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언론에 비친 모습과 배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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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언론들이 말하듯이 이라크 상황이 드디어 고비를 넘긴 것인가? 조지 부시는 그렇게 말한다. 언뜻 보기에 이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인다. 바그다드와 불안정한 이라크 서부의 안바르 주를 포함해 이라크 대다수 지역들의 치안권이 이라크군에게 이양됐다.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시아파 저항세력은 해체 중이고, 상당수의 수니파 저항세력은 이른바 ‘[이라크]각성 위원회’에 속해 미군 점령군에 협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군에 대한 공격 건수가 2006년 월평균 2천 건에서 현재 10분의 1수준으로 준 사실을 지적한다. 또, 민간인 희생자 수가 가장 컸던 2007년 초 월 3천5백 명 수준에서 큰 폭으로 준 것도 지적한다.
미국 정부는 파병군 수를 줄이기 시작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이라크 점령 안정책인 부시의 ‘증파’가 성공을 거뒀다고 설레발을 떨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라크는 새로운 불안정을 겪기 시작하고 있다.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더러운 거래들을 시도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 거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아파 주도 이라크 정부와 맺으려는 협정이다. ‘주둔군 지위 협정(SOFA)’으로 알려진 이 협정에는 미군이 이라크 정부의 허락 없이 이라크 내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고, 심지어 이라크 영토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협정을 맺기 위한 과정은 계속 정체되고 있다. 또, 이라크 석유 자원, 선거 개혁, 사담 후세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사면권 논의들이 모두 벽에 부딪쳤다.
한편, 쿠르드족 자치 정부는 점령 초기 얻은 자치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헌법 개정안의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게 문제는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라크 정부와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덫에 걸린 것이다. 이라크 총리 누리 알말리키는 미국 정부가 수니파와 쿠르드족에게 약속한 것들을 자신이 꼭 지킬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말리키의 정당성은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대표하는 시아파 종교 기구와 이란 정부와의 협력에 기초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사드르가 저항활동을 그만두도록 종용했다.
시스타니와 이란은 그 대가로 말리키가 SOFA에서 미국 정부의 핵심 요구를 제거하고, 미군 전투병의 철군 날짜를 확실히 못 박도록 하고, 미국 정부가 이라크를 이란 공격 기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박
당장은 말리키의 도박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올 4월에 이라크 정부는 바스라와 바그다드 사르드 시(市)에서 사드르의 마흐디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며칠 동안의 전투 후에 공격에 참가한 이라크군은 와해돼 수수방관하거나 도망갔다. 그러나 마흐디군이 대단한 전승을 거두기 일보 직전에 사드르는 이란의 지시에 따라 항쟁을 중단했다. 사드르 지지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현재 사드르는 이란에 사실상 감금된 상태다. 원래 사드르는 중요한 종교 시험을 준비할 겸 이란 쿠옴에 성지순례를 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 많은 이들은 이란 정부가 사드르를 가택감금했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이란 정부의 압력 때문에 사드르는 최근 무장 지지자들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사드르는 이라크에서 모순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마흐디군의 저항이 전국을 뒤흔든 항쟁의 일부였을 때, 이라크인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와 영향력이 크게 증대했다.
그러나 시아파 지구가 수니파 저항세력의 종파 공격을 받았을 때 사드르는 지지자들에 대한 통제를 잃기 시작했다.
일부는 종파 간 공격 행동에 참가해 수니파들을 자기 지역에서 내쫓았다. 다른 이들은 말리키 정부에 투항했고, 나머지는 2004년 4월 폭발한 전국 항쟁 때 형성된 단결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
사드르는 노력 끝에 지지자들 중 종파 간 충돌을 원한 부류들을 무장해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후였다. 다수의 수니파 저항 조직들은 이제 사드르를 적이자 이란의 하수인이라고 불렀다. 광범한 저항활동에서 배제되자, 사드르의 전사들은 미군화력에 홀로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란 정부의 죄수가 된 이상, 사드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사드르는 최근에 마흐디군에게 이름을 바꿀 것과 지지자들이 당분간 무기를 숨기고 군사 대결을 회피할 것을 명했다.
말리키와 미국은 이란 덕분에 시아파 저항세력과 충돌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전쟁 위협을 강화한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수니파
미국 정부에게 두 번째 문제는 수니파 저항 조직과 맺은 계약이다.
2007년 여름 수니파 지역의 대다수 수니파 저항세력들은 [미군에 대한] 군사 공격을 중단했다. 점령군과 협력해 알카에다와 가까운 저항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알카에다 저항세력은 비록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지만 이른바 ‘이단’인 시아파 무슬림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라크에서 알카에다 부류는 저항세력에서 언제나 소수였다. 그러나 미군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은 그들을 유력한 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알카에다는 수니파 저항세력들이 미군을 몰아내고 만든 해방구를 시아파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자행하기 위한 근거지로 활용했다. 결국 재앙이 발생했다. 종파 간 살육전 속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 단결의 모범을 보여 줬던 공동체들이 이제 서로 적대하기 시작했다. 알카에다의 전술과 목표는 시아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수니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곧 수니파 저항세력 중 일부는 알카에다에 맞서기 시작했다.
이길 수 없는 대(對)게릴라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던 미국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수니파 저항세력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요르단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수니파 지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대가로 알카에다에 대한 군사 작전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비밀회담 소식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가자 알카에다는 다른 수니파 저항 조직들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했다. 알카에다는 모든 수니파 조직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중요한 수니파 저항 지도자들을 암살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각성 위원회’를 만들어 옛 수니파 저항세력들을 새로운 동맹으로 만들었다. 이런 옛 저항세력들 중 10만 명이 월 3백 달러[약 35만 원]을 받고 미군 대신 알카에다를 공격하는 활동에 참가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알카에다는 고립됐고 근거지들에서 도망쳤다. 이렇게 미국 정부는 중요한 수니파 지역들에서 평화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옛 수니파 전사들은 이라크 보안군에 편입될 거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말리키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주 미국 정부는 10월 1일부터 월 3백 달러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라크 정부는 ‘각성 위원회’를 불법 민병대로 규정하고 체포하겠다고 선포했다.
수니파 지도자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심각한 불만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안바르에서 미군의 철수를 환영하는 행사를 보이콧했고 이라크 정부와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새로운 동맹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종족 분쟁
마지막으로, 이라크 북부에서 아랍인, 투르코만, 쿠르드족 사이에 본격적 종족 분쟁이 발생할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엄청난 석유 자원이 매장된 키르쿠크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이다.
쿠르드족 정당들은 미국 침략을 도와 이라크 북부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과 동맹을 맺어 오랫동안 갈망해 온 독립을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 정부는 독자적으로 석유 탐사 계약을 맺고 법안을 제정하고 독립된 사법부, 경찰과 군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 지역 주변에는 적대 세력들이 존재한다. 북쪽으로는 미국의 중요한 동맹인 터키가 있는데,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이 터키 내 쿠르드족 소수민족들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한다.
동쪽으로는 이란이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을 이용해 이란 내 쿠르드족들의 반란을 고무할까봐 두려워한다. 남쪽으로는 북부 석유 매장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려는 이라크 중앙정부가 있다.
쿠르드족 정당들은 미국 정부가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아파와 수니파 집단에 대한 타협책의 일부로 미국 정부는 쿠르드족 자치 움직임을 견제하려 한다.
키르쿠르를 둘러싼 투쟁이 본격화하면 그동안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던 이라크 북부에서도 치열한 종족 간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 지난달 쿠르드족 시위대가 투르코만 정당의 사무실을 습격했을 때 10여 명의 투르코만인들이 죽었다. 그 뒤 쿠르드족 시위대를 노린 자살폭탄 공격이 이어졌다. 또, 이라크 정부는 미국 정부가 약속한 키르쿠크의 지위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듯 겉보기에 화려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 성공 뒤에는 심각하고 위험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미국은 통일된 전국 반점령 운동의 탄생을 막기 위해 종파와 종족들을 서로 이간질하고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정당들과 불안정한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런 갈등들은 미국 정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는 여전히 미국의 수렁이며 점령은 영구적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