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
반전 운동의 성장을 위해 극복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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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2004년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납치 살해된 故 김선일 씨 사건을 떠올렸다. 일부는 김선일 씨 피랍 당시와 마찬가지로 신속히 거리로 나와 반전 시위를 벌였고, 한국 정부에 즉각 철군 선언을 촉구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시위는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러한 시위들이 없었고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과 이에 동참한 노무현 정부의 파병 정책의 책임을 사태 초기부터 낱낱이 따져 물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정부와 우파 언론들이 ‘쟁점 흐리기’를 통해 사태의 본질을 가리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나아가 시위는 미국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는 데도 일정한 구실을 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지금 사태가 ‘제2의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번질까 노심초사하며 2002년 대선 패배의 악몽에 몸서리치고 있다.
물론 운동이 거둔 이러한 중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2004년 김선일 씨 피랍 당시의 운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왜 운동의 규모가 그 때에 훨씬 못 미치는가?’ 하며 질문을 한다.
먼저, 우선 그 때와 지금은 객관적 조건, 특히 계급 세력 균형과 전체 운동의 자신감 수준에 차이가 있다.
2004년 6월 김선일 씨 피랍·살해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국은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선 탄핵 반대 운동이라는 역사적 규모의 대중 동원과 승리를 경험한 직후였다. 우익은 완전히 찌그러들었고 운동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기
당연히 이러한 분위기는 김선일 씨가 납치된 사실이 알려졌을 때 벌어진 운동의 대응과 규모에 영향을 미쳤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열우당이 새로 다수당이 되고 민주노동당 의원 9명이 진출한 새 의회에 기대를 걸었고 정부의 파병 정책을 쉽게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노무현 정부의 파병 정책이 독자적 이해관계보다는 단지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운동 내 다수파의 견해도 이러한 낙관을 부추겼다.
당시 이러한 기대와 낙관은 탄핵 반대 운동의 승리가 가져온 사기 고양과 결합돼 사람들이 파병 철회 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고무했다. 물론 머지않아 이것이 ‘환상’임이 드러났고 그러자 역으로 운동에 혼란과 사기저하가 찾아왔지만 말이다.
파병과 파병 재연장, 부시의 재선 등이 이어지며 반전 운동에 적극적이던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낙담해서 소극적 태도로 바뀌었고 이런 분위기는 아직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둘째, 대중이 사태의 핵심을 명확히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적 혼란이 존재한다.
이번에 피랍된 한국인들이 기독교 선교 활동과 연관돼 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이 이번 피랍 사태를 보는 심경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선교 책임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선교 책임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단일하지 않다. 우익은 정부의 파병 정책을 두둔하고 철군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선교 책임론’을 제기한다.
문제는 대체로 반전 운동의 대의에 우호적인 자유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는 혼란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파병 문제를 지적하며 철군을 주장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보수 기독교 교단의 선교 행태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흔히 이러한 태도는 ‘예수천당! 불신지옥!’ 식의 안하무인격 선교 활동은 물론 이를 주도하는 보수 기독교 교단의 더 광범한 부패와 우익적 행태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고 이해할 만한 반감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그 배경이야 무엇이든 결국 이러한 태도는 현실에서 진정한 표적을 모호하게 만들 뿐이고 그 결과 실제 행동에 기권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십상이다.
사실 ‘선교 책임론’은 구체적인 정황을 따져 봤을 때 사실이 아니다. 〈뉴스위크〉 등 여러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볼 때, 탈레반은 자신들이 납치하려는 대상이 선교사라는 사실은커녕 한국인이라는 것조차 몰랐음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 피랍자들의 선교 활동(물론 실제 구체적 선교 활동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과 납치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얘기다.
탈레반의 납치를 우선적으로 심지어 더 중요하게 문제 삼는 태도 역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진정한 표적을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와 우익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탈레반의 민간인 납치와 살해를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반전 운동은 그러한 행동이 국제적 연대와 진정한 대중 운동 건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내 일부 세력의 반미 선동은 탈레반을 도와 그들의 만행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더러운 데마고기일 뿐이다.
데마고기
그러나 우리는 탈레반의 극단적 저항 방식이 그보다 더 끔찍하고 야만적인 침략 전쟁과 점령에서 비롯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침략 전쟁과 점령, 이를 돕는 파병 정책의 종식만이 피랍자들을 구하고 계속되는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다. 탈레반이 일부 무고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 때문에 불법 침략 전쟁을 벌여 수만 명을 학살한 세력과 동등하게 비난하는 것은 결코 “공평무사”한 태도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운동을 주도하는 지도부들이 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있었다.
먼저 운동을 건설하는 초기에 지도부 중 상당수가 양비론에 휘둘리면서 운동의 표적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 배형규 목사가 살해된 뒤 치러진 집회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 내의 대다수 단체들이 사실상 탈레반을 겨냥한 피랍자 석방 요구를 한국군 철군 요구보다 앞세운 것이나 최근 일부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돼 벌인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 등이 그렇다.
최근에는 NL 경향 동지들이 중심이 돼 ‘미국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미 대사관 앞 촛불 시위를 열고 있다. 이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문제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핵심 고리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관련 시위 동원 규모는 한반도 관련 쟁점들보다 훨씬 적었다. 또, 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후에는 관심의 초점을 그쪽으로 옮기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과 ‘테러와의 전쟁’이 부시 정부의 제국주의 전략에서 차지하는 중대한 위치를 고려할 때 아쉬운 일이다.
반전운동의 과제
당면 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측면들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첫째, 노무현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단 한국군 파병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피랍 사건을 주도한 가즈니 주(州)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도 피랍 사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우리 조국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 의해 침략당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고 미국을 도운 모든 나라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있어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탈레반과 가까운 파키스탄의 이슬람주의 정당인 ‘자미아트 울마에 이슬람’의 지도자 마울라나 파잘 우르 레흐만은 대통령 특사 백종천과 만난 자리에서 피랍자들을 구하고 싶다면 “한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조기 철군을 선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즉각 철군을 선언할 경우 피랍자 석방 협상이 급진전될 것이고 앞으로 한국민들이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의 목표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동시에 노무현 정부가 부시 정부에게 포로 교환에 나설 것을 요구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민이 납치됐을 때 미국 정부에 포로 교환 수용을 요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무현이 그렇게 하게끔 운동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의 힘’ 등이 암시하듯 미국 책임론은 무망한 일이므로 노무현 정부만을 겨냥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미국 정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미국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비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를 향한 즉각 철군 요구는 부시 정부가 사태 해결에 진지하게 나서도록 하는 데도 매우 유효한 압력이 될 것이다.
둘째,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모든 양비론적 주장을 단호히 반박해야 한다. 피랍자 자신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나 탈레반에게 비극의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시도가 그렇다.
만약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졌을 때 국제 반전 운동이 ‘테러 반대, 전쟁 반대’ 하는 식의 양비론적 태도를 취했다면 그토록 강력한 반전 운동이 건설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양비론
예컨대, 지난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미국의 반전 운동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을 양비론적으로 비판하는 태도 때문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운동을 건설하는 데 실패한 반면 영국의 반전 운동은 즉각 미국과 이스라엘을 선명하게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함으로써 ‘부시의 푸들’ 블레어의 퇴진을 결정적으로 앞당길 수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도 양비론적 태도보다는 단호하게 부시와 노무현 정부를 겨냥하는 것이 힘을 집중해 운동을 건설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 ‘테러와의 전쟁’이 항구적인 만큼 그에 맞서는 우리의 운동 또한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이 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미국 제국주의를 패배시키고 싶다면 미국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인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끝나든 한국 정부의 파병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대선에서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살해 항의 시위가 커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단단히 붙잡고 운동을 건설한다면 대선에서 진보 진영은 훨씬 유리한 지위에서 논쟁을 주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대중 운동을 건설할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