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반MB연합이 아니라 진보대연합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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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재보선은 진보진영 내 반MB연합 노선이 정치적 패착이었음을 보여 줬다(10·28 재보선 결과 분석은 ‘10·28 재보선 결과와 진보진영의 과제’를 보시오).
반MB연합론의 정치적 실체는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였다. 진보진영은 한나라당 당선을 막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반MB연합에 집착했다.
평소 반MB연합에 부정적이었던 진보신당도 안상 상록을에서“단일화는 피할 수 없는 것”(노회찬 대표)이라고 봤다.
민주노동당의 노세극 씨(임종인 선본 공동선대본부장)는 선거 직전에 “진보신당, 창조한국당뿐만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선거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이것을 실행에 옮겼다. 강기갑 대표는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당 소속 후보들이 사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재선거에서 민주당은 반MB연대에서 적극적인 의지도, 성실한 자세도, 민주노동당과 공생하려는 태도도 보이질 않았다.”(최규엽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소장)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민주당은 언제나 반MB연합에서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특권적 지위(〈민중의 소리〉 표현법에 따르면 “패권적 성향”)를 점하고 있었다.
선거의 경우만 해도, 민주당은 그동안 가망 있는 지역에서는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올해 4월 경기도교육감 선거, 지난 4월 울산북구 선거는 민주당이 아예 가망이 없었기에 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민주당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뜻했다. 진보진영이 반MB연대를 강조할수록 당선 가능한 야당 후보 ― 현실에서 이것은 민주당 후보를 뜻한다 ― 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임종인 후보가 민주당에 큰 표차로 패배한 까닭이다. 임종인 선본은 진보대연합으로 출발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반MB연합 노선으로 우회전했고, 민주당이 최종 거부하자 진보대연합으로 급격하게 유턴했다.
갈지자를 그리다 보니 “[민주당]김영환 후보와의 차별성을 대중들에게 부각시켰어야 했”지만 “차별화가 쉽지 않았”다(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결국 유권자들은 버터 맛 나는 마가린보다는 버터를 선택했다. 임종인 후보의 패배를 단순히 진보대연합의 실패로 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반MB연합의 그림자를 쫓는 동안 반MB 정서의 수혜자는 민주당이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주파 일각에서는 반MB연합의 미몽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선거 직후에“MB 심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야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문제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야권 전체의 심각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이해할 수 없는 논평을 냈다.
반MB연합론은 자주파들만의 것이 아니다. 일부 NGO들도 반MB연합론에 추임새를 넣는다.
하승창 ‘희망과 대안’ 공동 운영위원장은 “막상 선거에 임박해서 단일화를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후보 단일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과 대안’의 첫 활동도 안산 상록을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중재였다.
‘희망과 대안’이 진보적 NGO의 정치 세력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주기도 하지만, 진보대연합의 헤모글로빈이 아니라 2007년 대선 당시 ‘미래구상’처럼 민주당 강화를 위한 수혈 세력이 될까 봐 불길하기도 하다.
전략적 문제
반MB연합론은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과 노동자 계급의 체계적 계급 협력을 뜻한다.
2000년대 이래 대중은 투쟁과 투표를 통해 민주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애써 왔다. “비판적 지지론의 안티테제”(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로서 진보정당이 등장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반MB연합론자들은 대중이 민주당을 신뢰하지 않는데도 그 당을 구하려 애쓴다. 이 때문에 반MB연합론자들은 민주당을 두렵게 만드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민주당의 강령에 자신의 활동을 제한한다. 지난 6월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에 반대해 민주노동당 등이 민주당의 비정규직법을 지지한 것이 그 사례 중 하나다.
박경순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선거와는 달리 대중투쟁에서는 반MB연대연합이 대중 운동과 민주노동당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선거 영역에서만 반MB연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MB연합의 진정한 문제점은 의회 밖 투쟁 영역에서 드러난다.
일찍이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프랑스에서 민중전선(반MB연합의 역사적 명칭)이 선언되기 석 달 전인 1935년 5월 28일에 이렇게 썼다. “급진당[프랑스의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과의 의회 동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범죄였지만, 의회주의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는 적어도 실천적 가치가 있다. 의회 밖에서 급진당과 반파시즘 동맹을 맺는 것은 단지 범죄가 아니라 백치 행위다.”
실로, 민주당은 의회 밖 영역에서도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누리면서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는 지극히 엄격한 제한을 가한다. 쌍용차 노동자 투쟁 당시, 민주당은 야4당 연석회의에 포함돼 있었지만, 점거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의회 내 동맹자인 민주당을 의식해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진보정당이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당들과 동맹을 맺을 경우 세계 체제를 강타한 경제 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안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보여 주는 사례다. 사회 변혁에 대한 논의는 먼 훗날의 일로 미루게 된다. 자본가 정당을 “관용으로 대해” 자본가들이 극우라는 대안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반민주적 탄압 반대 같은 특정 쟁점을 둘러싼 한시적인 전술 제휴를 넘어 전략적 반MB연합을 맺는 것은 계급투쟁의 목덜미를 잡힐 수 있다. 물론, 전술적 제휴를 맺을 때조차 민주당 비판을 삼가거나 추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재차 강조하고 싶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존재 자체가 반MB연합의 재앙적 미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
1934∼37년에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 공산당이 이 시기 투쟁을 주도했다. 1935년까지만 해도 공산당은 루스벨트가 자본가 정치인이고 뉴딜은 사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다 스탈린의 민중전선 전략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 이제 공산당은 노조 지도자들을 앞세워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한 환상을 퍼뜨렸고, 현장 조합원들이 민주당과 편안한 관계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단속했다. 이런 일이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 결과는 노동자 정당의 유실이었다. 그때 이래 지금까지 공화당-민주당 양당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진보대연합과 반MB연합의 차이점
이런 반MB연합의 근본적 문제점을 후보가 아니라 “공동정책 공약”을 중심으로 논의한다(손우정) 해서 해소할 수는 없다. 먼저, 선거 논리상 후보를 배제한 논의는 당찮다. 또, 각 정당들은 이미 자신의 사회적 기반에 근거한 정책을 갖고 있다. 동일한 계급을 대변하는 상이한 진보정당끼리라면 모를까 상이한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들 간의 “공동정책 공약” 토론을 통해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순전한 몽상일 뿐이다.
다행이게도, 반MB연합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민주노동당 안에서 나오고 있다. 정성희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깨”졌다고 했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장은 “가장 확실하고 힘 있는 반MB전선은 ‘진보대연합전선’을 튼튼히 세우는 것”이라며 반MB연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들이 반MB연합을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진보대연합을 통해 진보진영의 힘을 강화해야 반MB연합도 가능하다는, 모종의 단계론적 입장인 듯하다.
그럼에도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던 진보대연합을 현실 정치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의의가 있다(우리는 일찍부터 반MB연합에 반대하고 그 대안으로서 진보대연합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반MB연합과 진보대연합의 차이점은 후자가 진보적 정당·단체·개인 들을 연결시키는 반면, 전자는 자본가 정당을 포함시킴으로써 계급 협력 정책이 된다는 것이다.
또, 진보대연합은 선거와 투쟁에서 진보진영의 공통 과제 수행에 필요한 실천적 협정(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진보적인 지방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인 반면, 반MB연합은 자본가 정당과의 공동 선거 강령 작성 그리고 자본가 정부 지지를 담고 있다.
진보대연합은 그 소속 단체와 개인들이 완전한 이데올로기적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반MB연합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진보대연합을 통해 노동계급의 지도력과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