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과 파키스탄의 위기
〈노동자 연대〉 구독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황폐해졌고, 그 밖의 여러 나라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예멘과 소말리아에서 끔찍한 분쟁의 악순환을 낳았고, 세계 곳곳에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지금 ‘테러와의 전쟁’으로 가장 위협받고 있는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면서 2008년에 파키스탄 북서쪽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을 무인폭격기가 거의 50번이나 폭격해 4백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엄청나게 분노했고, 정부는 위기에 처했다.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유리 프라사드가 파키스탄의 현재 상황을 살펴본다.
피비린내 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지난달[2009년 11월]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패배가 파키스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8년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니, 파키스탄이 다른 나라들과 함께 온힘을 기울여 노력했다면 상황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문해 봐야 합니다. 9·11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왜 아무도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지도 체포하지도 못했으며, 왜 아무도 알카에다의 2인자 자와히리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까?”
이 연설을 들은 파키스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그런 물음에 답해야 하는 자들은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 온 나토(NATO) 회원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키스탄 지배자들도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서방 국가들이 “테러리스트”로 여긴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공격하는 데 가담하면서 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영국과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키스탄 군대가 남부 와지리스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접경이며 소수 종족이 거주하는 산악 지역)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3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파키스탄탈레반운동(TTP, 이른바 파키스탄 탈레반)의 기치 아래 느슨하게 뭉친 조직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이슬람주의 세력들에 대한 지지가 확산된 것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과 경제 위기에 대한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자국 정부와 미국에 맞서 싸웠고, 때로는 부유한 지주들과 싸우기도 했다.
붕괴
산골 마을이 날마다 박격포 공격과 포탄 세례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미군 무인폭격기가 무고한 민간인과 투사 들을 향해 거의 정기적으로 폭탄을 퍼부었다.
고든 브라운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맞서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런 요구에는 “테러”가 파키스탄인들의 주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생각은 틀렸다. 파키스탄인 압도 다수에게 주적은 배고픔이다.
UN이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에서 파키스탄은 175개 나라 중 144위다. 아프리카 나라들을 제외하면 파키스탄보다 더 낮은 나라는 예멘과 아이티뿐이다. 파키스탄 인구의 약 3분의 1인 5천만 명 이상이 절대 빈곤층이다.
그리고 지금은 군사 공격 때문에 난민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면서 사정은 훨씬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UN의 발표를 보면, 와지리스탄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25만 명 이상이 피난을 떠났다.
이 난민들은, 올해 초 스와트 계곡에서 군사 공격이 벌어졌을 때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피난민 1백90만 명과 합류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와지리스탄의 전투 지역에 기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그래서 이 인도주의적 비극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서방이 ‘테러와의 전쟁’을 파키스탄으로 확대하는 것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이용해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점차 공허해지고 있다.
대통령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이끄는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파키스탄군에게 자국 민간인을 향해 폭탄 공격을 감행하라고 명령했다. 자르다리 정부는 출범한 지 2년도 안 돼 벌써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파키스탄은 경제가 붕괴 직전에 내몰리자 국제수지 위기를 피하려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했다.
식량과 에너지 부족, 연료 가격 인상, 통화 가치 하락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심각한 곤경에 처한 상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도 자르다리가 속한 파키스탄인민당(PPP)은 가난한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한다. 소수 특권층 인사들은 부패로 얼룩져 있다.
부패
자르다리는 영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재산이 있으며, 1995년에 영국에서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만 4백35만 파운드[약 8천억 원]를 썼다.
그래서 최근 정부와 군사 시설을 겨냥한 잇따른 폭탄 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대중이 별로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카라치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리아즈 아흐메드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만신창이가 됐다. 주요 관공서는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다. 정부의 으리으리한 ‘통치’ 기구들이 이제는 무력한 권력의 감옥이 돼 버렸다.”
대중의 위기감이 높아지자 정부의 대응책은 탈레반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척”하는 것이었다고 리아즈는 전한다.
정부는 도시에서 테러 공격이 거듭되면 사람들이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리아즈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군사 시설이나 보안경찰 시설이 공격당하면 바로 다음 날 도심에서 폭탄 공격이 벌어진다. 이것은 탈레반과 정부군 간 전쟁을 사실상 탈레반과 파키스탄 국민 간 전쟁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따라서 지금 탈레반을 비난하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파키스탄 전쟁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파키스탄 지배자들은 반(反)탈레반 전쟁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살인 폭력 집단들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장관들은 카라치를 지배하는 정당인 무타히다카우미운동(MQM)의 무장 조직에 무기를 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MQM이 그 무기들을 인종 청소에 사용하는데도 말이다.
MQM은 2008년 무샤라프 장군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시위대에 총질을 해 댄 깡패들이다.
‘테러와의 전쟁’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동맹이 이런 짓을 저질렀는데도 눈감아 준다.
와지리스탄에서 추진되는 군사 작전이 성공하고 있다는 조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 지역 주민들은 파키스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별로 없으며, 국민의 일원으로서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오히려 미국과 파키스탄 당국의 잇따른 폭격 때문에, 독립 성향이 강한 부족들은 서방이 표적으로 삼는 탈레반 투사들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대개 가난한 농민 출신인 평범한 파키스탄 군인들은 가난한 농민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악화하자 파키스탄 지배계급은 내분을 겪고 있다.
군 내부의 일부 세력은 “이슬람주의 투사들”에 대한 공격을 당혹스러워 한다. “이슬람주의 투사들”은 파키스탄의 62년 역사 대부분을 통치한 군사 정권에게 매우 유용했기 때문이다.
군 내부의 이런 세력은, 1980년대에 무자헤딘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반대해 투쟁할 때 핵심 구실을 한 부족들을 다시 활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할 경우, 특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키스탄으로 확대된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 위기 심화가 맞물려 이런저런 긴장이 증폭되고 있다. 그중에는 1947년에 파키스탄으로 강제 합병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던 피억압 민족들의 분리 독립 요구도 있다.
와지리스탄의 군사 작전이 실패하면 파키스탄 자체가 쪼개지기 시작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서방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인구 3천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을 지속하려는 서방의 노력은 인구 1억 7천5백만 명의 파키스탄을 전면적인 내전으로 몰아갈 수 있다.