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전진’)의 국유화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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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코민테른의 국유화와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논제”를 읽으시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하 전진) 강령의 국유화 조항은 상당히 급진적이고 범위가 넓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상: 철도, 전기, 통신, 제철, 가스, 수도, 의료, 항공, 은행, 교육 같은 기간산업을 국가가 소유해야 하고, 통신·발전처럼 이미 민영화된 과거 공기업은 재국유화해야 한다.
확대: 국유화를 자동차, 조선, 반도체 같은 민간 대기업으로 넓혀야 한다. ‘주요 산업 국유화’로 요약될 수 있다.
무보상: 대자본가에게는 보상하지 않는 몰수여야 한다. 그 근거로 IMF 당시 공적자금이 대기업을 떠받쳤으니 재벌 국유화는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는 논리를 든다.
금융: 은행·보험사도 무상몰수·국유화하되, 서민 예금은 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전진은 철도·가스·발전의 외주화와 자회사 사례를 들며 공기업도 사기업처럼 착취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자본가 국가의 관료가 통제하면 국유화해도 소용없고, 노동자 산업통제가 반드시 결합돼야 한다고 한다. 나아가 자본가가 전력으로 저항할 것이므로, 권력을 노동자정부로 옮기는 정치적 조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전진이 실제로 국유화를 요구한 사례가 있다. 강령 선전에 그치지 않고 선전·선동의 전면에 내건 사례가 확인된다.
발전산업 국유화: 전진은 “노동자 죽이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철폐하고 발전산업을 국유화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태안화력 김충현 노동자 사망(2025년 6월)의 여파가 그 맥락이었다. 2026년 6월 13일 정의로운 전환 대행진에서 뿌린 리플릿은 1면 제목부터 발전산업 국유화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발전노동자 직접고용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리플릿의 본문은 발전 5사 분할 경쟁체제와 다단계 하청의 해법을 통합 국유화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제시한다.
쿠팡 국유화: 전진 온라인신문에 “끝도 없는 쿠팡의 범죄경영, 김범석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쿠팡을 국유화하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강령의 ‘플랫폼 국유화’ 조항을 적용한 사례다.
조선산업 국유화와 2024년 총선: 전진은 이장우 노동당 후보의 공약이 조선산업 국유화나 노동자 산업통제 투쟁 촉구에 못 미친다면서 그를 ‘비판적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요구들은 전진의 대중투쟁강령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국유화를 선거 운동 개입의 잣대로 쓴 사례라 눈여겨볼 만하다.
AI 국유화: 최근 온라인 신문에 “AI 국유화 논쟁과 노동자 통제의 국제주의”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반도체와 AI를 국유화 대상에 넣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진의 국유화 강령과 그 적용은 급진적이고 분명 노동당 류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는 준별되지만 혁명적 관점에서 비판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⑴ 국유화가 먼저, 노동자 권력이 나중이라는 순서. 강령의 서술 순서는 몰수·국유화 → 노동자 산업통제 → 평의회 → 노동자정부다. 마르크스와 레닌에게서는 순서가 반대다. 노동계급이 먼저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이 생산수단을 수용한다(《공산당 선언》 2장의 “먼저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고”). 자본주의 국가가 소유 주체인 한, 국유화는 소유 형태만 바꿀 뿐 자본 축적의 논리를 바꾸지 못한다. 전진도 이 점을 알기에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정부’를 덧붙이지만, 실제 선동에서 전면에 나오는 것은 대개 “○○를 국유화하라”다. 정작 결정적인 권력 문제는 조건절로 밀려난다.
⑵ 한국 현대사가 이미 반례를 여럿 보여 준다. 1997년 말 기아차가 그렇다. 1997년 산업은행 출자전환으로 사실상 공기업이 된 뒤에도 인력 감축은 계속됐고, 1998년 10월까지 약 8,300명이 떠났다. 대우조선해양은 20년 넘게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사실상 국유기업이었지만, 2022년 하청노동자 파업과 거액의 손배 청구가 바로 그 체제 아래에서 벌어졌다. 전진도 공기업의 착취를 인정한다면(인정한다), 국유화가 복지 향상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은 그만큼 약해진다. 이 사례들이 보여 주듯, 국유화는 그 자체로 필요조건이라기보다 누가 국가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중립적 형태에 가깝다.
⑶ 국가자본주의 문제. 노동자연대가 속한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국가자본주의론에서 보면 약점은 더 근본적이다. 국가가 모든 산업을 소유해도, 그 국가가 세계 체제의 경쟁 압력 아래서 축적을 강제당한다면 결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다. 소련과 동구권이 그 예다. 전진의 강령은 ‘민주적 계획경제’를 말하지만, 한 나라 안의 국유화가 세계시장 경쟁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⑷ 민족주의·산업정책과 뒤섞일 위험. 조선, 반도체, AI는 한국 국가가 스스로 ‘전략산업’으로 키우는 부문이다. 이 부문의 국유화 요구는 계급적 요구로 제기되더라도 ‘국가 경쟁력’이나 ‘기술 주권’ 담론과 겉모습이 쉽게 겹친다. 쿠팡처럼 ‘미국 국적 총수’ 문제가 얽힌 경우에는 반외세 정서와도 만날 수 있다. 전진이 실제로 그렇게 미끄러졌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국유화를 선동의 중심에 두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은 지적할 만하다.
⑸ 《이행강령》 방법의 기계적 적용. 트로츠키의 이행 요구는 대중의 현재 의식에서 출발해 권력 문제로 이어주는 다리로 구상됐다. 1938년 파국적 위기를 전제로 한 것이기도 했다. 대기업 전체의 무상몰수를 오늘날 한국 노동자들의 당면 투쟁과 곧바로 잇는 것은, 다리라기보다 선전 구호를 선동 구호처럼 쓰는 것에 해당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전진 쪽에서 나올 반론도 공정하게 적어 두되, 각각에 대한 답을 함께 붙인다. 첫째, 발전 비정규직 직접고용처럼 구체적 요구와 결합된 국유화 선동은 추상적 ‘사회주의’보다 노동자에게 대안을 손에 잡히게 보여 준다. 그러나 대안을 보여 주는 일과 그 대안을 관철할 힘을 조직하는 일은 같지 않다. 발전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진전시키는 것은 국유화 구호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조직력과 파업 능력이며, 국유화가 선동의 앞자리에 설수록 그 힘의 문제는 국가에 대한 청원으로 밀려난다.
둘째, 전진의 강령은 국유화만 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 통제와 노동자정부를 명시적으로 결합한다. 그러나 강령 문언에 결합돼 있다는 것과 선동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별개다. 앞서 본 성명과 리플릿, 기사의 제목은 예외 없이 ‘○○를 국유화하라’였지 노동자 권력이 아니었다. 문서 상의 결합은 실천 상의 종속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셋째, 민영화 반대 투쟁에서 ‘(재)국유화’는 방어적 요구로서 실제 대중적 호소력이 있다. 이건 사실이다. 다만 민영화에 맞선 방어적 국유화 요구와, 주요 산업 전반의 무상몰수를 오늘의 중심 구호로 내걸어 사회주의의 대체물로 삼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전자의 호소력을 후자의 근거로 쓰는 것은 논점 이동이다. 그래서 핵심 쟁점은 국유화 요구의 옳고 그름보다, 그것이 선동의 무게중심을 노동자 자신의 힘과 권력에서 국가 소유 형태로 옮겨 놓느냐는 데 있다. 그리고 앞에서 본 다섯 가지에 비춰 보면, 전진의 실제 선동은 그 무게중심을 국가 소유 형태 쪽으로 옮겨 놓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국유화 요구를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구호를 항상 노동자 통제와 권력 문제에 종속시켜 제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 자신의 조직된 힘을 선동과 활동의 중심에 두는 것이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