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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선거연합,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 선거연합이 필요한 정치적 이유

민주노동당이 진보 선거연합을 결성해야 하는 까닭은 주류 정치권의 정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는 반면, 민주노동당이 2002년보다 당세가 크게 확장되긴 했지만 아직 충분히 많은 노동자들과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다.

2002년 초만 해도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노무현을 내세워 집권 연장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열우당은 "8∼9퍼센트 선의 지지도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상황으로 사실상 자기존립의 동력을 잃어 버린 것으로 보임. … [정계 개편을 시도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론이 반응하지 않는 상황"(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2002년 이맘때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앞세워 정권 탈환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한나라당은 4·25재보선 참패에 뒤이은 두 대선 예비 주자 박근혜와 이명박의 지저분한 다툼 때문에 정권 탈환 가망성이 사라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대안이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는 부동층이 증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 대안을 염원한다. KSOI 조사(2007년 2월 6일)에 따르면, 46.2퍼센트가 '범진보개혁 연합의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진보 세력은 2002년보다 더 강력하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지지율이 꾸준히 10퍼센트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과제를 2002년 대선처럼 노동자 독자적 정치세력화 추구에만 맞출 수는 없다.

노무현과 열우당에 개혁을 기대하다 지금은 그들의 배신에 환멸을 느끼는 광범한 개혁 염원 대중이 존재한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시대적 과제는 이런 광범한 개혁 염원 대중과 접촉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의제와 정책을 개발해 자기 '색깔'을 대중에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이들과의 접촉점을 만들기 어렵다. 그저 선전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의 변형 버전이 '민주노동당 중심의 선거연합'론이다.

물론 우리는 진보 선거연합의 최종 결과물이 '민주노동당 중심의 선거연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주도성이 선거연합을 함께할 대상자들에게 연합의 전제조건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어느 단체가 이런 조건에 동의하겠는가?

더 위험한 것은, 미리부터 민주노동당이 주도하지 못하면 선거연합을 파기하겠다는 자세다. 주도성은 민주노동당이 연합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가 매력적임을 대중에게 입증함으로써 획득하는 것이지, 주도성을 강요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오히려 주도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개혁 염원 대중에 구애한다며 그들을 추수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 문제에 정면으로 대처하기보다는 회피한다든가, 국민연금 문제에서 후퇴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서 당을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보이게 하기 등이 그런 시도에 속한다. 그런 식의 우경화로는 신자유주의적 사이비 '개혁'과 전쟁 등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반감에 부응할 수 없다.

운동 속에서 진보 선거연합을 건설하기

'다함께'는 지난해 말부터 반전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선거 대안, 즉 반전 반신자유주의 반주류정치 진보진영 선거연합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오늘날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는 대중 운동이 존재한다. 반전·반신자유주의 정서는 운동의 규모보다 더 광범하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도전하려면 단지 열심히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더해 운동이 매우 정치적이어야 하고 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한미FTA 반대 운동은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대중의 반신자유주의 정서에 정치적 표현을 제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한미FTA 반대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를 건설하지 못하면 기성 정치권의 일부가 그 운동에 올라타려 할 수 있다.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의 수혜자는 사회자유주의 정당인 사회당이었다. 사회당은 1997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리오넬 죠스팽이 총리가 됐다. 그러므로 기성 정치권의 일부가 한미FTA 반대 운동을 가로채가기 전에 진보진영이 선수를 쳐 그 운동의 정치적 대표체를 건설해야 한다.(정치 상황이 급변해 다른 운동, 가령 반전·반제국주의 운동이 부상할 수도 있고 그리 되면 그 운동이 선거연합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반(反)한미FTA 선거연합을 결성하자고 해서 한미FTA 반대만이 선거연합의 유일한 기준인 것은 아니다. 일단 한미FTA를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선거연합을 결성하되, 그 안에서 전쟁 반대 등을 선거 강령으로 채택하는 과정을 밟자는 것이다.

이런 정치 원리에 따라 독일에서는 복지 삭감 프로그램인 '하르츠Ⅳ'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분열시켰고 이 과정에서 새 좌파 정당인 '좌파'가 막 탄생했다.

한미FTA 반대 운동 같은 대중운동에서 등장해 그 운동과 관련 맺는 선거연합을 건설할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지금보다 비할 데 없이 더 넓고 다양한 세력들에 기반할 수 있을 것이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10퍼센트 안팎인 반면, 한미FTA 반대 여론은 30∼40퍼센트이다.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문제

그런데 단식 농성까지 해 가며 한미FTA를 반대한 천정배나 김근태 같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들도 선거연합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는 문제이다.

한때 열우당에 있다 지금은 탈당해 운동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또, 민주노동당과 이들의 연합을 희망하는 '통합번영미래구상'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노동계급의 정치적 대표체와 지배계급의 정치적 대표체 간의 연합은 체제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힘을 갉아먹을 뿐이므로 노동자 정당은 그런 연합을 원칙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통합번영미래구상'은 열우당이 아니다. 그들이 범여권 '개혁파'의 결집을 희망할지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천정배 등 한미FTA에 반대하는 열우당 이탈파에 대한 태도가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미FTA에 반대하는 열우당 이탈파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정배 등의 한미FTA 반대를 기회주의라고 비판하며 그 진정성을 의심한다. 실제로 천정배가 법무부장관과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내며 "개혁 사기꾼" 노릇을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천정배 등이 자본가적 정치 기반을 버리고 진보 쪽으로 넘어올지 아니면 자기의 본래 기반에 남아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천정배 등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 골머리를 썩일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 반대로, 천정배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버리고 진보 쪽으로 넘어오게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천정배가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바꾸기 위한 정치적 모험을 한다면 대중의 환상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럴 때 '통합번영미래구상'과는 선거연합을 할 수 있지만, 그 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천정배와는 함께할 수 없다는 주장은 현학이다. 노동계급 대중의 특정 부분이 천정배를 믿는 한은, 그와 협상하지 않고는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대중에게 천정배의 본질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이 과제는 단순히 폭로만으로는 안 되고, 대중 자신의 정치적 경험에 의한 자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정치인들의 변신이 대중의 환상을 자아내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멕시코 대선에 출마했던 민주혁명당(PRD)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지금은 시민 저항 운동의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지만 처음에는 20세기 대부분 동안 멕시코의 집권 여당이었던 제도혁명당(PRI)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같이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정치적 격변기에는 정치적 휘발성이 강하다. 이것은 그만큼 대중 의식의 유동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럴 때 일체의 타협 가능성을 거부하게 되면 대중 의식의 흐름과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진보 총단결"에 동의하다면, 그것의 구현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세부 방식에 대한 이견 때문에 "진보 총단결"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다함께'는 선거연합의 형태가 공동전선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재창당 형식을 띨 수도 있다고 본다.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시대적 과제가 더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디딤돌 놓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주류 정치권의 위기를 이용해 운동을 전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적 방식일지라도) 국가 권력에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자 정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광범한 단결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1백만∼2백만 명 가량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체 노동계급(1천5백만 명) 중에서는 소수만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의 광범한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진보 선거연합은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은 2007년 5월 17일 민주노동당 대선준비위원회 토론회 발표문을 축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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