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거저 주운 이명박의 반동 성공 시대를 저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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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사무친 반노무현 정서를 보여 줬다. 반노무현 정서는 이명박의 온갖 비리와 범죄들이 풍기는 악취도 상쇄하지 못했을 만큼 강력했다.
반노무현 정서는 전통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쳐 온 ‘지역’과 ‘세대’라는 변수도 약화시킬 정도였다. 대중은 “정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파이낸셜 타임스〉) 싶었던 것이 아니다. ‘변화와 개혁’을 내걸고 당선한 노무현이 5년 동안 저지른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개악과 배신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노무현의 개혁 위장 사기는 이명박의 ‘위장’보다 한발 앞섰다. 5년 동안 우리 주변에는 ‘88만 원 세대’가, 거리·지하철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부쩍 늘었다. 반면, 노무현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삼성 이건희, 이랜드 박성수, 한화 김승연 같은 비리·조폭 자본가들의 천국이었다.
우리 귓가에는 아직도 “나는 살고 싶다. 한국군은 이라크를 떠나라”는 김선일 씨의 절규가 들린다. 통곡하며 경찰에 끌려가던 이랜드 비정규직 어머니들의 모습도 선하다.
노무현은 ‘묻지마’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민주주의도 파괴했다. 파병 과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표현·집회의 자유를 가로막혔다.
이 위선과 배신의 5년 동안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원한이 이번 대선을 좌지우지했다.
물론 이것을 피하기 위해 개혁 사기꾼들은 다양한 사기극을 연출했다. 노무현을 열우당에서 쫓아내고 자신들도 탈당했고, 결국 열우당을 해체했다. 어지러운 ‘헤쳐 모여’를 반복했고, ‘통합신당’으로 간판도 바꿔 달았다. 정동영은 왼쪽 깜박이를 켜서 이탈한 지지층을 되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이런 눈속임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과 정책은 그대로인데 간판만 바꾼다고 속을 사람은 없었고, 자본가라는 계급 기반의 압력 때문에 정동영의 ‘왼쪽 깜박이’마저 희미해졌다. 정동영과 ‘프리 허그’를 하던 사람들은 그의 품에서 노무현의 냄새를 맡고 정나미가 떨어져 달아났다.
막판으로 갈수록 정동영은 BBK ‘한방’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똥 묻은 썩은 막대기’(이명박)라도 들고 내려치려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의 계승자들이 ‘그 막대기는 더럽다’고 말하는 것은 부아만 돋굴 뿐이었다.
물론 차마 ‘똥 묻은 썩은 막대기’를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은 노무현의 계승자를 지지하기보다 기권을 택했다. 이것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낳았다. 이명박 동영상은 판세를 뒤집기보다 투표율을 더 떨어뜨리고, 이명박의 우파 지지자들이 결집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번 대선 결과는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노무현과 그 계승자들의 패배다. 그리고 이명박이라는 파렴치범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는 것도 노무현과 그 계승자들의 범죄 목록에 추가됐다.
이명박의 모순
노무현의 배신은 노무현 지지 기반의 붕괴와 정치적 양극화 촉진을 낳았고, 이명박은 그 오른쪽 수혜자다. 2002년에 노무현을 찍었던 유권자 중 무려 40퍼센트 이상이 이번에는 이명박(또는 이회창)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은 단순히 대중의 우경화를 뜻하지 않는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의 지난 7월 ‘국민이념성향조사’ 결과에서 ‘일관된 진보’층(30.3퍼센트)은 ‘일관된 보수’층(20.8퍼센트)보다 많았고 2002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았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이주 노동자 인권 보장’ 지지 여론도 무려 80퍼센트에 달했다. 나아가 올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정부의 성향이 ‘진보’여야 한다는 응답이 ‘보수’여야 한다는 응답보다 항상 더 많았다.
그런데 각종 여론 조사에서 스스로 ‘진보’라고 답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지율 1위는 이명박이 차지했다. 진보 염원 대중마저 우파 후보를 지지한 역설은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하나는 ‘변화와 개혁’을 내건 노무현의 배신이 낳은 분노와 냉소였다.
이명박이 부패한 우파 후보라는 것을 알면서도 냉소적인 ‘차라리’ 논리가 작용했다. 두 명의 사기꾼 중에서 겉다르고 속다른 사기꾼보다 겉과 속이 일치하며 적어도 ‘경제는 살릴’ 사기꾼이 ‘차라리’ 더 낫다는 그 나름의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또, 개혁 사기극에 질린 사람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는 청년들은 이명박의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은 실용과 경제 살리기”라는 속임수에 이끌렸다. 우파 유권자들의 지지만으로는 집권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이명박과 한나라당도 산토끼를 잡기 위한 ‘중도화’ 전술을 택했다.
그래서 이명박은 극우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끝내 시청 앞 친미반북 집회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정형근이 앞장서서 ‘대북유화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을 ‘적대’ 대상(18퍼센트)이 아니라 ‘협력’ 대상(78퍼센트)으로 보는 여론(2007 서울대 통일연구소)을 고려한 것이다.
이회창과 문국현 : 정치적 양극화의 모순된 산물
그러나 부패한 우파 후보로서의 본질을 “실용”으로 가려 고정된 우파 지지층을 넘어 일부 개혁 염원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책략은 아슬아슬하게 진행됐다.
온갖 비리와 오물범벅의 이명박은 언제 ‘유고’ 상태가 될지 모르는 불안한 후보였다. 더구나 이명박의 ‘중도화’ 전술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더 우경화하는 우파들의 반발을 낳았다. 이런 모순이 ‘차떼기’ 이회창을 부활시켰다. 이회창은 이명박의 ‘유고’ 가능성을 불안해 하거나, 이명박의 우파적 확고함을 믿지 못하는 우파들을 파고들며 기반을 마련했다.
친미반북 시위를 일삼던 ‘국민행동본부’는 이회창을 “정통 보수 세력의 대부”라고 치켜세웠다.
이회창은 “이명박이 되면 통제 불능 상황이 올 것”이고 “이명박은 신좌파 정권이 될 것”이라고 선동하며 전통적 우파 지지자들의 표를 얻는 데 일부 성공했다. 이회창은 보수 신당을 만들어 이명박의 위기에서 우익적 반사이익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의 모순된 효과를 왼쪽에서 보여 준 것은 문국현이다.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문국현은 “여권의 해체가 가져온 아웃사이더”이다.
범여권의 문턱을 들락거리면서도 끝내 단일화는 거부한 문국현과 창조한국당은 붕괴한 노무현의 지지 기반 중 왼쪽을 차지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문국현의 ‘솔루션’(해결책)이 비정규직 문제 정도를 빼면 노무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창조한국당 정무특보 김헌태는 문국현의 정체성은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제3의 길이 혼합된 정도”이며 심지어 “노무현 정부보다도 오른쪽”이라고 했다.
나아가, 탈세를 하며 두 딸에게 거액을 증여하려 했던 것과 KT 사외이사로서 정리해고와 분식회계를 묵인했던 사실은 그가 ‘선량한 자본가’인지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나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NGO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고, 자본가 출신이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우는 포퓰리즘적 성격 덕분에 문국현은 범여권 지지층에서 이탈해 민주노동당으로 오던 표를 일부 가로채는 얄미운 짓은 저지를 수 있었다.
이명박은 ‘불도저’의 운전석에 앉을 수 있을까?
이명박은 ‘언제 터질지 불안한 시한폭탄 후보’에서 ‘언제 터질지 불안한 시한폭탄 대통령 당선자’로 바뀌었다. 이제 후보 유고 가능성은 대통령 유고 가능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회창마저 “대통령이 되자마자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를 경고했다.
BBK 사기극 때문에 이명박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고, 자칫하면 통치 불능 처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 정당성의 위기는 이명박을 감싸 온 자들에게도 향하고 있다. 이건희도 비호한 떡값검찰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명박 특검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국회 안에서 벌어진, 흉기까지 동원한 ‘이종격투기’도 정치 위기의 심각함을 보여 줬다.
더구나 이명박 지지층은 뿌리가 얕고 충성도가 약하다. 노무현이 싫어서 이명박을 ‘묻지마’ 지지했던 사람들은 상황 변화에 따라 미련없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불안정과 통치 불능 사태를 걱정하는 자본가들도 등을 돌릴 수 있다.
설사 이명박이 이 고비를 넘기고 취임하더라도 그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명박은 노무현이 추진하다가 반발과 분노를 일으킨 그 신자유주의·친제국주의 정책을 고스란히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한미FTA, 비정규직 확산, 이라크 파병 등에서 노무현이 박아 온 ‘대못’들을 뽑기는커녕 더 단단하게 박으려 들 것이다. 이 측면에서 범여권은 지난 5년처럼 한나라당의 실질적 동맹자일 것이다. 물론 권력을 놓고 아귀다툼을 치열하게 하면서도 말이다.
더 심각해질 경제 위기는 이명박의 위기를 더 부추길 것이다. IMF 때 경제부총리였던 임창열은 “이대로 가면 2~3년 안에 외환 위기가 또 온다”고 했고, 한국은행은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경고했다. ‘경부대운하’로 이런 위기를 막을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지지표는 이명박의 목을 겨냥한 칼이 되어 돌아갈”(노회찬) 것이다.
결국 이명박은 노태우 정부처럼 ‘공안정국’, 즉 일반화된 국가 탄압에 의존하려 할 텐데, 노동계급의 조직과 의식이 건재한 상황에서 이것은 계급투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죽이려는 자와 살려는 자의 극렬한 싸움”을 예측했다.
노동자·민중운동의 과제
노동자·민중운동은 거짓말쟁이 파렴치범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하루빨리 당선자에서 사퇴하도록 강력한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한나라당 심재철은 “좌파 정권이 남긴 각종 흔적을 하나씩 벗겨내는 좌파 적출 수술을 할 단계”라며 그 악랄한 본색을 드러냈다. 이명박이 안정적으로 취임에 성공하면 삼성 이건희, 이랜드 박성수 같은 자들이 더 기고만장해져서 온갖 범죄와 악행을 거리낌없이 저지를 게 뻔하다.
따라서 이 오물범벅의 우익 신자유주의자를 우리 운동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BBK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무한 책임을 지겠다”던 이명박이 갈 곳은 교도소뿐이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옳게도 “[이명박이] 기어이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민주노총이 직접 심판하겠다. 그때 가서 우리 보고 파업한다고 나무라지 말라”고 했다.
이명박은 정동영, 이회창에게서도 사퇴를 요구받았던 자이다. 물론 통합신당과 이회창 쪽은 이 문제를 특검에 맡기고 총선에서 이용하려고만 할 것이다. 2002년 미국 대선 때 헌법재판소가 부시의 부정선거를 눈감아주고 고어가 그것을 수용했듯이, 국가기구나 자본가 정당들이 이 문제를 철저히 파헤칠 리는 없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운동은 시민사회 진영과 연대해 강력한 대중 행동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이미 당선된 이명박을 끌어내리려면 실로 대규모의 대중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과 통합신당, 한나라당은 곧 각종 개악 공조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선거에서 그 대의를 대변해 온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자이툰 철군을 위한 투쟁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권영길 후보도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선거 운동을 마감하면서 새로운 투쟁을 선포한다. … 민주노동당의 투쟁은 내일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투쟁에 앞장서면서 노무현에게 실망해 왼쪽으로 이탈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한 대중을 끌어당겨야 한다. 개방적인 자세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의 대연합을 건설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명박 정권이 취임조차 불가능하도록 투쟁해야 하며, 설사 취임하더라도 그 정권의 퇴진을 하루라도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단명한 이명박 정권 이후의 정치적 대안도 준비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운동 활동가들은 정치적 양극화에 조응하는 계급투쟁이 일어나도록 개입하며 노동자·민중의 ‘투쟁 성공시대’를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