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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개헌 국민투표 부결:
우고 차베스는 끝났는가?

마이크 곤살레스가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이유를 분석해 보내왔다. 마이크 곤살레스는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스페인어문학부 부교수이고, 스코틀랜드의 신생 사회주의 정당 ‘솔리대리티’(Solidarity)의 당원이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으로는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책갈피)이 있다.

12월 1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는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우고 차베스가 제안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둘러싼 선거운동은 그 전날 ‘찬성’ 구호가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은 차베스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함께 공식적으로 끝났다. 11월 30일 카라카스 도심을 가로지른 차베스 지지 시위대는 하루 전의 반정부 시위대보다 훨씬 많았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차베스가 근소하게 승리할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들은 일요일 새벽 3시부터 투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요일도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 전 몇 주 동안의 활동 수준에 비춰 보면 분명히 그랬다. 몇몇 도시에서는 대학들이 학생 시위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기본 생필품(설탕·밀가루·달걀·우유 등) 부족으로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대규모 사보타주가 있을 거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야당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카라카스의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건물을 불태우는 등 폭력 사건들도 있었다.

12월 2일 밤이 되자 국민투표에서 차베스가 패배했음이 분명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개헌 반대가 50.7퍼센트, 찬성이 49.3퍼센트라고 발표했다. 우고 차베스가 1998년 대통령 당선 이후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차베스는 짤막하지만 위엄있는 TV 연설에서 자신의 패배를 신속하게 인정했다.

가장 의미심장한 수치는 기권율이다. 유권자의 45퍼센트가 투표하지 않았다.(2006년 차베스 재선 당시 기권율은 30퍼센트 미만[25퍼센트]이었다.) 우익들은 강렬한 선거운동으로 전보다 더 많이[20만 표] 득표했으므로, 유일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차베스 자신의 지지율이 감소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몇 가지는 개헌안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째

1999년 제정된 볼리바르 식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1백30여 개의 조항들은 서로 다른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차베스는 개헌안을 통째로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국회에서 수정된 항목들 ― 대체로 문구만 다듬은 ― 은 또 다른 묶음으로 투표에 부쳐졌다.

개헌안의 많은 조항들은 분명히 진보적이었다. 예컨대, 사회보장제도를 자영업자들에게까지 확대하고, 노동시간을 하루 여섯 시간으로 단축하고, 종교나 성(性)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들을 신설하는 것 등이 그렇다. 또, 개헌안은 2006년에 설립된 주민자치평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2002~2003년 사용자 ‘파업’ 이후 확립된 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미션)들도 더욱 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중권력”이라는 용어가 헌법에 규정돼 “21세기 사회주의”의 버팀목 구실을 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조항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군대와 경찰과 국가 경제 부문을 대통령이 직접 통제하게 하고,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조항 등이 그렇다. 이것은 사회의 진정한 권력을 기층 조직들에게 넘겨주겠다는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우익들은 “독재” 운운하며 차베스를 비난했지만, 많은 좌파들도 이렇게 차베스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며 이것은 민중권력이나 민주주의 심화라는 미사여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 관련 조항들은 경제를 세 부문으로 나누었다. 협동조합과 ‘민중기업’ 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경제 부문이 약 10퍼센트를 차지하고, 민간부문(사유 재산이 보장되는)이 약 45퍼센트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차베스가 직접 지배하고 점차 중앙집권화하는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적 소유 부문이다. 이것은 결코 글로보비시온(Globovision) 같은 우익 TV 방송이 떠들어댄 “사유 재산의 폐지와 공산주의의 도래”가 아니었다.

결국, 우익은 그들이 가진 무기들을 잘 이용했다. 언론 지배력, 인위적으로 생필품 부족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 독재 반대 구호를 중심으로 사립대학과 전문대 학생들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그들의 무기였다.

그리고 우익은 몇몇 중요한 동맹들도 얻었다. 특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차베스 정부의 국방장관으로서] 볼리바르 식 혁명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예비역 장성 바두엘이 우익 진영으로 넘어갔다. 결정적 순간에 바두엘이 차베스를 비난함으로써, 군대 내부의 분열 ― 그동안 줄곧 부인돼 왔던 ― 이 밝히 드러났다.

사회주의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운동의] 퇴보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볼리바르식 프로젝트에서 혜택을 입은 압도 다수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거부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그동안의 약속이 얼마나 많이 이행됐고 앞으로 얼마나 잘 지켜질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예컨대, 주택 건축 수량은 약속된 규모에 미치지 못했다. 혁명의 성과로 여겨진 의료 혜택도 이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을 위한 기금이 마땅히 그 돈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것은 단지 비효율성 때문만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정치의 고질적 병폐였고 볼리바르식 혁명으로도 뿌리뽑지 못한 대규모 부정부패 때문이다. 그리고 개헌안 부결 선동 와중에 물자 부족 문제가 크게 부각됐지만, 베네수엘라 빈민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물자 부족이 중대한 문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베스가 국제 관계에서 점차 급진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좌절과 실망을 보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민주주의, 진정한 21세기 사회주의라면 진정한 민중권력 건설 ― 차베스가 그토록 잘 표현하고 상징하는 가능성, 그러나 그가 약속한 개헌으로는 실현하기 힘들 듯한 가능성 ― 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베스를 그토록 열렬하게 지지해 온 베네수엘라인들은 옛 지배계급에게 전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옛 지배계급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 1973년 칠레 지배계급이 그랬듯이 끔찍한 보복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사회 기층민들의 외침일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도 보여 준다. 그것은 특정 개인의 권력 위에 세워진 사회가 아니라 노동 대중이 자신의 생활을 집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위에 세워진 사회, 한 마디로 사회주의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