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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철도파업을 돌아보며 ? 합법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파업 복귀 소식을 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레프트21〉 에 평가 기사(‘노조 지도부가 기회를 붙잡지 못하다’)가 실려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멀리 독일에 있어 정확한 상황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공공운수연맹에서 일했던 경험 등을 비춰 이번 철도 파업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보냅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기회를 붙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세종시 논란과 도곡동 땅 문제로 이명박 정부의 정치 위기가 심해질 수 있는 상황에다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모일 수 있는 조건까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파업을 불법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서둘러 파업을 종료한 것은 매우 아쉽다.

불법을 밥 먹듯이 하는 이명박 ‘불법’정부에 맞서 ‘선량한’ 노동자들이 ‘합법’파업을 한다는 전략은 결코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이 전략으로 일부 중간계급에 기반한 사회세력과 언론의 지지를 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물류를 멈춰 이윤에 타격을 가해 정부와 사측을 물러서게 하는 진정한 파업의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파업 시작부터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필수유지업무제도를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파업을 시작했다. 게임의 룰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따라서 피켓팅은 애초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파업의 원인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즉, 정부와 철도공사는 애초부터 게임의 룰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한편에서는 합법과 불법을 막론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마당에 철도노조가 합법의 테두리로 자신의 손발을 묶었을 때 그 결과는 자명하다.

이런 방식의 한계가 분명해지자 철도노조 지도부는 갈림길에 서게 됐을 것이다. 파업의 수위를 높여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사측의 단협 해지에 맞선 공세적 정치투쟁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일단 후퇴하고 이후를 도모할 것인가.

철도노조는 파업철회를 선택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애초부터 국가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지방본부 차원의 집회 이외에 전체 조합원을 집중시켜 위력을 과시하는 집회를 열지도 않았고 거점을 형성해 저항의 구심을 구축하는 전술도 취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파업을 확대·강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파업 승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창조적인 토론과 논쟁도 없었다.

이명박의 정치 위기와 연대 확산 조짐은 파업을 한 단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만약 철도노조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투쟁 수위를 높였다면 가시적인 성과 없이 후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4대강 문제를 물류체계와 결합시켜 4대강 삽질이 아니라 친환경적 철도물류시스템 강화를 위해 철도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고용창출을 요구하기, 세종시 문제로 불거진 지방소외(?) 문제와 관련해 전국망으로서 철도산업의 중요성과 철도 구조조정 정책의 부당성 등을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다른 세력들과 함께 투쟁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도곡동 땅 의혹에서도 드러나듯이 ‘불법’의 제왕 이명박에 맞서 노조도 ‘불법’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로 투쟁을 전개했더라면 상황 전개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사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맞선 투쟁 자체가 정치투쟁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맞선 정치투쟁에서 정권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이명박 정권에 맞선 정치투쟁은 철도노조만의 몫은 아니다. 똑같이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발전, 가스노조나 일방적 단협 해지 문제로 투쟁하는 공공연구노조 등 공공운수연맹 차원에서 실질적인 연대가 조직됐어야 했고 민주노총의 연대도 필요했다. 따라서 공공운수연맹이나 민주노총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연대가 어떻게 건설될 수 있는가다. 올여름 쌍용자동차 투쟁 그리고 2007년 이랜드 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치열하게 투쟁하는 곳에 연대가 있다. 철도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공기업 중 가장 큰 노조다. 게다가 물류운송을 마비시킬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이랜드노조는 물론이고 쌍용자동차와도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이다. 만약 철도노조가 파업의 강도를 높이고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연대를 호소했다면 훨씬 더 실질적이고 강력한 연대가 건설됐을 것이다. 철도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그러한 연대의 구심을 형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예행연습?

철도노조 지도부가 때 이른 후퇴를 하며 한 변명은 추후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도 ‘3차 파업’을 준비하자고 했다. 파업참가자가 불참자보다 더 많을 때 복귀해야 한다는 논리다.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상황에서 보았듯이 파업참가자가 다수일 때 복귀해야만 조직을 재정비해 이후 공세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사실 이런 논리는 적어도 공공부문 노조들 사이에서는 불문률이다. 일면 타당성이 있는 논리다. 그러나 철도노조의 경우 여전히 압도 다수가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복귀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투지가 여전한 상황이었다. 때 이른 후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노조 지도부는 이번 파업이 앞으로 다가올 본격적인 충돌에 앞선 탐색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 올여름 철도, 발전, 가스노조 등이 주축으로 건설한 공공운수연맹 산하 공공부문공동투쟁본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투쟁의 성격에 대해 ‘힘 다지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파업까지 염두에 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의 사주를 받은 사측의 도발(단협 해지)이 난무하자 결국 노동조합은 제한적 파업을 감행했다. 그래서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은 〈레디앙〉과 인터뷰에서 ‘회사가 파업 안 할까 걱정하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떠밀려 한 파업이라는 식이다. 물론 사측의 의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도와 투지가 높아 노동조합은 파업을 8일간 진행하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후퇴하기는 했지만 항복하지는 않은 것이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제 현장에서 제대로 준비해 파업을 하자고 했는데 이 말처럼 된다면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파업처럼 합법과 준법의 틀 안에서 스스로 투쟁을 제한한다면 정부와 사측은 더 자신감을 갖고 공격할 것이다. 반면 필수유지업무에 대체근로로 파업효과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사기저하와 패배감이 심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3차 파업 준비는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 활동과 전투성이 만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투쟁을 계속 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법성과 국민경제 논리를 뛰어넘는 파업을 건설해야 한다. 이미 철도노조에는 수십 명의 해고자들과 수백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이라는 멍에가 짊어져 있다. 여기에 이번 파업으로 발생할 징계자와 손해배상을 생각할 때 파업을 통한 정면돌파 이외에 심지어 조직보존(민주노조 보존)을 할 수 있는 방법조차 불확실하다. 3차 파업에서 전면적인 정치투쟁 이외에 우회로는 없다.

철도노조 파업은 이명박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광란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노동자 투쟁의 잠재력을 얼핏 보여 줬다. 하지만 그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권과 자본이 만들어 놓은 틀을 뛰어넘어 행동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부패와 정치 위기가 다행히, 때 이른 후퇴로 인한 노동자들의 자신감 저하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정치 상황과 노동조합 투쟁이 연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부문적 한계를 뛰어넘는 공세적 정치투쟁으로 발전해야만 이명박 정부의 공격에 맞선 노동조합 투쟁도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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