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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참상의 체제

조너선 닐은 경영진의 협박, 일터의 스트레스, 제3세계의 전쟁, 군국주의의 잔혹한 힘,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닐은 활동가ㆍ작가이며, 유럽사회포럼(ESF) 조직위원이다.

이 지구상에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생활은 좌절과 분노로 점철돼 있다. 뿐만 아니라, 기아·질병·전쟁의 참상도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 참상의 근원은 우리에게 따분한 고통을 안겨 주는 일상적 체제다.

30년 전에 나는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첫째 요인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자란 애국자였다. 그러나 반전 운동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잔혹한 전쟁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의 조국은 3백만 명을 죽였다. 다수가 어린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산 채로 불태워졌다. 나는 베트남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 그 날 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홀로 강을 따라 걸으면서 밤새 울다가 끝내 애국심을 내던져 버렸다.

기아

둘째 요인은 기아였다. 나는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았다. 북부 지방에 가뭄이 들자 사람들은 풀을 뜯어다가 죽을 끓여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외국에서 원조 식량이 도착했다. 곡식이 가득 담긴 자루였다. 지방 정부 관리들은 마을마다 곡식 더미를 쌓아 두고 군인을 시켜 그것을 지키게 했다. 그들은 이 곡식을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시세보다 열 배 더 비싼 값을 받고 팔았다. 프랑스인 친구 한 명이 농민들에게 왜 그 곡식을 탈취해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국왕이 비행기를 보내 우리에게 폭탄을 퍼부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다. 그 비행기는 소련이 제공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미국의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았다. 세계 체제가 그 사람들을 굶겨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상은 계속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민중이 국왕을 축출했지만, 그 뒤 25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내전 때문에 1백만 명이 죽었고 6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이라크에서는 8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으로 1백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폭격으로 이라크 군인 10∼20만 명이 죽었다. 미군 불도저는 이라크 군인들을 생매장했다. 폭격은 상하수도 시설에 집중됐다. 12년에 걸친 경제 제재로 지금까지 죽은 이라크 어린이가 50만 명이 넘는다. 이것은 내가 만든 통계 수치가 아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공중보건 대학원에 재직하고 있는 의사가 내게 알려 준 수치다. 그녀는 해마다 이라크를 방문해 신생아의 체중을 쟀는데, 그들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이 모든 죽음이 석유 때문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아프리카의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벌어진 전쟁의 발단은 반식민주의 투쟁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을 고수하던 남아공 정부가 이 두 나라를 침공했다. 심지어 넬슨 만델라가 석방된 뒤에도 다이아몬드와 석유 때문에 전쟁은 계속됐다.

콩고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광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2∼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현대의 전화 산업과 비디오 게임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 콜탄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다.

캄보디아·레바논·팔레스타인·수단·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소말리아·인도네시아·유고슬라비아·쿠르디스탄·차드·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체첸 등지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이 모든 전쟁을 열강이 일으킨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어지간한 강국들은 저마다 자기 몫을 차지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력에 바탕을 둔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선진국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들은 대개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체제뿐이다.

나는 런던에 산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둘러 보라.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흐리멍텅한 단조로움이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직장의 공허함과 지루함에서 이 모든 것이 비롯한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이제나 저제나 시계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출근부에 도장 찍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육체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또 집에 돌아와 휴식한답시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맥주나 들이키며 쓰레기 같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당신은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직장에서 당신을 옥죄어 왔다. 이러한 통제 강화는 작업반장의 힘이 강화되고 해고 위협이 유행하는 데서 드러난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눈물을 삼켰는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남편과 아내가 매일 밤 서로 가슴에 못질을 해댔는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배감에 사로잡힌 채 직장에서 쫓겨났는가? 이 체제는 직장에서 우리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어야만 우리를 통제할 수 있다.

못질

1960년대 말에 인도의 서부 벵골 주에서 공산당 정부가 선거로 들어섰다. 그들은 노동 쟁의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장에 경찰을 투입하는 일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했다. 벵골 노동자들은 ‘게로’라는 것을 창안해 냈다. 노동자들은 경영자에게 요구할 것이 있으면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경영자를 에워쌌다. 그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 주기 전까지는 용변을 보러 갈 수도 없었다. 자신 없는 경영자는 한 시간을 버텼고, 질긴 경영자는 18시간을 버텼다.

결국 중앙 정부가 주 정부의 권한을 일시 정지하고 경찰과 군대를 공장에 투입했다. 잠시 동안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진 작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목격했다.

사장들에게 그런 공포가 필요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들은 이윤을 더 많이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언제나 다른 기업들과 경쟁한다. 어떤 기업이든 성장하지 못하면 죽는다.

지금의 이 사회 체제는 일상적인 공포와 무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무력은 전쟁과 세계 경찰에 의존하는 세계 체제의 핵심에도 자리잡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기업이 석유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획됐다. 그러나 부시와 미국의 지배계급은 엄청나게 많은 말을 내뱉었고, 이제는 전쟁의 결과가 훨씬 더 많은 일을 좌우하게 돼 버렸다.

우리는 경쟁의 하수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새로운 경제 정책의 관철은 미국 군대나 미국 기업의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만약 그들이 이라크에서 승리한다면 사유화 정책이나 IMF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이 맹렬한 위세를 떨칠 것이다.

반면, 대중의 반전 운동이 이 세력을 좌절시킨다면 새로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도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요즘 영국의 경영자들은 미국의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그들이 누군가를 해고할 때 두 사람이 그와 함께 그의 책상으로 간다. 그들은 서서 기다리며 그가 책상을 정리하는 것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를 건물 밖으로 내쫓는다. 그가 떠날 때 감히 일어나 악수를 청하는 동료가 한 명도 없을 만큼 분위기는 살벌하다.

만약 우리가 이 전쟁을 중단시킨다면, 시위 대열에 합류했던 누군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둘러싸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가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텔레비전에서 줄곧 폭격기를 보아 왔다. 그때마다 나는 자식을 잃고 오열할 부모들을 상상한다.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참상은 경쟁과 공포에서 비롯한다. 이 참상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전쟁을 중단시켜야만 한다. 끝없이 계속되는 전쟁을 막기 위해 우리는 체제를 바꾸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