분노가 오른쪽으로 이끌릴 가능성도 있다. 한 발언자는 극우가 세계적 문제임을 옳게 지적했다. 중국에서는 국가가 극우적 표현을 부추기는데, 시진핑은 초(超)국수주의 서사에 갈수록 의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중국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총격을 가하거나 군중 속으로 차량을 돌진시키고, 일본인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에서 우경화는 시진핑 치하의 한화(漢化)로도 나타난다. 한화는 한족 고유의 문화가 아닌 것을 동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주로 이슬람을 상대로 자행되는데, 많은 이슬람 사원이 폐쇄되고 훨씬 더 많은 수가 ‘중국식’으로 흉물스럽게 개조됐다.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정권이 청년·무슬림·여성을 억압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운데, 중국 바깥의 좌파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중국이 서방보다 낫다고 보며 중국 편을 들거나, 중국을 증오하며 자유주의 가치를 근거로 미국 편을 드는 것이다.

우리는 두 관점 모두 배격해야 한다. 미·중 대결은 서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벌이는 경쟁이다. 비록 그 형태가 조금 다를지라도, 두 사회 모두 그 경쟁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자본주의로서 면모를 갖게 된다고 봐야 한다.

공통성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공통된 경험을 봐야 한다는 점이다. ‘996’이라는 현실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매우 비슷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국경을 가로지르는 연대를 표해야 한다. 홍콩에서 투쟁하는 이들에게도 연대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주의라고 믿는다면 그러기란 쉽지 않다.

영국에 있는 한 동지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그 동지는 원래 홍콩에서 활동하던 정설 트로츠키주의 제4인터내셔널 경향의 조직자였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 ‘변질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을 버리고 중국을 ‘국가자본주의의 한 형태’로 보는 견해를 받아들이게 됐다. 오직 그럼으로써만 그는 중국을 비판하면서 홍콩의 민주적 권리를 지지하는 활동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망명 중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 분단선이 동방과 서방, 또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게 아님을 지적해야 한다. 근본적 분단선은 세계 지배계급들과 우리 사이에 그어져 있다. 비록 세계 지배계급들끼리도 서로 싸우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경을 넘는 국제적 연대이지 진영론이 아니다. 극좌파가 진영론을 받아들이고 어느 한 지배계급 진영을 지지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진영론은 대안이 아니다

흔히 ‘적의 적은 내 친구’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국 노동계급과 중국 시위대에게 중국 지배계급이 적이라 해도, 중국 지배계급의 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그들의 친구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서구 노동자들은 미국을 증오한다고 해서,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 편이라고 믿자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여기서 ‘중국’은 중국 국가와 정권을 뜻한다. 중국 노동자는 우리의 친구지만, 중국 정권은 우리 친구가 아니다.

중국 지배계급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그들의 외교 정책을 사례로 들어 보겠다.

훨씬 약한 위치에서 부상을 꾀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중국은 남중국해와 한반도 등을 포함한 지역에서 선린(좋은 이웃)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중국이 국력을 어느 정도 키운 2010년, 아세안 회원국들이 중국 연안의 중국 해군 활동에 관해 불평하자, 당시 중국 외교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대국이고 당신들은 소국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당신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요컨대 닥치라는 말이었다.

진영론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위구르인들을 수용소에 감금하는 지배계급 편에 서서는 안 된다. 전 세계 감시 카메라의 절반을 가지고 사회를 감시·통제하고 끔찍한 감옥 같은 체제를 운영하는 지배계급과 연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한 지배계급을 편드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혁명적 좌파는 약하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소수다. 우리는 아직 세계에서 가장 큰 세력이 아니다. 과거보다는 커졌지만 말이다.

트로츠키의 두 일화로 마무리하겠다. 하나는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일이다. 당시 트로츠키는 마차 네 대면 전 세계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모두 태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강연장에 모인 여러분만 해도 마차 네 대에 다 못 태울 정도로 많다. 우리는 1915년만큼 약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두 번째 일화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패배하고 소비에트의 혁명가들이 분쇄됐을 때의 일이다. 1930년대 후반에 트로츠키는 자신의 아주 작은 혁명적 세력과 하던 활동이 그가 과거에 이룬 업적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후 복지국가가 성장하고 전후 호황이 찾아왔다.

우리는 더 성장하기를 바라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1914년이나 1938년 때만큼 약하지 않다. 지금의 혁명적 좌파는 그때보다 영향력이 훨씬 크다. 우리는 압력솥이 폭발하는 현장에 있을 수 있다. 그 폭발을 오른쪽으로 뒤틀려는 압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서 성장세를 보여 온 항의 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운동과 연대함으로써 그 운동을 돕고 좌경화시킬 수 있다.

나를 초청해 준 데 감사하며, 동지들의 활동에도 감사한다. 동지들의 활동에는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내가 속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함께할 때 세계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낙관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녹취·번역: 김준효
〈노동자 연대〉를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보세요!
매일 아침 〈노동자 연대〉 기사를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