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ㆍ진보단체 공동 성명:
여성의 재생산권 부정하는 낙태 방지 정책 즉각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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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저출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낙태 방지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를 고발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 ‘낙태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고 양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려는 반여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여성ㆍ진보단체들이 정부의 낙태 방지 정책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 근절 캠페인’을 비판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11월 26일에 발표했다. 이 성명서를 게재한다.
어제 (11월 25일) 오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출산과 육아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보육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삭감해 저소득층 보육 지원 확대가 물건너 갔고, 2010년까지 2700개의 국공립 보육시설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필요한 예산은 전혀 투자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선례들을 볼 때 어제 발표도 요란한 말잔치에 그칠 것이 우려된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은 반드시 실질적인 실천으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저출산 종합대책에서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와 함께 검토되고 있는 낙태 방지 정책에 대해서도 그 철학과 내용이 상당히 우려된다. 저출산 문제를 낙태를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국가가 1960년대 인구조절계획으로 여성에게 낙태를 장려했던 역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 및 재생산권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국가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켜 여성의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반인권적인 관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발상이다.
게다가 지난 11월 16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종합대책으로 불법 낙태 단속을 검토하고 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나 최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근절 캠페인’을 선포하며 낙태 시술 병원을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 등을 미루어 볼 때, 낙태방지정책이 단속과 처벌을 통해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낙태 건수 중 90%이상이 사회·경제적 이유로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 이 모든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는 법이 구체적인 현실과 사회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혼여성들은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 또는 아이를 기를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해서 낙태를 선택한다. 비혼여성들은 결혼제도 밖의 임신이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비난받아야 할 행동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낙태를 선택한다. 즉, 낙태의 배경에는 여성들이 성관계와 임신, 출산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우리사회의 이중적인 성문화와 미비한 사회제도 안에서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과 경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들이 자신과 태어날 아이의 삶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낙태가 유일한 선택지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여성을 둘러싼 이러한 삶의 조건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여성들이 피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비혼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한부모 가족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임신한 십대가 출산을 선택한다면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어야 하며 양육의 책임도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국가, 사회가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낙태를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정부의 저출산 종합대책에 포함된 낙태방지정책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저출산이 낙태 방지 정책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여성의 몸의 권리를 인구정책에 따라 멋대로 다루려는 역사를 계속하는 한, 낙태문제는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며 출산율도 높아질 리 없다.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하는 낙태를 줄이겠다는 의미의 낙태방지정책은 이번에 제시한 저출산 종합대책의 기조, 즉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기조와도 상충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회의에서 정의되고 강조된 바 있는 여성의 재생산권-성과 임신, 출산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개인의 기본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은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낙태 방지 정책을 즉시 철회하고, 낙태권을 포함한 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 구조적 조건들을 바꿔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0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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