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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보수화 논쟁:
20대는 분노할 줄 모르고 정치에 무관심한가

2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명제가 됐다. 급기야 20대가 이명박을 찍어서, 20대가 제 살길만 찾고 침묵해서 살기 힘들다는 20대 원죄론까지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획 연재 “우향우 20대?”의 필자들 중 일부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분노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최근 〈조선일보〉도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의 조사를 근거로 ‘서울대생 보수화 경향 뚜렷’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여전히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답한 학생들이 40퍼센트를 넘는다. 또 한나라당이 지지율 1위이긴 했지만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한나라당의 지지율(20퍼센트)보다 9퍼센트가 더 많았다.

최근 CBS 여론조사에서도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20대는 40퍼센트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비율의 갑절이었다.

공식 정치에 대한 무관심

이런 수치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2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보수화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20대가 무관심한 것은 정치 자체라기보다는 공식 정치다.

2007년 대선 때 20대의 42퍼센트만이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에 참여한 20대중 42.5퍼센트가 이명박에 투표한 것이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보수화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돼 왔다.

그러나 한윤형 씨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동네북’ 돼버린 20대를 위한 변명”에서 지적했듯 “2007년 대선에서 20대들의 표심의 진정한 경향성은 ‘한나라당 지지’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몰락’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진보’로 여겨졌던 노무현 정권에 대한 20대의 지지가 정권 5년 동안 환멸과 냉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대다수 20대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대학생들은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에 시달렸고 청년 노동자들은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에 참여한 일부 20대들은 버스 전용차로를 만들고 청계천을 복원시킨 ‘불도저’ 이명박이 경제라도 살릴지 모른다고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20대는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거부했다. 그래서 20대 투표율은 역대 최저였다.

공식 정치에 대한 냉소와 환멸이 어찌나 컸던지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가 2008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대학생은 1.6퍼센트였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지난 총선을 앞두고 “20대의 저조한 투표 행태는 … 사회 적응 과정의 미성숙 상태를 말해준다”며 “투표를 통해 민주 역량 길러라”고 충고한 것은 정말이지 위선적이다. 따라서 20대가 이명박을 당선시킨 주범이라는 식의 책임 전가는 말도 안 된다.

5월 3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대학생들 대학생들은 반MB 운동의 주역 중 하나였다.

촛불 항쟁 이후의 20대

물론 20대를 단일한 정치적 의식을 가진 집단이나 계급으로 볼 수는 없다. 같은 20대라 할지라도 처지와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20대 중에서도 이제껏 사회 변화의 주역으로 기대돼 온 학생들로 좁혀서 본다면 이들은 분명 반MB운동에서 일정 구실을 해 왔다.

이명박 집권 직후인 지난해 3월 28일, 대학생 1만 명이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로 집결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대학생 단일 집회로는 최대 규모였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나몰라라 하던 이명박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경찰의 체포 전담반 투입 협박에도 참가 학생들은 “천만 원 등록금은 이명박 네가 내라” 하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감 있게 거리 행진을 했다. 이 집회는 이명박 정권에 맞선 대중 행동을 고무했다.

이후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이 계기가 되면서 공기업 민영화, 언론 장악, 대운하 등 이명박의 핵심 정책에 반대하며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흔히들 10대가 집회의 주역이었고 20대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대학생, 청년,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노동자 등 20~30대도 촛불의 주역중 하나였다. 다만 학생회 등의 깃발 아래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20대의 상당수는 개인주의적, 반권위주의적 특성 때문에 학생회 등의 깃발이 아니라 쏘울 드레서, 쌍코, MLB PARK 같은 느슨한 인터넷 동호회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집회에 참가했다.

촛불항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낸 20대의 상당수는 촛불항쟁 경험을 통해 공기업·의료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화물연대 파업 지지 등 노동자 운동과의 접점을 만들기도 했다.

2008년 촛불 항쟁은 20대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그러나 4·19, 1987년 6월 항쟁 등 한국 사회의 변곡점에서 학생 운동이 주요한 구실을 해왔던 것에 비춰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특히 촛불이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촛불항쟁에 참가했던 20대의 상당수가 일시적인 사기저하를 겪었던 듯하다. 게다가 이명박은 촛불을 끄기 위해 광폭한 탄압을 시작했다.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연행되거나 소환장을 받아야 했다. 행동하는 20대에 가해지는 탄압의 공포는 이들의 행동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한국을 강타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이 휘청거리는 속에 곤두박질하는 한국 경제는 20대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체제나 정권에 대한 반감에 비해 행동은 그에 못 미치는 간극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화하는 학생들의 의식은 대체로 급진 개혁주의 정도에 와 있는 듯하다.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20대는 차기 대선주자로 반기문과 유시민을 꼽았다. 진중권·박노자·우석훈 같은 자유주의적이며 개혁주의적인 급진 지식인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20대는 자유주의 정권 하에서 성장했고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일당 독재 체제(북한, 중국, 소련 등)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래서 오늘날 20대는 대체로 개인주의와 자율주의, 반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최근 대학 교육에서 경쟁이 강화된 것도 이런 성향을 더욱 부추겼다.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 역시 이직률도 높고 고용 자체가 불안정해 집단적 투쟁 경험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열의가 높은 급진적 20대라 할지라도 단체나 조직으로 단결해 싸우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20퍼센트 정도에 머물고 있다. 촛불항쟁에 참가한 20대의 다수가 일체의 ‘지도’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좌파의 과제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20대를 ‘왜 행동하지 않느냐’고 무조건 다그치거나 반대로 체념하기보다는 20대와 대화하고 이들을 설득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윤형 씨는 “발상을 전환해 20대에게 다가가야” 한다며 “말을 잃은 20대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고, … 그들의 말을 들어가면서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처럼 좌파는 20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증대된 이유[는] … 한나라당은 집값 올려주고 세금 깎아주겠다는 걸 알겠는데 소위 진보·개혁 세력들은 나에게 뭘 해주겠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며 “이명박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민주화’를 소리높여 외치는 거대담론을 벗어나 구체적인 언어를 획득”해야만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가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인턴제, 대졸 초임 삭감 등으로 경제 위기의 고통을 20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려 한다. 따라서 좌파는 20대에게 이 끔찍한 현실을 바꾸는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20대가 지지하는 급진적 지식인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면서 이들의 주장과 자신들의 급진적 대안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들의 자율주의와 반권위주의적 성향을 이해하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은 기층에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운동을 건설하려 노력한 결과 촛불 이후 많은 대학의 학생회 선거에서 전진했고, 자본주의연구회도 많은 진보 지식인들의 초청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청중을 늘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것은 20대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나아가 좌파는 민주적이면서도 집중적인 조직과 운동이 20대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경험을 통해 입증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좌파는 20대가 가진 정치적 관심과 분노를 한데 모으려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미디어법 날치기와 공안 탄압, 쌍용차 폭력 진압 등에서 드러난 이명박 정권의 비민주성과 야만성에 분노했다. 아마 이들 중 가장 적극적인 일부는 직접 행동에 나서고자 할 것이다. 사상은 다르더라도 이런 20대와 함께 행동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대중적 투쟁이 분출하기 오래 전부터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학생과 지식인 들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좌파가 20대의 현재 상태와 의식을 이해하며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진지한 소수를 이런 네트워크 구축에 동참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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