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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
의미 있는 물음, 빗나간 답변들

[편집자 주] 민경우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이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NL의 재구성'이 자주파 진영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에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글은 민경우 기획위원의 'NL 재구성' 시도가 지닌 의미를 분석하고,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한다. 〈레프트21〉 독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거라 판단해 《마르크스21》 편집부의 양해를 구해 싣는다.

지난 7월 민경우 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이하 호칭 생략)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진보의 재구성”이지만, 사실은 NL 노선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민경우는 1년 반 넘게 NL 진영에 여러 근본적 물음을 던져 왔는데, 그것을 정리해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그의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작정하고 NL 진영에 문제 제기하는 것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NL의 중요한 리더 가운데 한 명이었다. 특히 그는 통일운동이 분열의 위기와 탄압으로 얼룩졌던 1990년대 중후반 결연하게 범민련을 지킨 인물이었다(1995년부터 2005년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그는 통일연대 사무처장을 하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렀고, 출소 후에도 NL 운동의 중심으로 돌아와 얼마 전까지 한국진보연대 정책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NL노선은 20년의 시간을 거치며 현실과 많은 괴리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진보의 재구성》, 시대의 창, 2009, 5쪽. 이하 쪽수만 표기)고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시급히 NL노선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6쪽) 또, 그는 “마치 성경의 문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 같은 풍토가 NL 진영에 만연해 있다는 신랄한 비판도 했다. “토론하고 학습하는 풍토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경제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더니 엉뚱하게 북한공부를 해야 한다는 반론이 돌아오는가 하면 사회과학 이론의 초보적인 개념조차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29쪽)

NL 운동 안에서 잔뼈가 굵어 NL 사상의 핵심과 그 실천적 함의, 그리고 ‘사업 작풍’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답게, 민경우는 NL 노선의 뿌리를 겨냥한 의미심장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인가?’, ‘농촌 인구가 급감한 현실에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이 여전히 의미 있는가?’, ‘현대와 삼성은 매판자본인가?’, ‘지사적 풍모와 금욕적 생활 태도가 요즘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가?’,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가?’ 등등.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는 현실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남한 자본주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미국 지위의 상대적 하락, 신자유주의, 두 개혁 정부 경험, 촛불 같은 새로운 운동의 등장 등. 그래서 NL 진영에 포진한 젊은 활동가 상당수는 언젠가 한 번쯤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의문의 편린을 민경우의 책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NL 진영 누군가의 비판이라면 인상을 찌푸리며 제쳐버렸을 수 있지만, NL 운동에 헌신적으로 매진해 온 중견 활동가의 진지한 성찰을 보며 미뤄뒀던 고민을 꺼내들 의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민경우는 의미 있는 물음에 걸맞는 훌륭한 답변을 내놓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의 문제 제기가 선구적인 게 아닌 만큼 답변이 더욱 중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답변은 개혁주의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흔한데, 때로는 NL 노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충하는 데서 멈추고, 때로는 온건 PD의 변형판과 비슷하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비록 민경우는 이 책이 “NL노선을 견지하며 운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함”이라면서(6쪽) 비NL 진영의 개입에 선을 긋는 듯하지만, 그가 다루는 논의는 NL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가 이 책에서 NL을 대개 “주류”라고 표현하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운동 내 다수파인 NL의 노선은 전체 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민경우가 던진 의미 있는 물음에 더 나은 마르크스주의적 답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정치에서 경제로?

민경우는 NL 진영의 무능으로 경제 문제(특히 금융과 환율)에 대한 무지를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지나칠 정도로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31쪽) 그래서 IMF에 대한 대응, 론스타 등 외국계 금융자본의 몰염치한 사기 행각에 대한 대응,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민경우의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NL 일각에서는 ‘그러니 당신처럼 정책이론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구소를 만들어 기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독이듯이 또는 논쟁 끝 퇴로라도 열어주듯이 말한다. 그러나 민경우가 경제 문제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는 NL 노선에 외환·금융 지식을 보태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경제 현실을 보여 줌으로써 NL 노선이 더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필자가 경제공부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서민생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경제공부를 통해 현재 상황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운동이론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노동자 1000만, 농민 800만일 때의 노농동맹과 노동자 1600만, 농민 180만, 도시 소상인 600만일 때의 노농동맹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기본 통계조차 경시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 경제공부였고 그런 면에서 보면 필자의 시도는 분명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긴 하다.”(31~32쪽)

경제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가 전략 변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건 그가 경제의 중요성을 통일과 맞바꾸고 있는 데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그의 말마따나 “30대의 10년을 통일운동을 하고 보낸” 사람이, 그것도 “통일의 가능성이 훨씬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통일 대신 경제를 삶의 중심 화두로 올려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꽤 오래 전부터 신자유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까지도 통일을 한국 사회 변화의 고리라고 여겨 왔다. 그가 “통일운동에 전념했던 것은 통일정세의 격변이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21쪽)

이런 그의 믿음에 결정적 균열을 낸 것은 2007년 대선이었다. 2005~07년에 그는 소위 “통일정세”의 성숙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중국-러시아의 “반미연대” 강화,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대미 공세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핵실험 강행 등을 보면서 말이다. “이런 정도라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18쪽) 그러나 그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간명한 메시지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가 대선 정국을 시종일관 압도했다.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그가 보기에, “현실경제의 악화가 통일정세를 압박하여 10년간의 남북관계의 진전을 무위로 돌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21쪽) 이로부터 그가 내린 결론이 바로 경제였다.

그런데 민경우의 경제 중시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그가 NL 이론을 어떻게 재구성하려 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이 점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려 한다. 첫째, 그는 운동 주류는 경제가 약점인 반면 이명박은 경제가 강점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이 이명박에게는 득이 되고 진보진영에게는 어려움을 초래한다고도 보는 듯하다. 이것은 대선 평가와 운동 진영의 과제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도, 민주노동당이 빈약한 성과만을 얻은 이유도 모두 경제로 설명했다. 물론 경제가 중요하다. 더구나 경제 악화를 배경으로 치러지는 대선에서 경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런 조건에서 그 수혜자는 야당이기 쉽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동안 대중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류 진보진영은 이 정권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경우가 이명박의 “경제” 또는 “중도 실용”에 대한 지지도를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을 당선시킨 경제가 머지않아 이명박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점과 경제 위기가 진보운동에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민경우는 서민들이 이명박식 경제 논리에 동의해서, 또는 신자유주의 경제 거품의 떡고물을 기대하고 그를 지지한 것처럼 암시한다. 그러나 이명박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노무현 정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까지 정확히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명박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이명박이 좋아서 그를 찍은 게 아니라 노무현 개혁에 실망한 쓰디쓴 심정으로 ‘차라리’ 이명박에게 표를 줬다. 이명박의 등장은 사람들의 보수화와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 확대를 뜻하는 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점을 보지 못한 적잖은 사람들처럼 민경우도 대선 결과를 암울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대선 한 달 뒤쯤 쓴 글에서 “[임기를] 전·후반기로 구분한다면 전기는 이명박 차기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1 이명박의 “중도 실용”이 사람들에게 먹힌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그는 “이명박 정권 전반기에는 최대한 정면 승부를 피하”자고 제안한다. “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경제가 악화되는 2005년부터 이미 서민 대중은 도심의 대규모 거리시위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전망은 겨우 석달 만에 현실에서 정면 반박됐다. “거리시위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던 그 서민 대중이 촛불을 들고 “강한 돌”에 다가서 “중도 실용”의 실체를 밝혀내고 이명박을 추락시켰다. 민경우는 그의 책에서 지난해 촛불 운동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뒤떨어진 운동권”을 비판하는 만큼 자신의 판단 오류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게 공정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모종의 품성론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뒤떨어진 운동권”의 핵심 문제를 상당히 공유하고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첫째, 대중이 우경화했다고 판단해 그런 투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둘째, 자발성주의를 추수하고, 이를 변명 삼아 정작 필요할 때 행동을 회피한 것. 셋째, 이명박 퇴진 방침 천명을 회피한 것. 이것은 NL과 민경우의 공통점이지, 차이점이 아니었다.

사실,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대선 이후 정세 전망을 민경우보다 덜 암울하게 절충해서 내놓았지만, 행동은 민경우의 정세 전망에 기초한 듯이 했다. 나중에 정대연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도 인정했듯이, “우리가 가장 먼저 반성할 일은 대중들은 이명박 정권에 맞서서 투쟁하려고 계획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진보진영은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일 테니까 수세적으로 정세를 바라본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 진보진영이 효과적인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2 또, 그는 “‘퇴진 투쟁이 맞네 안 맞네’ 우왕좌왕할 때 진보연대가 중심을 잡고 나[갔다]면 우리가 뒷받침하면서 나갈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조심스러워했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광범위하게 있다”고도 했다.3

그런데 민경우는 지난 1년간 경제 악화와 민주주의 악화, 노동자 투쟁 등을 겪고도 “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는 ‘전술’을 여전히 되풀이하는 듯하다. 그가 2008년 미디어법 저지 국회 앞 농성을 반대한 것이나 2009년 6월 민주노동당 당대회의 이명박 퇴진 입장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모두 이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한국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평범한 대중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그의 판단이 깔려 있다. 그는 “현재 상당수의 국민대중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가 보여주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에 깊이 포섭되어 있[다]”며4 어느 글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거대한 철벽”이라고 표현했다.5 이런 분석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둘째, 그는 NL이 정치·군사에 절대적 중요성을 둬 왔다고 비판하며, ‘정치·군사’에서 ‘경제’로 180도 돌아섰다. 정치와 경제의 결합이 아니라 정치 대신 경제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논쟁의 맥락상 강조점 이동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사실 그의 글 곳곳에서 그 이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2004년 4·15총선의 여세를 몰아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4대 악법을 폐지하라는 단식농성이 국회 앞을 수놓던 바로 그 시각, 생계를 위협받게 된 전국의 음식점 업주들의 솥단지 시위가 여의도에서 벌어졌다.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이 주도한 4대 악법 개폐 투쟁에 대체로 냉담했다. 여전히 냉전의 잔재에 묶여 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상황의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사실, 이런 얘기는 PD 진영으로부터 신물나게 들어 왔다. ‘NL은 민생을 도외시하고 민주주의나 통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식의 주장 말이다. 그러나 대개 NL이 노동자·민중의 생활 조건을 둘러싼 투쟁에 적극 참가한다는 점만 봐도 이것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NL의 문제는 민주주의나 통일 문제에서 자유주의자들과 동맹하고, 통일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2004년 하반기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사례만 보더라도 NL의 문제는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후퇴를 거듭하는 열린우리당을 추수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PD 진영은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민생’이라는 식으로 둘을 대립시켰다. 반전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때는 ‘반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고 대립시키는 세력도 있었다. 이런 입장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데, 왜냐하면 민주주의나 분단 문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민경우가 이런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은 그가 PD류의 “87년 체제의 종말”을 되뇌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1980년대 중후반을 계기로 민주화 국면이 마무리되고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는 양상[이다.]”(55쪽)

민경우는 마치 경제 위기 때는 노동자·민중이 정치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듯이 암시한다. 그러나 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지난해 촛불 운동에 대거 참가한 것만 봐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또, 노무현 정부가 2004년 하반기와 2005년에 지지자들을 대거 잃은 것도 경제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 개혁에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의사를 거슬러 이라크에 전투부대를 파병한 것, 국회 다수석을 줬는데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여러 진정한 개혁들을 추진하지 못한 것,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 반노동자 정책을 추진한 것 등이 결합한 결과였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연관을 이해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경제 위기는 정치 체제의 불안정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국가 간 갈등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지 못하는, 정치 없는 경제 중시론은 경제 없는 정치·군사 중시론만큼이나 취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민경우는 생산보다는 금융과 외환에 분석상의 중요성을 두며 경제 위기의 원인도 여기서 찾는다. 그의 책 전체를 통틀어 이윤율 저하에 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 점도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현실 부정과 혁명 부정 사이에서

민경우는 “식민지반半자본주의론”이 더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NL 노선의 근간을 겨냥한 것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NL의 “기본틀”로, 1988년에 등장했다. 1986년까지 NL은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을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강점에 의한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이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았다.6 따라서 운동의 주요 목표는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 된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한국사회에 대한 구체적으로 실증적인 분석의 결과라기보다는 반제 문제에서 보다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된 북한의 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7 1988년에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 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수정’된 것도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식민지반자본주의론도 “식민지성”을 한국사회 성격의 핵심으로 봤다는 점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민경우의 지적대로 “봉건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식민지이므로 자본주의 발전도 정상적일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민족모순 때문에 기형성, 파행성을 가진 불구화된 자본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95쪽) 그래서 남한 사회는 “지주-소작 관계가 온존하고”, “매판성과 전근대성”을 띤다.

요컨대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한국 내부의 독자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며(58쪽), 발전을 이루려면 “정치적 자주권”을 쟁취하는 식민지 민족해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으로부터 “학생운동을 중시한 점,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 정치군사적인 차원의 자주통일운동 중시, 학습과 대중운동 중시, 지사적인 풍모와 금욕적인 생활 태도의 강조” 등이 나왔다. 민경우는 NL 진영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 집착한 결과 이처럼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스러운 실천[을] 거듭”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96쪽)

“식민지”, “매판”, “기형성”, “지주-소작 관계”라니 이 저널의 독자들은 무슨 신소설을 읽는 기분이겠지만, 놀랍게도 NL은 1980년대 중반 이래 지금껏 이 분석의 골간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놀라운 현실 부정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1980년대 중반 당시에도 맞지 않는 얘기였지만, 도심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세계 다섯 번째로 이지스 구축함을 자체 제작 보유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현실과는 더더욱 동떨어진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민경우의 문제 제기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중반이라면 모르겠는데 1990년대가 되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야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얘기하다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980년대 중반 “한국경제 파국론”이 유행했지만 파국은커녕 3저호황을 누렸고, 제국주의적 간섭 때문에 한국에서 독자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한국 대자본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대자본은 2009년 현재 세계 굴지의 대자본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LCD, 조선, 핸드폰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의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59쪽)

그런데 민경우의 뒤늦은 자본주의 발전 인정은 자본주의 발전 지지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삼성에 대해 그가 보이는 태도는 경탄 자체인 듯하다. 1990년대 초 이건희의 신경영전략 이후 삼성은 “초고속 질주를 거듭”했고, 그것은 “기술”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2007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백대 기업에서 삼성이 46위를 차지한 것, 삼성전자의 연구 인력이 2006년 현재 전체 직원의 38퍼센트에 이르는 것,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기술과 브랜드에서 발생하는 것 등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100~103쪽)(물론 다른 곳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이 잘 나가는 동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구조적으로 몰락했다며 후자를 편들며 서술한다.) 또, 그는 최근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터진 조건에서 한국의 유력 대자본이 흔들리는 조짐은 없다”고 과대평가한다.(104쪽)

민경우는 이런 기업들을 “매판자본”[1]이라고 부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옳게 지적한다. 국가관료도 마찬가지다. “이전 시기 매판세력은 제국주의 본국에 의해 육성되고 양성된 세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독자적인 메커니즘과 정치적 역량을 구비한 정치세력으로 발전했다.”(163쪽)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허수아비 세력이 아니”다.(105쪽) 그는 자신을 포함한 NL이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항력 아래에 있고 미국의 손아귀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봤고, 그러다 보니 “시쳇말로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44쪽) 그는 다른 글에서도 “한국의 관료집단과 글로벌 대기업을 ‘우습게 보는’ 자민통 진영 일부의 시각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8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니, 참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과 국가관료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보고 미국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결정적인 것으로 여긴 오류를 돌아보며 이제는 한국 대기업과 국가를 당면한 주요 투쟁 상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라면 이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데 민경우는 경제 파국론의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하려다 이제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세계적 경제 위기 한복판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과 포섭력, 위기 관리 능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튄다. 또, 민경우의 주장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상황에서는 강제력을 사용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발전(이른바 “헌정질서에 대한 국민들의 존중감”)에 대한 고려가 맞물려 있다.

그래서 그는 “전민항쟁” 방식이 아니라 “선거”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민항쟁”은 그저 대중운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민족해방 또는 기존 통치 제도 전복을 위해 전체 인민이 들고일어나서 벌이는 전쟁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민경우는 강제력 없이 선거를 통해(물론 그는 선거와 대중운동의 결합도 말한다) 사회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직선제[는] … 민중의 새로운 무기로 발전하고 있다.”(164쪽) 민경우와 함께 새세대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이승환은 “선거는 이제 불가역적인 권력 획득의 방식”이라고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 “폭력적이지만 약한 국가라는 상황에서는 민족해방전선 혹은 민족민주전선이 무장투쟁 등 전민중적 항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게 가능”했지만, 남한 국가는 그렇게 “취약하지 않다.” “능력있는 관료 엘리트[가] … 한국 자본주의 축적을 선도했고 … 노동계급에 대한 … 일정한 ‘포섭’ 또한 존재했[고,] … 미약하나마 복지제도 등 ‘동의의 장치’들도 설치되었다.”9 민경우와 이승환이 올해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의 이명박 정권 퇴진 입장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단지 전술 문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전략과 원칙 문제를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NL 진영에서 1980~90년대 유행했던 생각, 즉 제3세계에서나 혁명이 가능하지 선진 자본주의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격이다. 한국을 제3세계 국가 목록에서 빼내 선진 산업국 목록으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상당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대해 취한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이 전제정 치하에서나 가능한 예외적 사건이고, 헌법이 확고하게 유지되는 서유럽의 사회 질서 속에서는 그와 같은 혁명적 투쟁이 무의미하다고 봤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서유럽 공산당들도 서유럽 국가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체제이므로 폭력 사용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경우가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민간 대자본과 보수 엘리트”를 선거로 청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선거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계급 간의 투쟁에서 일정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자신의 전장을 결코 선거 공간에 한정하지 않는다. 언론도 활용하고, 선출된 정부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때 투자 기피나 자본 해외 유출로 대응하고, 종국에는 1973년 칠레에서처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민간 대자본과 보수 엘리트”를 진정으로 청산하려면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요하다. 선진 자본주의의 경험이 거듭 보여 준 것은 혁명의 불필요함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를 통해서는 사회를 진정으로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흥공업국 발전의 모순

식민지나 옛 식민지 나라들의 산업 발전을 인정한다고 해서 당연히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그런 발전의 모순된 성격을 인식했다. 식민지 지배의 첫 번째 효과는 경제적 진보가 아니라 유수의 문명 파괴 같은 약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옛 사회관계를 해체하고 자본주의적 착취의 여지도 만들었다.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대립할 때 자본주의화 과정을 방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과정을 아예 멈출 수는 없었다. 마르크스는 영국 식민주의가 인도에 가한 충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영국은 인도에서 이중의 사명을 갖고 있다. 하나는 파괴의 사명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의 사명이다.”10 레닌도 혁명 전 러시아의 경험을 토대로 외국 자본이 산업 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식민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자본주의 발전을 환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목했던 것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팔 노동계급이 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스탈린주의와 종속이론은 식민지나 옛 식민지 나라들에서 산업 발전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나라들에서 자본주의 질서는 산업 발전은커녕 정체와 기술 낙후, 후진성 등을 강요하므로,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소련이 걸었던 길(자립적 민족 경제)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어도 여전히 가난한 현실을 지적한 덕분에 사람들에게 매력을 줬지만, 자본주의가 지구상의 어떤 새로운 지역도 결코 발전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틀렸다. “제3세계”로 불리는 지역에서 신흥공업국들NICs이 등장한 것은 이런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물론 발전은 일부 나라들에 국한됐고, 매우 모순되고 억압적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남한이었다.

남한은 1960년대 초부터 국가가 강력히 개입해 자본주의를 육성하다시피 했다. 국가자본주의는 신흥공업국 발전의 일반적 특징이었다. 국가는 규모도 작고 취약한 민간 자본가 계급을 대신해 축적 과정을 지도했고(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한 생산에 비교적 초기부터 집중했다), 가혹한 탄압으로 국민 대중의 생활수준을 낮춰 축적을 위한 물자와 재원을 일부 확보했다. 물론 해외 차입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 결과 남한은 자본 축적의 독자적 기반을 구축했고, 지배계급은 “단지 서방 제국주의의 ‘매판’이나 ‘종속국’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를 지니며, 세계 열강에 맞서, 또 같은 처지의 다른 나라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능력도 갖추”게 됐다.11 산업 발전이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바로 노동계급의 놀라운 성장이었다. 노동계급은 그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 경제정책에 따라 수천 심지어 수만 명 규모의 대공장에 집중됐다.

물론 이 발전 과정은 모순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남한은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덕분에 선진국의 최신 기술과 경제 편제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후진성의 특권”(이는 발전경제 학자 거셴크론의 용어이고, 트로츠키는 이를 “불균등 결합 발전”이라고 불렀다)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민족적·민주적 문제들이 엄존하고 있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민간 자본의 힘이 커지면서 국가와 자본 사이의 모순은 정치 불안 요인을 제공했고, 세계 시장으로의 통합 증대에 따라 빚어지는 문제들도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발전의 성과는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지 못했다.

이런 모순들, 특히 민중의 끔찍한 생활수준과 독재의 가혹한 탄압 같은 문제 때문에 종종 사람들은 산업 발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형식상 독립은 했지만 식민지 치하와 다를 바 없다고, 여전히 (신)식민지라고 하는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서 확산됐다. 말하자면, 이와 같은 민중의 고통은 지배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외세에 의한 강제 분단과 서울 한복판에 주둔하는 미군의 존재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웅변해 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자본주의가 이미 상당히 발전해 있던 1980년대에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 운동 내 주류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런 정서를 이해해 줄 수는 있지만(일부 사람들은 NL을 광신도쯤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NL이 발전의 이런 모순을 일면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산업 발전이라는 현실 변화를 부정한 대가는 적지 않았다. 마치 ‘운동권’은 현실을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인식됐고(뉴라이트는 이 무능의 틈을 파고 들었다), 변혁 전략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본주의 발전의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변혁의 성격과 전략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끌어올려 계급 폐지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며, 그것을 가능케 할 사회 세력인 노동계급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 모순 때문에 발전이 가로막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NL 진영은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노동계급도 그런 과제를 제기할 만큼 규모와 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다고 봤다.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변혁 운동의 성격을 민족해방 인민(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으로 규정했는데, 그 행위주체는 “지주, 예속자본가, 민족반역자, 반동관료배를 제외한 모든 계급 계층”이었다. “모든 계급 계층”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도시소자산계급, 민족자본가” 등이 포함되는데, 지주-소작 관계 온존 등과 같은 분석에 따라 농민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됐고 노동계급 중심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12

이 점에서 민경우가 농민에게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NL의 “노농동맹” 전략을 비판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NL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지만 민족적 모순으로 인해 봉건적 모순이 온존하여 농민이 도시 노동자로 흡수되지 않고 이들이 필연적으로 농촌에 광범위한 농민 집단으로 남게 된다.”(120~121쪽) NL이 농민을 중시하는 근거다. 그런데 민경우가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농촌에 농민 집단이 광범하게 남기는커녕 해마다 농민 인구는 급격히 줄어 왔다. 1961년 1천4백만 명이던 농가 인구는 1990년대 7백만 명으로, 2008년 현재 320만 명으로 줄었다. 농업 종사 인구(농민 인구)는 더 적어 현재 180만 명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에서 농가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61년에 56.1퍼센트에서13 2008년에는 6.8퍼센트로 줄었다. 1953년 농어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3퍼센트였는데, 지금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NL 진영은 요 몇 년 새 노동자 운동의 활력이 일시 떨어지자 농민 투쟁에 더 의존한 면마저 있었다.

그러나 “농민을 주력군으로 생각하는” NL 경향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 민경우는 정작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가장 중요해진 세력인 노동계급으로 눈을 돌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농민들이 도시의 노동자로 이동하여 한국의 계급 관계가 노자 관계로 되었다고 보는 것은 한국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전통 좌파”[비NL 좌파를 가리킨다 — 김하영]를 비판한다.(153쪽) 그가 새롭게 주목하는 대상은 “도시의 영세 자영업자”다.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고유의 작동원리라고 할 수 있는 종속성과 파행성에 따라 농촌을 떠난 대규모 탈농 인구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시의 영세 자영업자로 남았다.”(153쪽) 그의 생각 변화는 “어제의 농민이 오늘의 자영업[자]”라는 말로 잘 요약된다.(121쪽)

이는 노농동맹에 대한 민경우의 문제의식이 규모 문제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농민은 단지 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계급적 성격상 주력군이 될 수 없다. 농민은 내부적으로 분화해 있어서, 역사가 보여 줬듯이 결코 독자적인 정치적 구실을 할 수 없다. 농민이 사회 변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때는 다른 계급에 의해 정치적으로 지도될 때다. 농민뿐 아니라 다른 피억압 대중을 지도해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세력은 바로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착취 체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덕분에 자본주의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노동계급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 소수일 때조차 집중돼 있다면 그 사회의 결정적 생산력을 손아귀에 쥔다. 노동계급 비중이 큰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이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민중의 거리시위도 위력적이지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심장인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노동자 파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2008년 촛불항쟁에서 진정한 노동자 파업의 불발이 아쉬웠던 이유다.

노동계급이냐 새로운 파워냐

그런데 민경우가 노동계급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는 주장들을 보면, 그는 산업화를 깨닫자마자 탈산업화론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 그는 현재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분절화”에 따라 “포섭”되거나 “배제”된다고 한다. 지식정보화와 서비스산업의 팽창으로 노동자들의 구성이 다양해진 점도 강조한다. 노동자들이 더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동질성이 없고 따라서 하나의 계급으로서 싸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세력이 아니라고 시사하는 듯하다.

그는 NL 이론의 식민지적 착취 개념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병영적 통제에 시달리는 균질화된 제조업 노동자”이지만, 실제로는 대자본이 경제적 여력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포섭”(상대편을 자기편으로 감싸 끌어들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시절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동자의 이미지는 바로 이것[저임금, 장시간 병영적 통제에 시달리는 노동자]”이었는데, “최근 대기업 노동자들을 만나 보면 상당히 다른 이미지라서 놀라곤 한다”며(62쪽) 199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철 지난 고백을 털어놓는다.[2] 그는 노동귀족 운운하는 것은 “대자본의 모략 공세”일 뿐이라면서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권화했고 그것을 지키는 데 급급해 사회 변화를 위해 싸울 능력을 잃은 것처럼 회의론에 빠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새로운 파워의 진원지”라고 부르는 집단에서 조직 노동계급을 빼버린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계급보다 더 가난하거나 더 천대받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이윤 체제를 공격하고 자신이 생산한 부를 자기 통제 아래로 되찾을 집단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또,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조건이 나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본에 “포섭”돼 그들과 한편이 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고공행진을 지속한 대기업들의 엄청난 이윤을 감안하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임금은 높지만 사실은 더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으로 좀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해 온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심화된 양극화는 노동자들 사이보다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가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하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은 이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또, 민경우는 지식정보화와 서비스산업이 팽창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 노동자와는 다른 이미지(?)의 노동자들이 늘어났으며 노동자들의 처지 또한 다양해졌다”고 한다.(130쪽) 서비스 노동자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이미지이기는커녕 여기에는 전통적 육체 노동자들(청소 노동자, 항만 노동자, 철도 노동자, 운수 노동자 등)이 다수 포함되고, 간호사나 교사의 일도 육체 노동자들과 점점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민경우는 마치 서비스 노동자들은 제조업 노동자들과 달리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싸울 수 있는 세력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그는 “노동조합이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부합하는 조직노선”이라며(182~183쪽), 지식정보화 시대에 맞는 “온라인”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언론·보건·교사·연구직·공무원 부문에서 노조들이 생겨나고 투쟁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런 피상적인 주장을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다. “현실을 바로 보자”는 그의 호소는 여기에도 적용돼야 한다.

그는 “전체 노동자 1600만 명 중 제조업 노동자는 400만 명 수준”밖에 안 되는데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라고 불평한다. 교육·언론·보건·공무원·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그럼에도 제조업의 여전한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제조업 고용의 비중은 1995년에 23.5퍼센트에서 2005년에 19.3퍼센트로 떨어졌다.14 그러나 이것이 제조업의 중요성이 줄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IMF와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00~2005년 평균 27.5퍼센트로 매우 높은 편이다(독일 22.8퍼센트, 일본 21.0퍼센트, 미국 15.8퍼센트).15 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이 비중은 1985년 24.8퍼센트에서 2002년 33.4퍼센트로 더 높아졌다. 비중뿐 아니라 성장 기여도도 중요한데, 실질GDP 성장에 대한 제조업 기여율은 2000년 이후 서비스업을 앞질렀다. 서비스 산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1980~1999년에 서비스업의 기여율은 48.8퍼센트, 제조업의 기여율은 27.1퍼센트였는데, 2000~2006년에는 각각 39.3퍼센트, 42.9퍼센트로 역전됐다.16 제조업 분야 대기업 노동자들이 제대로 파업을 한다면 그것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괴력이 얼마나 클지 예상할 수 있다.

제조업 고용의 비중이 떨어진 것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제조업의 사양화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은 자동화와 기계화 등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데, 이는 대개 노동력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유시민은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오늘날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10억 원어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종업원은 네 명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17 생산성이 높아진 제조업이 신규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지 않게 되자, 학업을 마치고 새로 노동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이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점점 더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가 되기 쉬워졌다. 이처럼 제조업 고용의 상대적 감소 현상은 산업 생산성이 증대한 결과이지, 기존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지키려고 자본의 “배제 전략”을 수용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지도부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의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문제이고, 우리는 조직 노동자들이 이런 천대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조직 노동자의 강점(생산 지점에서 발휘할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사용하는 것이어야지, 그것을 “시대착오”적이라며 버리고 “온라인 공간”으로 흩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또,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노동계급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시하는 관점도 문제다. 물론 민경우가 영세 자영업자에 주목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영세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 가까운” ‘비임금 근로자’, 즉 반半프롤레타리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농촌을 떠난 대규모 탈농 인구[가] 우여곡절 끝에 도시의 영세 자영업자로 남았다”고(153쪽) 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통계청의 각 연도별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직접 계산을 해 보니 1965년부터 2000년까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인구는 1천3백50만 명이 넘는다.18 이 가운데 압도 다수는 도시의 임금노동자가 됐다. 탈농은 했으되 임금노동자로 통합되지 못한 경우는 영세 자영업자 등이 돼 도시의 빈민층을 이루게 되는데, 한국은 다른 신흥공업국보다 이 계층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자영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는 비임금근로자는 1965년에 전체 취업자의 67.8퍼센트나 됐지만 2003년에 32.2퍼센트로 줄었다.19 비록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현재 노동계급(1천6백만 명) 규모가 도시 자영업자(6백만 명)보다 훨씬 더 크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더욱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둘째, 자영업자 같은 계층은 다양한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노동자 운동이 강력하고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때 노동계급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동적 정치를 추구하는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노동계급의 고유한 중요성을 망각한 채 노동계급을 자영업자 등과 함께 민중의 일부일 뿐인 것으로 취급(이는 NL 민중주의의 유산을 민경우가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편, 중소기업 자본가는 비록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횡포를 당할지라도 하위 착취자로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처지이므로 비임금 노동자인 영세 자영업자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이 정한 중소기업 상한기준은 상시근로자 수 1천 명 미만과 자산 총액 5천억 원 미만이다. 민경우는 “중소기업까지 포괄해야 비로소 한국의 경제 현실이 제대로 설명되고, 그에 근거해야만 연쇄적으로 민족, 국민경제, 다양한 계급계층의 존재와 연대연합의 중요성이 도출[된다]”고 강조한다.(157쪽) 그러나 계급 협조주의로는 이들을 견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계급이 그쪽으로 견인되는 사태만을 초래할 것이다. 1930년대 중엽에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착취는 위계적으로 조직돼 있다. 착취자-하위 착취자-하위 착취자의 하위 착취자 등등의 식으로. 이런 위계 체계를 통해 착취자들이 국민의 대다수를 예속시킬 수 있다. 국민이 하나의 계급적 핵심을 중심으로 재구성될 수 있으려면 이념적으로 재구성돼야 하는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민중’ 또는 ‘국민’ 또는 ‘민족’으로 용해되지 않을 때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민경우는 “새로운 파워의 진원지”로 수도권 청년들, 고학력 386세대, 자영업자, 빈민층 등을 강조한다. 사실, 그가 이들을 “새로운 파워”로 올려놓은 근거는 희박하다. 청년들은 “정규직으로 채워진 사회 질서에서 최말단에 위치”한다거나,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거나, 역사의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식이다.(175쪽) 그들이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없다. 또, 그는 고학력 386세대가 “결정적인 시기에 균형을 무너뜨릴 중요한 세력”이라고 주장한다.(176쪽) 그러나 한나라당에도, 민주당에도, 민주노동당에도 있는 386세대가 어떻게 단일한 세력으로서 특정 방향으로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민경우는 2002년 촛불, 2004년 탄핵반대, 2008년 촛불항쟁 등 새롭게 떠오른 운동들의 특징들로부터 모종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그가 이 경험들에서 특히 청년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데는 나도 공감한다. 다함께도 이런 운동에서 청년들의 구실이 (그리고 민경우와는 달리 학생도)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그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분절화된 노동계급 대신에 청년과 386세대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 하먼이 날카롭게 지적하듯이 그들은 주체가 될 수 없다. “이질적인 사회 집단들의 운동을 사회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주체’로 여기는 것은 오류다. 그런 운동의 기반이 생산에 뿌리내린 집단적 조직에 집중돼 있기 않기 때문에 그 운동은 지배계급 권력의 핵심인 생산 통제에 도전할 수 없다. 그 운동이 특정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를 아래로부터 다시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지는 못한다.”20

민경우의 지적대로 노동운동이 이런 투쟁 속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이런 운동들의 결함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2008년 촛불항쟁이 더 전진하지 못한 이유였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에 차지 않는 노동운동을 걷어차 버리는 게 아니라 이런 운동들과 노동자 운동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애쓰는 것이다.

외환·금융 중시론의 문제점

민경우는 NL의 종속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식민지’라는 구도는 더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종속의 기본 구조가 정치·군사적 종속에서 경제적 종속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진 부국과 개발도상국·후진국의 관계는 군사적 강점과 정치적 내정간섭에 의한 강압적인 수탈에서 외환, 금융의 개방화에 기초한 금융적·경제적 수탈의 형태로 이동한다.”(161쪽) 둘째, 한미관계라는 프리즘으로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NL의 제국주의 개념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을 포착한 것이긴 하다. NL은 제국주의를 서방 열강의 제3세계 착취·억압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즉, 제국주의를 식민주의로 환원한다.) 그 결과 그들은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에만 거의 배타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런 협소한 개념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식민지 독립에 뒤따른 일정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었고, 특히 제국주의 열강 간의 갈등을 완전히 무시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것은 다함께가 누누이 지적해 왔듯이 제국주의에 대한 매우 협소한 이해다. 레닌과 부하린의 제국주의 개념은 이와 달랐는데, 그것은 자본주의가 최고 단계로 발전한 탓에 개별 기업들 간의 경제적 경쟁이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 경쟁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NL의 기존 종속 개념을 비판하며 민경우가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금융과 외환의 중요성이다. 그는 NL의 종속성 개념이 “주로 군사적인 부분에 착목”한다는(71쪽) 문제점이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부분에서도 “직접투자를 종속성의 최후 징표처럼 간주”한다는(70쪽) 문제점이 있다고 말한다. “‘제국주의 원청-종속국 하청’과 같은 분업구조가 IMF 이후 ‘금융 종속-제조업 성장’ 사이의 관계”로 변했는데도 NL은 “노선 그 자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이후 절대적으로 중요해진 금융 부문을 간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투기성 단기자본이 문제가 된 판국에 그에 비해 우호적 평가마저 받고 있는 직접투자 문제에만 집착하니 금융 위기 문제를 이해할 턱이 없었고 론스타 같은 먹튀 문제에 대한 대응도 미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NL 진영의 다수는 IMF 이후 경제 ‘종속’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한미FTA에 거의 다걸기를 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다만, NL 다수파와 민경우의 차이는 그런 문제를 보는 관점과 대안에서 오히려 잘 드러난다. NL은 이런 문제를 “외국 독점자본의 침탈과 민족자립경제 수립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본다.(70쪽) 이에 대해, 민경우는 NL이 한미FTA도 “미국의 경제 침략의 최종 귀결점”으로 봤으므로 “‘그러면 당신들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간명한 반론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주류[NL을 뜻함 — 김하영] 버전에 따르면 민족자립경제일 텐데 이는 대도시 생활인을 설득하기에는 동문서답에 가까운 주장이었다.”(84쪽) 실제로,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만 봐도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된 경제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반면, 경제 ‘종속’에 대한 민경우의 대안은 금융시장 통제를 통해 “외환과 금융의 자율성”을 확보하고(169쪽),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84쪽) 다시 말해, 미국 달러 체제에서 벗어나 범지역적 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민경우의 대안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첫째, 그는 금융과 외환의 안정화 정책을 통해 한국 경제를 위기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 금융을 통제하고 경제를 내수 위주로 전환해 국민경제를 강화함으로써 말이다.

물론 한국 경제의 등락이 세계 경제에 연동돼 있(었)다는 그의 통찰은 맞다. 이런 특징은 수출 시장을 찾아 세계 경제에 편입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방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에 통합되다 보니 한국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과 동요의 영향을 강력히 받게 됐다. 이런 ‘종속성’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공에 내포된 모순이다.

그러나 민경우는 이런 문제를 환율 체제와 금융 정책에서 비롯한 것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보고, 따라서 환율과 금융만 통제하면 세계 경제의 부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본다. 예를 들어, 그는 만약 동아시아 “각국 통화가 달러에 페그되어” 있지 않았다면[3] 1997년 위기는 오지 않았거나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역플라자 합의에 따른 고달러/엔저가 수출 의존적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수출은 환율 문제뿐 아니라 세계적 반도체 과잉생산 같은 문제에 의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한국 수출품의 20퍼센트를 차지하던 반도체 가격이 무려 80퍼센트가 폭락하면서 삼성전자 같은 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떨어졌고 남한 경제는 이윤율 위기에 빠졌다. 외국 자본 대량 유출도 단지 금융 자유화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그 근저에는 한국 실물경제의 악화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외국 투자자들의 우려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또, 그는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로부터 특히 한국이 큰 영향을 받았다며 그 이유를 외환거래 자유화에 따른 해외 금융자본 유입에서 찾는다. 사실, 2008년 미국 경제 위기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도 금융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금융시장 규제완화와, 국경을 넘나들며 대규모 투기에 가담한 금융시장의 영향력 증대가 이번 위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왜 금융이 전례 없는 규모로 성장하게 됐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1970년대 초 이래 장기적 이윤율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생산에 투자하기보다 대출을 늘려 거품을 키웠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한국에 영향을 주기 전에 이미 한국 경제도 비슷한 문제, 즉 부동산 거품과 가계 대출 급증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물론 경제의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요인, 예컨대 투기성 단기자본 등을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과 외환의 안정화 정책이 오늘날 세계와 한국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더 근원적인 문제, 즉 이윤율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가 ‘외부’로부터 보호받는다고 해서 위기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민경우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미국의 지위 하락”이라는 현실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 아래 산업화”됐지만 이제는 일본 변수와 중국 변수 등도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미 양국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NL의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유일 강대국 미국’이라고 협소하게 현상론적으로 보는 NL 사상의 약점을 지적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민경우에게는 미국의 상대적 지위 하락과 다른 강대국들의 상대적 부상이 가져올 세계적 불안정을 보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그는 신자유주의를 미국 중심 경제로 인상론적으로 본다.) 그래서 그는 가라앉는 미국호에서 내려, 장차 떠오를 동아시아호로 갈아탄다면 만사 오케이일 것처럼 말한다. 사실, 그는 ‘미국만이 호령한다’는 NL의 가정으로부터 그리 멀리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통해 미국 주도 세계 경제에 한국 경제가 편입됨에 따라 겪었던 여러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1990년대 초반 유럽과 같은 탈달러 지역협력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면”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처럼 암시한다.(78쪽)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의 검증을 견디지 못했다. “탈달러 지역협력구상”인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전혀 피할 수 없었다. 또, 민경우는 “경제적 주도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으므로(84쪽) 중국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 시장에 제품을 팔아 성장해 왔고(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엄청나게 증대했지만 그 부품들이 조립돼 수출되는 종착점은 미국이다), 미국은 그 제품을 살 돈을 중국에서 빌려오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은 경우에 따라 독자 노선을 추구할 수 있겠지만 미국과의 이런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이런 사실만 봐도 아시아 공동체는 미국 경제의 동요에서 벗어날 안전지대일 수 없다. 게다가 중국 경제도 시장화에 따라 주기적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고, 노동자 착취라는 면에서도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 얘기는 그렇게 신선할 것도, 진보적일 것도 없다. 노무현도 집권 초기에 엇비슷한 구상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일본 총리 하토야마가 “미국 일극체제는 끝났다”며 “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진보진영이 미국 주도 체제에 맞서는 일본과 중국 주도 동아시아 체제를 지지하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물론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한편이 된다면 그것은 미국에게 최악의 악몽이다. 그러나 미국의 악몽이 늘 우리 운동의 길몽인 것은 아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중국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대미 의존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다. 세계의 군사력이 집중돼 있고 발화 요인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의 갈등은 군사적 참화를 부를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 전반기에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가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 기억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는 끝났는가?

민경우의 주장은 아직 체계화되지 않아서인지 중간에 논리가 툭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드는데, 그가 “다극 시대”라고 부르는 오늘의 세계 질서를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 그는 1960년대를 끝으로 “군사적 강점에 기초한 난폭한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160쪽) 그 뒤 “간접적인 방식”의 “정치 간섭”이 있었으나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석권하면서 “금융적·경제적 수탈의 형태로 이동”했다고 한다.(161쪽) 그는 마치 이제 정치·군사적 제국주의는 사라졌다는 듯이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무시”한 것이어서 실패가 예정된 침략이라고 단언한다.(138쪽) 또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주권 국가가 아니라 테러 집단에 대한 대응이었다고도 주장한다. 주권 국가라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겠지만, 알카에다나 탈레반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이들을 분쇄하는 것말고는 별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테러와의 전쟁”에 대해서는 뒤에서 언급하겠다.) 어쨌든 그가 하려는 말은 인류 역사가 주권 국가에 대한 군사 침략을 용인하지 않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국민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근대적 이념이 보편화하면서 군사적 강점에 의한 직접 지배가 불가능해졌[다.]”(161쪽) 참으로 결정론적인 진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는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겪고 있는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 열강이 식민지에서 퇴각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식민지 민중의 영웅적인 해방 투쟁과 함께 전후戰後 세계 자본주의 자체의 구조 변화가 작용한 결과였다. 전에는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열강끼리 영토 분할 전쟁을 일으킬 만큼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더는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자본 투자가 주로 선진국들 내부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저항을 감수하고라도 식민지를 유지할 사활적 이유는 사라졌다.

1970년대부터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자본의 흐름이 크게 확장됐다. 자본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면 자연히 자기 국가의 권력을 무기 삼아 다른 국가와 협상하려 하게 된다. 세계화의 결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경 밖 더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쳐야 하게 됐다. 이것은 순전한 경제 논리가 아니고 정치·군사적 논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은 국가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에서 경제력의 상대적 하락을 겪자 나머지 국가보다 훨씬 우세한 군사력을 사용해 경제력 쇠퇴를 만회하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이든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국가와 유착한 자본가들에게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고 IMF·WTO·세계은행 같은 경제 기구들도 지배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탈냉전기인 최근 20년 동안 우리가 수많은 전쟁을 목격한 이유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점령은 테러 집단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경쟁 국가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테러’는 빌미일 뿐이다.

민경우가 ‘제국주의-식민지’라는 구도가 맞지 않는다며 남한이 식민지라는 것을 부정한 것까지는 옳았는데, 더 나아가 제국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혼란에 빠진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식민지는 특정 시기 제국주의의 특징일 뿐 식민지가 사라졌다 해서 제국주의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전쟁 사이의 연관을 보기보다 불비례하게 금융만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냉전 시기 “공포의 균형”이 깨져 1991~2007년에 미국 중심의 일극 시대가 펼쳐지다가 2007년경 국제적으로 대미 억지력이 다시 부활했다고 낙관하는 듯하다. 아마도 이것이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미국이 2~3년 전보다 수세에 몰린 처지이긴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미국은 흔들리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모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경제 위기와 여러 우연적 요소들과 맞물리면서 군사적 긴장을 증폭할 수 있다. 민경우가 “대미 억제력”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와 중국은 이러한 불안정과 긴장의 한 축이지 그것을 해소하거나 다소 억제하는 세력은 아니다.

일국적 관점 비판의 빗나간 결론

민경우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일국적 관점으로는 세상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NL 동지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원래 NL은 남북관계를 무시한 채 남한의 변혁을 생각하는 “반국半國”적 관점을 비판하며 한반도 차원에서 생각하는 “일국一國적” 관점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동안 국제주의자들인 다함께가 NL에게 줄곧 해 왔던 얘기다.

그러나 민경우의 일국적 관점 비판은 다함께와 달리 국제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제관계론 수준에 그치고 결국 민족과 국가 중시론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북미대결을 보는 그의 관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NL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 간 정치 역관계, 중동과 같은 제3세계의 동향에 대해 둔감하다”고 비판한다. “북미협상에서 중러[중국과 러시아]나 중동의 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걸까?”(85쪽) 그는 이런 인식의 결여로 NL이 두 가지 오류를 저질렀다고 꼬집는다. 첫째, “북미 공방에서 북이 상당한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을 북의 협상력으로만 여겨 “정세 해설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지고 정세를 터무니없이 낙관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21 둘째, “미국이 중동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 위협을 과장했다(87쪽).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다함께도 2000년대 초중반 내내 비슷한 지적을 하며, 한국 반전 운동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의 일부가 돼 미국의 프로젝트를 좌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장차 한반도로 전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민경우의 결론은 정반대로 나아갔다. 그는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몽상적”이라고 비판한다. “19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등에서 벌어진 반신자유주의 운동, 2003년 2월 유럽에서 진행된 반전운동 따위를 중심으로 현실을 판단하고 구성하려는 발상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세를 규정하고 결정짓는 실체를 무시하고 시민사회, 개인, 사회운동을 과대평가하는 몽상적인 견해이다. 특히 식자연하는 인텔리 중에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22

민경우에게 “정세를 규정하고 결정짓는 실체”는 바로 국가다. 그는 2003년 봄 위력적인 반전 운동을 통해 오히려 입증된 것은 “그러한 노력이 국가와 국가로 구획된 세계질서 속에서 얼마나 허망한가”였다고 주장한다.(138~139쪽) 그리고 “미국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반전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때가] 아니라 … 이라크 민중의 끊임없는 저항이 지속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물론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중요했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략을 좌절시킨 데서 국제 반전 운동의 구실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국내, 즉 제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오히려 더 결정적이었다. 국제 반전 운동은 전쟁의 부당성을 폭로했고, 세계 곳곳에서 각국 지배자들의 전쟁 지원을 좌절시켰고, 아랍 민중에게 자신감을 줬으며, 결국 부시가 이라크 전략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이라크 민중의 저항과 국제 반전 운동의 관계는 모루와 망치 같은 관계였다. 그러나 민경우는 국가가 중요하다고 말할 뿐,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그 국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엘리트주의적 관점). 또, 그는 오늘날 세계가 국민국가로 나뉘어 있다는 점만 보지, 단위 국가경제들이 긴밀히 연결돼 있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국경 너머까지 파장을 일으키는 조건이다.

그가 이라크 전쟁과 반전 운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때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그 교훈을 북미관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가 이끌어낸 교훈은 “민족과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실체와 그것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의 중요성이다. 요컨대 “한국의 민간운동”이 아니라 북한 핵무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소련 핵무기 개발의 정치적 파장 중 하나가 소련의 국경수비대 구실을 하던 각국 공산당 운동의 중요성을 크게 줄인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점에 관한 한 그는 기존 NL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물론 그는 여기에 러시아·중국의 “대미 억제력”과 중동 변수를 보태겠지만, 그의 관점에서는 우리 운동이 이런 변수들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그저 “실체”들의 게임을 지켜보고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편들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그의 일국적 관점 비판은 국제 노동계급의 연대가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 주목하는 위로부터의 관점에 철저히 서 있다.

민경우가 일국적 관점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일국적 대안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그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전에 ‘남과 북은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는 온전한 민족주의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반쪽의 민족주의인 남한 애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분단이 장기화하면서 남북 사이의 이질감이 심화했고, 남한에서 보수 엘리트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있었던 점을 그 배경으로 설명한다. “남은 월드컵, 촛불시위 등을 거치며 북과는 다른 차원의 집단적 일체성을 획득하고 있다.”23 그리고 NL도 이런 시대 변화에 맞게, 즉 남측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그는 “통일은 제한적 의미”만 있다며(169쪽) 남한 자체의 변화를 우선시한다. 사실, 북한이 일국사회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여겨온 그가 남한이 독자적으로 모종의 변혁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소련의 일국사회주의가 다른 나라 공산당들에 사회애국주의 경향을 야기하게 되는 원리를 트로츠키는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도대체 사회주의가 한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다면 권력 장악 이후뿐 아니라 그 전에도 그 이론이 옳다고 믿을 수 있게 된다. 후진적인 러시아의 국경 안에서도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면 선진국인 독일에서 일국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주 당연할 것이다. 내일은 독일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이 이론을 제안할 것이다. … 모레는 프랑스 공산당 차례일 것이다. 그리하여 코민테른은 사회애국주의 노선을 따라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24

그런데 민경우가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운동을 애국주의의 근거로 드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 사람들이 “헌정의 진정한 수호를 참가자 모두를 하나로 엮는 정체성으로 확인”했다고 하지만, 이는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처럼 비친다. 그는 바로 이 “헌정질서에 대한 존중감”을 들먹이며 이명박 퇴진 운동에 반대했지만, 2008년 촛불시위의 참가자들은 이명박을 퇴진시키고 싶어했다. 그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고 노래한 것은 민주주의가 법전 안에만 있는 현 주소를 꼬집은 것이다. “촛불시위 이후 애국심이 커졌다”는 10대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도 억지스럽다.25 아마도 그런 답변은 ‘이명박 정권이 나라를 망치고 있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거나 ‘나라 일에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듯하다. 또, 그는 “미국에 대해 전보다 비판적이 됐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인용하고 있는데,26 미국에 비판적이면 다 민족주의이고 애국주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다함께가 민족주의·애국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사실 말고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운동이었다는 예를 들 수 있다. 2002년 촛불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 참가한 청년들은 두드러지게 국제 연대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바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NL이 2000년대 떠오른 새로운 운동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애국주의는 민경우가 자연스런 세태 변화를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보통 진보와 중도, 보수 등으로 정치세력을 삼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정치세력을 구분하게 되면 진보는 결코 보수를 압도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집단적 일체성을 확보하며 대한민국 수준의 민족, 민족주의로 발전하게 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민족, 민족주의의 위력은 민족적 일체성을 구분하는 자를 보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국노로 단죄하기 때문이다.”27

그러나 민경우의 가정과 달리, 우리가 애국주의를 무기로 집어든다 해서 보수 우파들을 주변으로 몰아내 버리고 우리가 일약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라는 똑같은 논리로 노동계급의 투쟁도 이기적인 것으로 “단죄”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파병, 이주노동자, 고통분담 문제 등에서 우파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정치 담론의 중심에 앉히게 될 위험이 있다. 또, 민경우의 주장을 보면, 중도와의 연합 같은 구상이 애국주의 논리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시민도 “헌법 애국주의”를 주장하는데, 유시민의 애국주의는 이미 이라크 전쟁 당시 시험대에 오른 바 있다. 당시에 유시민은 국익 논리를 앞세워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고, 친노세력은 집권 내내 노동자 투쟁을 “계급 이기주의”로 몰아붙였다.

운동에 처음 발을 딛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애국주의 논리를 차용하는 것은 거의 자연스런 일일 수도 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운동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운동 참가자들이 노동자의 연대, 국제적 연대에 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돕는 구실을 해야 한다.

민경우가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소수자 문제에 거의 반감을 보이는 것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얼마나 협소하고 때로 배타적인가를 잘 드러내 준다. 그는 운동 진영 일부가 “의도적으로 이주민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을 부각시켜 궁극적으로 근대국민국가를 해체하려 한다”며 피해망상증 환자 같은 얘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운동 진영이 천대받는 자들을 방어해야 하는 것은 인종차별, 성차별, 성소수자차별 등이 노동계급을 이간질해 연대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동안 NL은 이런 문제에 무딜 뿐 아니라 때로 인종차별적이고 성소수자차별적인 북한 관료의 입장[4]을 되풀이하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가 NL 노선을 제대로 재구성하려면 이 점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북한 문제

민경우는 이 책을 통틀어 북한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NL 노선을 재구성하겠다면서 북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NL 노선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NL이 친일·친미로 얼룩진 남한 통치자들에 반대해 북한 관료에게서 민족 정통성을 발견한 이래 북한은 늘 그들의 준거점이었다. NL 운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북한을 적대하는 군사 개입이나 압박을 반대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남한 정권과 때로는 적대적 관계를, 때로는 화해협력적 관계를 맺어 왔다.

민경우가 NL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들도 대개 그 기원은 북한에 있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창한 것도, 그것을 별 설명 없이 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바꾼 것도 북한 당국이었다. 그는 NL에 “토론하는 풍토”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회주의가 노동계급 자신의 활동이 아니라 위로부터 소수의 무오류의 지도부에 의해 이뤄졌다고 보는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인 당연한 결과다. 토론과 논쟁보다는 지도부의 방침이 중요하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조직 방침에 도전하는 것은 “신심”이 없는 일로 치부된다. 이론은 한낱 북한 관료의 행동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다 보면 현실을 부정하고 도그마를 내세우는 데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 NL 진영에는 여전히 “지도자가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풍토가 있다. 민경우는 “민주집중제”가 문제인 것처럼 말하지만(183쪽), 사실 NL 노선에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집중제가 아닌 관료집중제였을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민경우는 (다른 글에서) 북한이 “사회주의”이고 “반미 국가”라며, 북한을 비판하는 진보 세력에 일침을 놓으려 한다. 또, 한술 더 떠, 송두율 교수 등이 주창한 “내재적 접근법”이 지나치게 “수세적”이라며 “진취적 접근법”을 개척해야 한다고 한다. 내재적 접근법의 문제점은 “북의 존재는 보편적인 원리상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북 자체의 고유의 논리와 원리상 쉽게 붕괴되지는 않는다는 소극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 공방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지금은 유해로운 관점”이라고 한다.28

그런데 민경우의 북한 두둔은 NL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스러운 실천[을] 거듭[해] 대중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96쪽) 그의 비판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NL의 태도보다 이런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NL은 민족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북한 당국을 등졌다는 이유만으로 탈북자들에게 한없이 냉혹하고,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추구해온 민주적 권리가 북한 인민에게는 필요 없다는 듯이 말한다. 북한 관료를 옹호하기 위해 되풀이하는 이런 군색한 논리가 “대중의 공감과 참여”를 얻기 힘들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 북한의 공개처형, 정치적·시민적 무권리, 그리고 3대째 권력 세습은 어떤 궤변으로도 이해시키기 어렵다.

물론 PD 우파 식의 북한 비판, 즉 사실상 북한을 남한보다 못한 사회로 보는 시각은 다른 여러 문제를 낳는다. 남한은 북한보다 낫기는커녕 북한과 끔찍한 군사경쟁을 벌이는 거울 이미지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남한 진보진영의 주된 적은 남한 국가와 그 동맹인 미국·일본 제국주의다. 이런 진정한 좌파적 태도가 전제가 됐을 때만 북한 비판은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민경우는 곳곳에서 심경 변화의 조짐을 드러낸다. 북한을 옹호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에 부정했던 남한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쪽으로도 움직인다. 남한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그를 후자 쪽으로 끌어당기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분단이라는 조건 때문에 그의 심경 변화는 북한 옹호와 상당 기간 공존하겠지만, 이미 시작한 변화는 자체 동력을 가지고 발전해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모순은 더 심화될 것이다.

맺으며: 대차대조표

이제,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가 과연 실천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다루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사실, 그의 작업은 완료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문제 제기의 골자는 명확히 서 있지만, 대안적 전략은 아직 수미일관하거나 구체적이지는 못한 면이 있다. 또, 어떤 쟁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계속 변하고 있고, 어떤 쟁점은 논쟁의 구도상 아직 본격적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의 대안이 우여곡절로 점철된 험난한 현실에 부딪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더 두고 봐야 하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우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재구성 방향이 대체로 개혁주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한 자본주의의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변화를 더는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는 그로부터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대중이 개혁의 여지를 갖게 된 체제에 포섭됐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인된 가치로 자리잡았으므로 오직 선거를 통해서만 정권을 잡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실천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그의 이런 주장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NL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주류”는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1891년에 베른슈타인이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수정주의 견해를 내놓았을 때 같은 당원이던 이그나츠 아우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민경우에게도 들어맞는 듯하다. “친애하는 에드[베른슈타인의 애칭 — 김하영], 사람들은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자고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말하지 않고 실천합니다. 고약한 사회주의자단속법 아래서조차 우리의 활동 전체는 사회민주주의적 개혁 정당의 활동이었습니다.”29

NL의 다수는 옛 이론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개혁주의적 실천을 해 왔다. NL의 개혁주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아래서 본격화했다. 그들은 두 정부가 북한과 화해협력 정책을 추구한다 해서 그 정부들에 협조했다. NL은 민경우보다 7~8년 전에 김대중 정부를 살려주려고 ‘정권 퇴진 운동 불가론’을 폈다. 때로 NL의 주류 이론가들은 NL의 실천 지침을 옛 이론 체계로 설명하는데, 혁명적 미사여구에 속지 않고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코 혁명적 결론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민경우가 비판하는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의 “자주적 민주주의”는 계급연합인 “반MB 범국민 단일전선”을 통해 수립되며 그 정권에 “자본가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30

NL이 옛 이론을 수정하지 않고도 개혁주의적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을 다락방에 처넣어두는 그들의 오랜 실용주의적 습관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적 비결은 그들의 인민민주주의혁명론 안에 이미 개혁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민민주주의(체제)는 요즘 말로 “자주적 민주주의”(=진보적 민주주의)라 할 수 있고, 이것은 민중전선(국민연합, NL 용어로는 계급연합 또는 통일전선 또는 단일전선)적 정권을 통해 수립된다. 그런데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은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31 그들이 보기에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노선으로도 얼마든지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가 결국 실천에서는 기존 NL 노선과 똑같게 나타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민경우가 지적하듯이, NL은 전통적 전략과 전술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고 민경우는 이를 좀 더 현대적 또는 탈현대적으로 혁신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그는 조직 노동자 운동, 노농동맹, 학생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회의가 크다. 대신에 영세 자영업자와 청년, 386세대, 학습, 온라인 공간, 사회공공성 등이 그의 키워드다. 그는 2007~2008년을 겪으면서 NL이 ‘복고’ 색채를 강화한다고 우려하는 듯하다. 이런 요소들은 민경우가 NL보다 더 온건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듯하다. 특히 그가 민주노동당의 정권 퇴진 입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쟁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민경우는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전보다 훨씬 낮췄고, 그 대신 생활상의 문제들을 강조한다. 이는 그가 신자유주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관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2005년 한 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주도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통일운동이 진행되면 통일운동은 관념에 빠져 불행한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자유주의 세력과의 협력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이 통일을 주도하면 근로대중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모호한 통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2 반면, 박경순은 “화해협력 세력[자유주의자들]과 자주통일 세력은 적대적 모순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며”며 “오히려 반통일 수구세력의 격렬한 저항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금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민주당 문제에서 민경우가 NL보다 왼쪽에 설 수도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입장은 전혀 일관되지 않다. 이 쟁점에서 그가 NL를 비판하는 최근 강조점은 진보연대강화론 우려에 있지, 민주당과의 연합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신자유주의 문제를 중요하게 보면서도 2010~2012년 범민주진보진영의 공조를 강조한다.(185쪽) 이 점은 그와 함께 ‘세새대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조성주가 신자유주의 문제가 누락된 결과 “지방선거와 대선이 진보진영과는 상관없는, 자유주의 세력(민주당 또는 친노세력)과 한나라당의 양자대결 국면으로 끝날” 것을 우려하는 것33과는 눈에 띄는 차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민경우의 NL 노선 재구성 시도는 현실의 변화에 대한 (뒤늦은) 인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NL이 이런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기는커녕 기존 분석과 노선 유지에 급급한 반면 민경우가 현실에 발딛고 서서 이런 문제들을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훌륭한 자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답변은 번번이 빗나가고 흔히 비관론으로 흐르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의 경제적·지정학적 변화와 그것이 진보세력에게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전 마르크스주의 분석에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출처 : 《마르크스21》 3호(2009년 가을호)

1 민경우, ‘소통과 논쟁2: 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 2008. 1. 22. [↑본문]

2 ‘대담: 정대연-민경우, ‘12월 대국회투쟁’을 논하다’, 〈통일뉴스〉, 2008. 11. 30. [↑본문]

3 같은 글. [↑본문]

4 민경우,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②: 글로벌 대기업의 현황과 실천적 함의’, 2009. 7. 23. [↑본문]

5 민경우, ‘이명박 정부 퇴진론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2009. 6. 27. [↑본문]

6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 소나무(2009), 433쪽. [↑본문]

7 같은 책, 432쪽. [↑본문]

8 민경우,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②: 글로벌 대기업의 현황과 실천적 함의’, 2009. 7. 23. [↑본문]

9 이승환(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①: 집권에 대한 진보진영의 사고, 바뀌어야 한다’, 2009. 7. 21. [↑본문]

10 K. Marx, “The Future of British rule in India”, New York Tribune, 1853. 7. 22. [↑본문]

11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르크스와 민족문제’, 《민족문제의 재등장》, 책갈피, 140쪽. [↑본문]

12 방인혁, 《한국의 변혁운동과 사상논쟁》, 453~454쪽. [↑본문]

13 《통계로 본 한국의 변천》, 통계청(2004), 56쪽. [↑본문]

14 통계청(2005) [↑본문]

15 〈매일경제〉, 2008년 11월 10일치. [↑본문]

16 〈연합뉴스〉, 2008년 2월 9일치. [↑본문]

17 유시민, 《대한민국 개조론》, 돌베개(2007), 101쪽. [↑본문]

18 《통계로 본 한국의 변천》, 통계청(2004), 25쪽. 표 1-16 ‘도시와 농촌간 인구이동’에 기초해 계산함. [↑본문]

19 같은 책, 73쪽. [↑본문]

20 크리스 하먼, ‘세계의 노동계급’, 《마르크스21》 2호(2009년 여름), 156~157쪽. [↑본문]

21 민경우, ‘소통과 논쟁1 — 다극 시대의 도래와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 통일뉴스, 2008. 1. 17. [↑본문]

22 같은 글. [↑본문]

23 민경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2008. 7. 7. [↑본문]

24 Trotsky, The Third International, pp. 55-56. [↑본문]

25 민경우,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2008. 7. 7. [↑본문]

26 같은 글. [↑본문]

27 같은 글. [↑본문]

28 민경우, ‘소통과 논쟁5 — 북 연구 방법론’, 통일뉴스, 2008. 2. 10. [↑본문]

29 존 몰리뉴, 《마르크스주의와 당》, 북막스(2003), 51쪽. [↑본문]

30 박경순, ‘87년 체제의 종언과 그 대안 —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2009) [↑본문]

31 이에 대한 설명은 김하영,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책벌레(2002), 305~310쪽을 참고하시오. [↑본문]

32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중의 소리〉 토론회, ‘남북관계의 진단 그리고 통일의 경로를 찾아서’ [↑본문]

33 조성주(새세대네트워크 기획위원),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③: 반MB전선의 반신자유주의전선으로의 확대가 필요하다’, 2009. 7. 28. [↑본문]

[1] 매판은 사리사욕을 위해 외국 자본과 결탁해 제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본문]

[2] ‘이상화’된 노동자에 대한 이런 종류의 실망감은 이미 199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아파트에 살고 자동차를 굴리는 게 알려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바 있다.[↑본문]

[3] 달러 페그는 자국 화폐의 교환 비율을 달러에 고정시키는 환율 제도다.[↑본문]

[4] 북한 당국은 노무현 정부의 다문화주의 주장에 대해 “남조선을 이민족화, 잡탕화, 미국화하려는 용납 못할 민족말살론”이라고 주장했다.(〈노동신문〉, 2006년 4월 27일치) 또, 〈노동신문〉은 동성애에 대해서도 “비정상적인 욕망인 세기말적 동성애가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