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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변혁과 민주주의 ①:
한국 사회 민주화와 이명박 정부의 성격

작년 촛불항쟁 이후, 촛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명박 정권은 집시법,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 등 반민주적 탄압을 일삼고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권 퇴진론, 반독재 국민전선론, 선거 심판론 등 민주주의 후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 진보진영 내에 주요 화두가 됐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정치 체제, 특히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논의도 활발하다.

이에 대해 주로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현 체제를 독재나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것이다.

독재나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견해는 현 정권 하에서 강화한 반민주적 탄압에 초점을 맞춘다. 이 견해는 한편에선 정권 퇴진론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민주당을 포함한 광범한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견해는 반민주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기 때문에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투쟁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독재론

우선 반민주적 탄압을 일삼는 이명박 정권을 독재라 비난하는 대중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수많은 대중이 끔찍한 군사독재의 기억을 생생하게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독재 정권의 후신 정당이 집권당이 되어 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니 독재를 연상시킬 만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민주적 권리를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이다. 이런 성격은 전임 정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점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형태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은 공히 자본가들에 의한 독재라고 규정해왔다.

그러나 본질상 자본가 계급에 의한 독재라고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다양한 국가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로 그리고 권위주의는 다시 군사 독재, 파시즘, 국가자본주의 등 여러 국가 형태로 나뉜다. 국가 형태의 문제로 보자면, 현 정권을 1980년대식 독재나 심지어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이명박 정권이 분명히 군사 독재 후신 정당이 창출한 정권이긴 하지만, 그들이 현재 이 나라를 군사 독재 상황으로까지 후퇴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군사 독재 시절에는 김대중과 같은 부르주아 야당 정치인들조차 선거 출마를 제약받고 엄청난 박해를 받아야 했지만, 현 정권이 그런 수준으로 부르주아 야당을 탄압하는 상황은 아니다. 또한 오늘날 자주적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의 결성 자체가 봉쇄된 상황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의 정치 체제는 권위주의 요소가 남아 있지만, 준(準)자유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민주화 동력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역대의 통치자들이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추구한 데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이 노동 계급의 조직을 어쩔 수 없이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한 타협의 산물이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은 노동 계급 대중 조직”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의 민주화 동력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도 지식인들도 아니라, 노동 계급의 투쟁과 조직(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었다.

2009년 6월 13일 대한문에서 열린 “국민을 때리지 마라” 집회 ⓒ이미진

애초 한국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국가 자신이 급속한 자본 축적을 일사분란하게 지도하기 위해 매우 억압적인 정치 체제로 출발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거치는 동안 권위주의적 군사독재와 결합된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이 진행됐다.

이러한 급속한 축적 과정은 한편에서 재벌과 같은 대자본가 집단을 형성했다. 그러나 자본 축적은 다른 한편에서 엄청난 규모의 노동자 계급을 창출했다. 이들은 생활 조건을 둘러싼 투쟁과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에 도전했다.

특히 1987년은 전환점이었다. 1987년 학생을 선두로 하고 노동자들이 동참한 6월 항쟁은 권위주의적 군사독재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노동 계급이 곧장 7월부터 9월까지 작업장에서 권리 개선을 요구하며 연쇄적으로 투쟁에 나서면서 지배 계급이 감히 반동을 시도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 과정을 통해 형성된 노동 계급의 조직(노동조합, 노동자 정당)들과 그들의 투쟁이 바로 그 이후의 민주화 과정의 동력이었다. 결정적으로 한국의 자본가들은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맞서 연인원 3백만 명이 참가한 민주노총의 대중파업과 IMF 공황 직후 노동자들의 전투적 저항을 겪으며,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고 노동자 정당 건설을 용인하게 됐다.

모순되고 불안정한 민주화 과정

1987년 이후 노동자 투쟁과 조직화라는 동력 덕분에 한국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해왔지만, 이행 과정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정치학자들과 일부 좌파 정치학자들은 그동안 1987년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고 1997년 선거에서 자유주의 야당 출신 정치인이 집권한 것을 계기로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우파 정권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제 안정화 단계로 진입해야 마땅할텐데, 오히려 고작 10년도 안 돼 역행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많은 학자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후퇴에 주목했다. 그래서 최장집 교수나 손호철 교수 등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중심적 과제가 돼야 한다거나,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구도가 핵심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물론 노동 계급의 입장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과제는 매우 중요하다. 급속한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해 노동 계급의 희생이 필요했고 그들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정치적 민주주의도 제약해야 했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과제는 긴밀히 연관돼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연쇄적으로 벌어진 것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해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과제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상 탄압법인 국가보안법이 계속 존재했고, 정치적 시민적 권리가 수시로 제약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우익들에 의한 대통령 탄핵 사건을 경험한 바 있고,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반민주적 탄압이 강화된 상황도 접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한국의 정치 체제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못 미치는 매우 모순되고 불안정한 준(準)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불과하고, 민주화 과정 자체가 안정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치 체제가 갖는 이와 같은 불안정성은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에서 준(準)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모순 때문이다.

한편에선 국가가 강력히 지도한 급속한 산업화 결과 사적 대자본의 경제력이 증대하고 다양화하면서, 국가와 자본 간 긴장이 첨예해지고 자본 분파 간 갈등도 빈번해졌다. 다른 한편에선 엄청난 착취와 억압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강력한 노동운동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지배 계급 내의 갈등과 자본과 노동 간 갈등 모두가 빈번하고, 갈등에 대처하기 위해 포섭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억압 기구를 동원한 탄압과 공작 등 여러 무리수들이 따르곤 한다. 이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이명박 정부가 용산 참사, 쌍용차 진압 등 노동자 민중 운동에 대해 살인적 폭력을 가하는가 하면,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처럼 지배 계급 내의 갈등 문제에도 무리수를 둔 것은 이런 점을 잘 드러낸다.

이명박 정부 하의 민주주의 투쟁

따라서 민주화 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1980년대 군사독재 수준으로 억압을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수준의 반동은 노동자 투쟁이 심각한 패배를 겪고, 노동 계급의 대중조직들이 심각하게 약화된 상황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성과를 후퇴시키려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노동 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독재 파쇼론을 비판하는 상당수 개혁주의 지식인들이 이명박 정부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민주주의 제도 내에 존재”(김윤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한다며, 반정부 투쟁을 자제하고 선거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화의 동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올해 초 울산 재보선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당선한 것,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가 당선한 성과조차 지난 해 촛불 항쟁의 여파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오히려 정권의 성격에 대한 분석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민주노동당·민주노총·한대련 등이 반민주적 정권인 이명박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하려는 시도야말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특히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조직 노동자들이 민주주의 투쟁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7년 이후의 변화가 보여 주듯이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투쟁만이 민주화의 진정한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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