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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화 봉송 소동과 ‘중화민족주의’

4월 27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중국 유학생 일부가 중국의 티베트 만행에 항의하는 티베트인들과 한국인 시위대에게 저지른 폭력과 위협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야만적 행동이었다.

그들은 대안 성화 봉송 행사를 벌인 ‘티베트평화연대’ 회원 3명을 호텔 안까지 추격해 잔인하게 구타하기도 했고, ‘티베트평화연대’가 나눠준 티베트 평화 기원 풍선을 들고 있는 시민들을 공격해 강제로 풍선을 터뜨리기도 했다.

중국 유학생 일부가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과격한 행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와 주한 중국 대사관이 성화를 보호하고 티베트 지지 시위를 방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매뉴얼을 만들어 전 세계 대사관에 배포했는데, 이 매뉴얼에는 성화가 인계되는 지점에 20명씩 모여 인간 장벽을 만들어 방해자 진입을 차단하고 중국 유학생들 외에 대규모 단체를 발견하면 책임자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안팎에서 있었던 티베트 반대와 성화 방어 시위들이 모두 중국 정부에 의한 관제 동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티베트 사태에 대한 중국 언론의 온갖 왜곡보도와 선전 공세가 작용했지만 많은 시위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이것은 ‘중화민족주의’(좀더 정확한 용어는 한족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정당화

원래 한족 민족주의는 19~20세기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 속에서 형성됐다는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는 피억압 민중의 민족주의로서 반제 투쟁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른바 ‘중화권’의 각종 언론과 한국 내 중국인 유학생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를 보면, 시위에 참가한 중국인들은 과거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들면서 자신들이 서방 제국주의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전히 제국주의적 억압을 자행하고 있는 서방 정부과 그 곳의 주류 언론 들이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국 정부의 티베트인 탄압이나 이를 정당화하려는 일부 중국인들의 반티베트 시위 혹은 성화 봉송 지지 시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제 한족은 더는 억압받는 민족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고도성장 덕분에 점차 핵심 제국주의 열강의 대열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날 한족 민족주의는 2005년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에 반대하는 행동의 동력이 되는 등 이따금 일리 있는 요구를 담기도 하지만, 주로 티베트 점령이나 중국 군사력 강화, 아프리카 자원 쟁탈전 참가 같은 중국 지배자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돼 있다.

한족 민족주의 강화에는 중국 국내적 맥락도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경제 개발이 낳은 엄청난 모순과 불평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사회의 지니계수(2006년 기준 약 0.5)는 대중 항쟁과 급진화 속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수준에 육박한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고 온건한 개혁 조처들 ─ 농업세 폐지, 노동권을 약간 더 보장하는 노동법 개정 ─ 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지배 관료는 한족 민족주의를 부추겨 자신들과의 동질성을 인민에게 강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훨씬 값싼 방법이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 정책을 위해서든 국내 통치 질서 안정을 위해서든 한족 민족주의로부터 중국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중화 제국주의의 부상은 우선 주변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양안전쟁 등 재앙적인 전쟁을 낳을 수 있다. 전쟁으로 총알받이가 되고 전쟁경비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다.

또, 민족주의를 통해 계급 체제의 모순을 감추는 것은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 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구분

중국 지배자들과 평범한 민중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27일 자행된 폭력에 대한 반감은 이해할 만하지만, 중국인들을 싸잡아 매도한다면 중국 민중 속에서 한족 민족주의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것은 평범한 중국 노동계급과 농민, 학생 들을 중국 지배자들의 품으로 더 몰아주며 중화 제국주의와 공산당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CNN 한 진행자가 인종차별적 언사 ─ “지난 50년간 그들[중국인]은 늘 폭력배이자 흉악범들이었다” ─ 를 사용해 중국인들을 비난하자 중국 지배자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대중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부추기고 티베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더 쉽게 막을 수 있었다.

진중권 씨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도 티베트인들을 공격한 중국 유학생 시위대를 비판한 것은 옳지만 중국인 일반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 것은 부적절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름대로 배워 바깥 물 먹은 유학생들의 국제 감각이 저 정도이니, 나라 밖을 벗어나 보지 못한 인민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게다.”

사실, 지금 중국 정부는 상당히 자신감 있게 민족주의 정서를 고무하고 있고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부추긴 시위가 지속될 때 부수적으로 가져올 효과를 잘 알고 있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1989년 톈안먼 항쟁으로 폭발한 중국 학생·노동계급 들의 전투성이 1986년 반일 민족주의 시위로 시작됐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1999년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에 항의하는 민족주의 시위 참가자들 중 일부가 갑자기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2005년 반일 민족주의 시위의 분위기를 타고 일본계 회사 유니덴에 고용된 중국인 노동계급들이 독립 노조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려 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래서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사설에서 “인민은 애국주의를 조용하고 이성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고 말했다.

중국의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혹은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교육’ 때문에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능력이 없다는 인종차별주의적이거나 냉전주의적인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국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의식이 투쟁 속에서 발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바로 그런 과정 속에서 중국 지배자들의 민족주의 몰이에 도전하고 티베트 민중과 연대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외부 충격이 아니라 중국 민중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진영은 중국 지배자와 노동계급·피억압 민중을 구분하는 것 ─ 즉, 계급 ─ 을 통해서 그것을 고무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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