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이탈리아에서 로마노 프로디 중도좌파 정부가 붕괴한 것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천박한 우익 정치가 종식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희망을 무참히 꺾은 사건이었다.

2001년 제노바의 G8 반대 시위와 2002년 피렌체 유럽사회포럼의 성공 이후 다른 어느 유럽 국가보다도 먼저 이탈리아에서 좌파의 혁신이 성공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프로디의 중도좌파 정부에 합류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유럽의 모든 급진 좌파 정당이 실패했다고 성급히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유럽 대륙의 반대편인 독일과 그리스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 링케[독일어로 ‘좌파’]가 창당된 후 독일의 정치 지형은 흔들리고 있다. 링케는 서독 사민당(SPD)에서 이탈한 사람들과 옛 동독의 지배 정당에서 개량주의 정당으로 변신한 민사당(PDS)이 결합해 탄생한 정당이다.

링케

링케는 최근 주(州)의회 선거에서 상당한 득표를 했다. 헤세와 니더작센에서 의석 확보선인 5퍼센트 이상의 표를 얻었을 뿐 아니라, 2주 전 함부르크 주의회 선거에서는 6.5퍼센트를 얻었다.

링케의 성장은 SPD 우경화에 맞선 노동계급 유권자들의 반란을 의미한다. SPD는 1998년~2005년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아래서 녹색당과 함께 정부를 운영하면서 실업수당을 줄이는 내용의 신자유주의 정책 ‘아겐다2010’을 강제로 추진했다.

SPD는 200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패배한 후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우익 정당 기민련(CDU)과 함께 정부를 구성했다. 200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링케의 전신은 8.7퍼센트를 얻어 연방의회에서 54석을 확보했다.

새로운 SPD 당수 쿠르트 벡은 링케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SPD는 아겐다2010을 무시하고 장년 구직자의 실업수당 증액 정책을 밀어붙였고, 대연정 정부가 우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정책을 도입하도록 강제했는데, 이는 사실상 우편 사유화 계획을 좌절시킨 것이다.

메르켈도 선거 운동에서 리히텐슈타인을 ‘조세도피처’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척해야 했다.[최근 독일의 주요 기업가들이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리히텐슈타인으로 자금을 이동시켜 온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FDP)의 당수 귀도 베스테벨레는 “지금 링케가 SPD와 녹색당을 [왼쪽으로] 잡아당기고, SPD가 CDU를 [왼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하고 불평했다.

시나스피스모스

한편, 그리스에서는 지난 4개월 동안 두 번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집권당인 우익 신민주당(ND)의 연금 개악과 사유화 정책은 광범한 도전을 받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ND는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거대 주류 정당인 중도 좌파 정당 범그리스사회운동(PASOK)이 이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번 집권했을 때 영국 신노동당식 정책을 취했던 PASOK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2주 전 내가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1퍼센트가 ND를, 28.3퍼센트가 PASOK을, 16.2퍼센트가 시나스피스모스(좌파 연합)를, 7.1퍼센트가 그리스공산당(KKE)을, 3.8퍼센트가 극우정당인 라오스(LAOS)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그 중에서 시나스피스모스가 가장 역동적인 세력이다. 시나스피스모스는 원래 그리스 급진 좌파의 지배적 세력인 KKE에서 떨어져 나온 다양한 분파들이 결합해 만든 정당이다. 최근까지 시나스피스모스는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3퍼센트의 표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시나스피스모스는 KKE와 함께 1950년대 이래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은 그리스 급진 좌파 정당이 됐다.

링케와 시나스피스모스의 성공은 사민당의 위기와 전투적 노동자 투쟁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된 덕분이다. 그리스의 경우처럼 독일에서도 최근 중요한 파업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양 정당 모두 중도좌파 정당과의 연합이라는 똑같은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SPD의 한 최고 지도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데, 나와 당수[쿠르트 벡]는 연방 수준에서 링케와의 연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벡은 헤세 주(州)에서 SPD와 링케 간 연합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링케와 시나스피스모스는 프로디 정부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 급진 좌파 정당이 전진할 수 있는 길은 의회 안에서의 협상과 연합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연대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